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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념으로 시작한 강의
이성낙 2021년 10월 06일 (수) 00:00:49

여러모로 생소하기만 하던 독일 유학생 시절의 일화입니다. 동급생들과도 아직 서먹하기만 하고, 의예과 학생으로서 강의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는 것만을 생의 최고 목표로 알던 때입니다.

하루는 생리학 첫 강의를 듣기 위해 큰 강의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첫 강의라 많이 긴장하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교수님이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이 잠시 묵직한 몇 마디 말을 건네자 앉아 있던 모든 학생이 조용히 일어나더니 묵념의 예를 갖추었습니다. 필자는 영문을 몰라 많이 당황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묵념을 했던 기억이 선연합니다.

강의가 끝난 후, 옆자리 학생에게 왜 묵념의 예를 갖추었는지 물었습니다. 그 학생이 필자에게 설명해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나치 독일이 ‘KZ(Konzentrationslager,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인체 실험이라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강의 시작 전에 한 묵념은 그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애길 듣고는 북받쳐 오르는 놀라움과 감동을 한동안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시 나치 독일 의사들은 인간이 어느 높이의 기압에서, 또는 어느 정도의 추위에서 견뎌내는지 ‘극한 환경 실험’을 시행했습니다. 그것도 성별 및 나이별로 말입니다. 그 잔인한 실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라 이 순간에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 얘기를 해준 동료 학생은 필자에게 《인간성이 배제된 의학(Medizin ohne Menschlichkeit)》(A. Mitscherlich, F. Mielke, 1949)이라는 책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그 놀라운 다큐멘터리와 함께 교수님의 강의가 남긴 그 ‘무거운 묵념’을 필자는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1960년대 독일의 문화 도시 뮌헨(Muenchen)에서는 해마다 일주일 동안 ‘항의 군단’의 함성(喊聲)으로 시내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곤 했습니다. 이른바 ‘주데텐-독일인(Sudetendeutsche) 난민’의 항의 행사였습니다. “우리 고향 주데텐으로 돌아가고 싶으니, 내 고향 땅을 다시 돌려달라”는 구호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습니다.

사연인즉 이렇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끝나자, 승전국인 소련의 스탈린 군대가 체코 동부 지역을 점령해 소련 영토로 편입합니다. 그 대신 독일 동남부의 ‘주데텐 지방(Sudetenland)’을 체코에 귀속시킵니다. 이에 수많은 독일인이 고향 주데텐을 떠나 (가까운 동독 지역으로 가지 않고) 서독 쪽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당시 많은 피란민을 실은 기차가 서독의 남부 중심지 뮌헨으로 왔고, 그들은 이곳에 정착해 삶을 꾸려갔습니다.

그리고 1990년 동서로 갈렸던 독일이 마침내 통일됩니다. 이때 많은 욕구가 분출되었고, 뮌헨에서는 ‘주데텐 독일인들’이 지금은 체코 땅인 자기들의 고향을 돌려달라는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1995년경의 일입니다. 뮌헨이 ‘주데텐 난민의 화풀이 현장’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이때 ‘호통’에 가까운 언어로 ‘주데텐 난민’에게 흔들림 없는 메시지를 날린 한 정치가가 홀연히 나타났습니다. 바로 당시의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 로만 헤어초크(Roman Herzog, 1934~2017, 재임 1994~1999)입니다. 그는 이렇게 천명했습니다. “현 독일연방공화국의 영토는 오늘의 국경에서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지만, 뒤로도 물러서지 않는 불변의 것이다.” 이러한 선언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소장을 역임한 대통령의 말이기에 더욱 무게감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로만 헤어초크 대통령과 필자에겐 작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1997년 헤어초크 대통령이 정치·경제계 인사와 함께 방한했을 때 일입니다. 필자는 헤어초크 대통령과 몇 마디라도 나누고 싶던 차에, ‘신라호텔 만찬장’에서 그분을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독일 패전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우리는 다음 세대에 나치 독일의 만행을 조금의 미화도 없이 전해야 한다”라는 취지로 말했던 것을 상기시키면서 그 단호함에 크게 감명받았던 마음을 전했습니다. 대통령은 그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이번 방한은 IMF로 어려움에 처한 친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온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때 그 거인의 당당하고도 선한 모습, 그리고 가슴에 새겼던 ‘묵념으로 시작한 강의’와 맥을 같이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바른 생각을 하는 두 어른의 무게를 똑같이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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