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칼럼 | 게스트칼럼
     
스트레스가 인류를 진화시킨다
전정일 2021년 12월 25일 (토) 00:04:19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즐거운 마음과 새해를 준비하는 기대감으로 가득해야 할 연말이 그저 착잡함으로 짓눌려 있습니다. 한 해 전 이맘때, 그러니까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후 처음으로 겨울을 맞던 2020년 12월의 마음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때는 ‘이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오면 이 어려움이 사라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새해를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또 새봄을 기다리는 겨울을 맞이한 지금, 긍정적 기대는 사라지고 어두운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해도 부정적인 생각이 이내 긍정을 이기곤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역사적으로 늘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그 어려움이 직접적 영향을 주기보다는 그 어려움을 겪게 될까 두려운 마음, 즉 ‘스트레스’ 때문에 더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생존 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스트레스 정도로 가볍게 보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이긴 합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부터 식물이 자신을 지키는 다양한 방어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조금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식물 스스로는 아무런 힘도 없어 삶과 죽음을 온전히 외부 환경에 맡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식물들은 인간이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큰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이겨냅니다. 뜨거운 태양,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가뭄, 홍수와 한파에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오염물질 등 식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스트레스는 수없이 많습니다. 덥다고 그늘을 찾아갈 수도 없고 춥다고 따뜻한 곳으로 이사를 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떤 방법으로 이런 위협적인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있을까요. 식물이 받는 스트레스는 크게 병충해와 같은 생물학적 스트레스와 대기오염물질, 온도 변화 등 비 생물학적 스트레스로 나뉩니다.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식물 체내의 산소가 전자와 반응하면서 여러 가지 ‘활성산소종(ROS: reactive oxygen species)’으로 변합니다. 강한 독성을 가진 ROS는 생체의 정상적인 대사 과정에서도 일부 만들어지지만, 외부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성량이 과다해져 세포막과 단백질을 분해하고 DNA 합성을 저해할 뿐 아니라 엽록소 파괴, 광합성 억제 같은 치명적 피해를 식물에 남깁니다.

놀랍게도 식물은 몸 안에서 ROS를 없애는 항산화물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비타민 C입니다. 비타민 C는 대부분의 식물에 고농도로 존재하고 있는데 이는 ROS를 제거할 뿐 아니라 비타민 E를 보전하고 엽록체 막을 만들어내는 등 다양한 생리 작용을 가집니다. 이 밖에 녹차의 카테킨, 마늘의 마늘산 등도 강한 항산화물질입니다.

그런데, 식물이 받는 스트레스가 커질수록 항산화물질의 농도는 높아집니다.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인삼이 더욱 많은 항산화물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이를 거꾸로 이용해서 생명공학 기술로 식물의 항산화물질 생성 능력을 촉진하면 식물이 열악한 환경에서 더 잘 견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연구가 더욱 발전하면 사막에도 식물을 살게 하는 등 지구 사막화 방지와 생태계 복원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주체적 능력도 없어 보이는 식물도 이렇게 강력한 스트레스 극복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소위 ‘사고 능력’ 즉, 지혜가 있는 우리 인간은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아주 큰 스트레스이긴 하지만 결국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생물학적 극복뿐만 아니라 서로서로 불신하거나 혐오하는 사회적 상황도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고 나면 우리는 좀 더 강하고 번성하는 지구의 한 생물 종으로 좀 더 진화할 것입니다.

------------------------------------------------------------------------------------

 

 

 

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신구대식물원 원장

1969년 강원 원주 출생. 서울대 임학과 학사 석사 박사. 식물분류학 및 수목학 전공. 서울대 수목원 연구원, 중국 남경식물연구소・식물원 교환연구원을 거쳐 2001년부터 신구대 교수로 재직. 저서: 길에서 만나는 나무 123, 자연자원의 이해(공저), 세계의 식물원 산책(공저) 등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2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류해리 (218.XXX.XXX.115)
식물이 받는 스트레스, 추위를 피할수도, 이사갈수도~~~

그러나 인간은 더 유연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에 위안이 됩니다.
답변달기
2021-12-28 09:08:42
0 0
정병용 (220.XXX.XXX.57)
식물이 stress를 받는다는 새로원 사실을 알앗습니다.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21-12-26 11:46:41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