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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교(邪敎), 총기 숭배
허찬국 2022년 06월 28일 (화) 00:03:38

미국에서는 어리다고 맥주를 못 사는 18세 청소년이 슈퍼 옆 총포상에서 군인들이 전투에서 사용하려고 만든 반자동 소총(Semi-automatic assault rifle)을 살 수 있습니다. 청소년이 총기를 난사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피해자가 어린 학생들인 경우입니다.

미국의 총기 보유와 난사 사건 현황과 여론

한 달 전쯤 텍사스 주(州)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에서 18세 청소년의 총기난사로 7~10세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이 숨졌습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필자는 1990년대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인근 딸의 초등학교를 떠올립니다. 언덕 위 오래되고 나지막한 학교 건물, 교실 안의 딸과 친구들의 작은 책걸상, 벽을 채운 그림과 공작품 등 초등학교 모습은 아늑했습니다. 가방끈 긴 부모들이 많은 덕에 그들의 관심과 지원이 풍부했고, 교사들은 따뜻한 분위기에서 가르치고 돌본다는 안도감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장소와 총기를 든 살기등등한 미치광이는 오버랩이 불가능한 상극(相剋) 중 상극입니다.

총기 살상이 많은 것은 총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영국 BBC의 5월 25일 기사는 미국의 총기 보유 현황을 국제적으로 비교한 통계를 보여줍니다. 2018년 기준 민간인 100명당 총기 보유가 많은 상위 5개국은 미국(120.5), 예멘(52.8), 세르비아(39.1), 몬테네그로(39.1), 우루과이(34.7), 캐나다(34.7)입니다. 전쟁 중인 국가(예멘), 혹은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며 처참한 내전을 겪었던 나라들(세르비아, 몬테네그로)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최근 몇 년간 미국의 이 비율은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총이 범람하니 오남용도 많습니다. 2020년 총기 관련 사망자 수가 45,222명이었는데 이 중 자살자가 54%(24,292명)를 차지했습니다. 나머지는 살인입니다. 또 전체 살인에서 총기에 의한 것의 비중이 미국의 경우 79%로 영국(4%), 캐나다(37%), 호주(13%)보다 훨씬 높습니다.

1991년 이후 가장 희생자가 많은 사건은 2017년 라스베이거스에서 발생했습니다. 59명이 사망하고 500명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관중이 꽉 찬 야외 공연장이 내려다보이는 인근 호텔의 32층에서 각종 반자동 소총으로 약 10여 분 간 1,000발을 난사했습니다. 풍족한 생활을 했고, 범죄 전력이 없었던 60대 범인이 현장에서 자살해 범행 동기도 밝혀지지 않았지요.

끔찍하게도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 유사한 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2012년 12월 14일, 코네티컷 주에서 어머니를 살해한 20세 범인이 어머니의 총기 4정을 소지하고 자신이 다녔던 샌디훅 초등학교에 들어가 1학년 학생 20명을 포함해 27명을 죽이고 자살했습니다. 1999년 4월 20일 콜로라도 주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17세와 18세 재학생 2명이 12명의 학생과 선생 1명을 죽이고 자살했습니다. 2018년 2월 18일 플로리다 주의 스톤맨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는 이 학교에서 퇴학당한 19세의 범인이 반자동 소총으로 17명을 죽인 후 체포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사건이 올 5월 24일 텍사스 주 롭 초등학교 사건입니다.

18세의 백인우월주의자가 뉴욕 주 버펄로의 흑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의 슈퍼마켓에서 총기를 난사해 10명을 죽인 일이 발생한 지(5월 14일) 얼마 되지 않아 롭 초등학교 사건이 터져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언급된 사건마다 사망자보다 많은 부상자들이 발생했기에 피해자들은 훨씬 많습니다.

주요 영어권 국가인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은 과거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직후 총기규제를 대폭 강화했습니다. 미국에서도 규제를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미국의 사회여론분석기관인 퓨 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2021년 9월 13일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총기 규제가 ‘더 강화되어야 한다’ 의견이 52~60%, ‘현재 적절’ 28~32%, ‘더 완화’가 11~18% 수준입니다. 정당별로 보면 민주당은 압도적으로 ‘강화’를 지지하는 반면 공화당은 약 50%가 ‘적절’이며 나머지는 반반 ‘강화’와 ‘완화’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합니다.

총과 여성 권리 제한을 믿는 미국의 수염 없는 탈레반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 가까이 총기규제를 강화하는 입법은 의회에서 공화당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탈레반을 연상시키는 보수 강경파 정치인들은 정부의 총기규제가 헌법이 허가하는 기본권을 앗아가려는 시도라고 유권자들을 호도합니다. 여기에 미국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의 거액의 정치자금 살포와 로비가 주효해 비(非)도시 지역의 많은 유권자들이 ‘총기규제 반대’ 한 가지만을 선거에 출마한 후보 지지 조건으로 삼는 소위 ‘단독 이슈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그 여파로 선출직 공화당 정치인들은 일반 여론보다 훨씬 더 총기규제를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최근의 사건의 영향으로 소수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총기규제 강화를 지지하면서 지난주 미국 의회는 거의 30년 만에 처음으로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죠. 법안은 총기를 구매하려는 21세 이하 청소년의 정신건강관련 기록을 검증하고, 주에서 사법 당국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총기를 한시적으로 압수하는 것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큰 상처에 일회용 반창고처럼 보입니다. 설상가상 비슷한 시기에 연방 대법원은 공공장소에서 총기 보유를 금지하는 뉴욕 주의 규제가 위헌이라 판결해 미국 총기규제의 난맥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판결은 50년 가까이 인정되어온 여성의 낙태 결정 권한을 뒤집는 판결과 거의 동시에 나왔습니다. 판결 직후 대법원 전문 법학자이자 퓰리처 상 수상 언론인 그린하우스(Linda Greenhouse)는 ‘대법원을 위한 진혼곡(Requiem for the Supreme Court)’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극단적 보수 성향으로 정치화된 대법원의 종말을 예견합니다. 근래 대법원의 권위가 크게 손상된 것은 물론이고, 정원·정년 등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습니다.

독립전쟁 당시 영국의 정규군에 맞선 미국의 병력은 개개인이 보유했던 총기로 무장한 시민군 민병대였습니다. 독립전쟁 승리 후 주(State)들은 연방정부(Federal Government)라는 옥상옥(屋上屋)을 만들어 미합중국(United States)이라는 지금의 정체(政體)를 만들었죠. 주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당시 미지수였던 신생 연방정부가 유럽의 군주들처럼 군림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시켜야 했습니다. 독립전쟁을 교훈 삼아 연방정부의 군대가 점령군처럼 굴 경우 시민군 민병대가 저항할 수 있도록 개인의 총기를 보유할 권리를 인정한 것이 헌법 2조의 역사적 배경입니다. 아울러 미국 개척시대 사냥이 식량 획득의 필수적 수단이었던 경험도 개인의 총기 보유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사회적 태도에 기여했지요.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세계 최고 군사 강국 미국을 식민지화할 외부 세력은 없고, 식량 부족이 아니라 칼로리 과다 섭취가 미국인의 심각한 건강 위협 요인이지요.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며 3권 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 언론의 감시 기능이 활발히 작동하고 있어 정부의 전횡에 맞설 시민군 민병대가 필요한 시대는 끝났다고 보입니다. 이제 총기에 대한 집착은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시대착오적이고 잔인한 사교(邪敎)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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