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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똘똘이(Halbkluge)’
이성낙 2021년 09월 02일 (목) 02:27:59

1950~60년대 독일 사회에 등장한 ‘Halbstarke’라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반쪽을 뜻하는 ‘Halb(=Half)’와 힘세다를 뜻하는 ‘Starke(=Strong)’가 조합된 ‘Halbstarke’는 ‘반항아’, ‘불량 청소년’을 지칭하는 낱말로 쓰이기 시작해, 오늘날에도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사회성이 짙은 신조어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 독일 언어에서 ‘Halbstarke(반쪽+힘세다)'가 아직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낱말이 갖는 사회적 공감대를 짐작게 합니다.

필자가 ’Halbstarke'를 우리말의 ‘깡패’ 정도로 알고 지내다가 문득, 독일 사회가 새롭게 만들어낸 단어 중 최상의 낱말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힘이 세어서 ‘깡패’가 아니라 어정쩡한 힘을 무리하게 과시하는 것이 ‘반쪽짜리 강함’ 즉 ‘깡패’의 특징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든가, 또는 역으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말과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하니, ‘반쪽짜리 강한 힘’이 가지는 깊은 뜻을 다시 반추하게 됩니다.

근래 우리 정치판에 나서는 인사들을 보면, 왜 그리 ‘덜 익은 인격의 소유자’들이 많은지 걱정스러울 지경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의 여기저기 언론에 노출되어 서성거리는 정치가들을 보면서 새로운 신조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이름하여, ‘반쪽 똘똘이’입니다. ‘Halb(=Half)’와 ‘현명, 똘똘이’의 ‘Kluge(=Clever)’의 조합어 ‘반쪽 똘똘이’ ‘Halbkluge(=Halfclever)’라는 신조어가 그것입니다. 얼마 전, 독일 친구에게 ‘반쪽 똘똘이’란 새로운 낱말을 필자가 만들어보았는데, 어떤 느낌인지를 물었습니다. 친구는 “늘 ‘Halbstarke’를 쓰면서, 왜, ‘Halbkluge’를 생각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지식 소유권’으로 등재하여야 한다며 한참 웃었습니다.

친구는 독일 사회에서도 ‘반쪽 똘똘이’가 ‘Corona-19’ 시대에 큰 문제라며 개탄했습니다. 극우파들이 중심이 된 일군의 집단이 ‘마스크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며, ‘마스크 쓰지 않기 운동’을 펼쳐 독일 사회에 큰 골칫거리로 등장했다고 합니다. 마스크 쓰지 않기 운동은 이른바 ‘가로, 즉 횡(橫)적으로 생각하기(Querdenken, Horizontal thinking)’의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합니다.

근래 독일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횡적 사고 운동’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너무 종(從)적인, 다시 말해 위에서 밑으로 지시가 내려오는 것에 반발하며 일어난 새로운 사회 운동입니다. 논리적으로 일리 있는 운동이긴 하지만, 그 주창자들이 너무 과격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그 순수성을 잃어, 반작용 또한 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결국 필자가 언급한 ‘반쪽짜리 똘똘이(Halbkluge)’가 문제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고 친구는 덧붙였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근래 필자와 같은 ‘피동적 정치 소비자’가 ‘정치의 계절’에 국내 정치인들을 지켜보기가 민망하고 힘겨운 것은 정치인이 주장하는 내용보다, 그 표현 방법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반쪽짜리 똘똘이’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그들의 언행을 지켜보자니 무척 괴롭기까지 합니다.

그 한 가지 예가 ‘국민의힘’ 당 대표로 선출된 이준석 대표를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이준석’이란 젊은 정치인의 출현은 근래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현상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필자는 1960년대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 재임 1961~63) 미국 대통령이 혜성과 같이 나타나는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남달리 이준석 대표의 출현에 관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준석 증후군’을 지켜보면서 긍정적으로 기대하던 사람이나, 부정적 시각으로 지켜보던 사람, 모두 놀라워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국내 정치판에 새로운 지평을 마련했다는 사실, 그 자체는 누가 뭐라 해도 국내 정치사에 기록될 일입니다. 그만큼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시대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만큼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다가왔습니다.
필자는 분명 어떤 정치적 견해를 언급할 위치에 있지 않으며, 그럴 의도도 전혀 없습니다. 다만 이 나라에서 시공간을 공유하는 한 시민으로서 느낀 바를 현 시점에서 보면, 흔히 말하듯 ‘혹시나’가 ‘역시나’로 귀결된 수준인가 싶습니다.

이와 관련해 오래전에 들었던 중국 고사 ‘허유세이(許由洗耳)’가 생각납니다. 깊은 산중에 살던 선비 ‘허유’가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들었다 하여, 냇가에서 귀를 씻었다고 합니다. 작금의 우리 상황에서는 귀를 너무 자주 씻다가 귓병[耳炎]이 생길 것 같기도 합니다만.
(요순시대의 요(堯)임금이 나이가 들어 나라를 다스리기 힘들어지자 왕위를 물려줄 새로운 인물을 물색했다. 그러던 중 요임금은 허유라는 훌륭한 인물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허유는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를 거부하고 초야에 숨어 사는 은자(隱者)였다. 요임금은 허유를 찾아가 자신의 왕위를 대신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권유받은 허유(許由)가 귀를 더럽혔다며 냇물[潁水]에 귀를 씻자 소에게 냇물을 먹이려던 그의 친구 소부(巢父)가 더럽혀진 물을 먹일 수 없다며 소를 끌고 상류로 올라갔다는 중국 고사.)

우리 사회에는 ‘반쪽 똘똘이’이가 너무 많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인가 ‘지식(Knowledge)이 지혜(Wisdom)가 되는 데에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시공간의 테’가 필요하다고 설파(說破)했던 한 원로의 조용한 외침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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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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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222.XXX.XXX.192)
저는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반똑똑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그때 이미 <반똑똑이>란 비슷한 단어가 존재했던 거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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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6 11: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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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 (211.XXX.XXX.117)
혜안과 미소로 항상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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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2 10:20:13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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