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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좀 알면 재미있다
박종진 2022년 08월 01일 (월) 00:02:31

주방에서 달걀을 부치고 있는데, 내방에 켜놓은 라디오에서 𝅘𝅥𝅮 응 깡 깡 𝅘𝅥𝅮 응 깡 깡 𝅘𝅥𝅮 응 깡 깡 깡 깡 𝅘𝅥𝅮 응 깡 깡 깡 깡깡 𝅘𝅥𝅮 바이올린 소리가 들립니다.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라고 머리에 딱 꽂힙니다. 얼마 전 이 곡이 듣기 좋아서 유튜브도 찾아보고, 파가니니도 검색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찾아보니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도 좋았습니다. 주위에 ‘라 캄파넬라’가 좋다고 하니 누구의 연주를 들어보라, 누구는 아니다, 누구는 힘이 있고, 누구는 가볍다 등 등 뭘 좀 알게 되니 클래식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왜 구하기 어려운 음반을 사고, 비싼 연주회에 가는 것도 조금은 이해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렵다가도 뭘 좀 알게 되니 재미있어진 것이 또 있었습니다. 야구였습니다. 골대에 공을 넣으면 득점이 되는 축구와 다르게, 야구는 규칙이 어려워 어른들이나 보는 재미없는 운동경기였습니다. 그런데 고교야구 붐이 일고, 좀 있다 프로야구도 생겨, 자꾸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규칙도 알게 되어 야구도 재미있어 졌습니다.

만년필도 마찬가지 아닐까 합니다. 처음엔 어렵지만, 뭔가를 좀 알면 만년필도 재미있습니다.

첫 번째 비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당신의 손을 믿으시면 됩니다. 백만 원이 넘는 만년필보다 몇만 원 하는 만년필이 내게 더 부드럽고 매끄럽게 잘 써진다면, 몇 만원 하는 만년필이 당신에게 더 좋은 만년필입니다. 단언할 수 있는데 만년필의 필기감은 가격과 비례하지 않습니다.

 
세척하다 세면대에 부딪혀 휘어진 펜촉  

두 번째 세척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세면기에서 펜촉이 떠내려가는 경우도 있고, 물기를 털어내다 펜촉이 튕겨나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주 사용하는 경우 한두 달 세척하지 않았다고 해서 고장 나지 않습니다. 잦은 세척보다는 매일매일 사용해 주는 것이 만년필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척이 하고 싶다면, 물 두 컵 정도 떠놓고 가볍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가볍게라고 말씀드린 것은 만년필을 분해하여 세척하는 경우도 있는데, 펜촉을 포함한 만년필의 분해는 이곳저곳에서 여러 번 말씀 드렸지만 “만년필의 분해는 그 펜의 일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많습니다.”

세 번째 한정판이라고 필기감이 더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한정판이란 수량을 정해 생산하고 다시는 생산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유명한 것으로 1965년 파커사가 침몰한 스페인 보물선을 끌어올려, 거기서 나온 은(銀)으로 몸체를 만든 스패니시 트레져, 1992년 몽블랑 최초의 작가시리즈인 헤밍웨이, 뱀 클립으로 유명한 1993년 몽블랑 작가 시리즈로 추리소설의 여왕인 애거서 크리스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만년필 모두 모체가 되는 펜이 있습니다. 스패니시 트레져는 파커 75, 헤밍웨이는 1930년대 139를 복각했다고 했지만 펜촉은 몽블랑 149 펜촉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펜촉은 뱀 머리가 새겨져 있지만 베이스는 몽블랑 146 펜촉입니다. 저는 적지 않은 수의 이 한정판 만년필들의 펜촉을 봤지만, 어느 것 하나 그 베이스가 되는 펜촉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같은 수준의 펜촉이었습니다. 하지만 약간 다를 순 있습니다.

네 번째 같은 모델이라도 필기감은 모두 다릅니다. 이것은 만년필의 공정을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보통 펜촉 끝에는 이리도스민이라고 불리는 공처럼 생긴 단단한 합금을 붙이고 잉크가 나올 수 있게 절반으로 가르고, 고급은 사람이 한 번 더 깎고 다듬어 마무리합니다. 우선 이리도스민 공의 크기가 똑같지 않습니다. 또 이 합금이 붙는 위치가 매번 같지 않고, 사람이 마무리할 때 범위 내에서 사람마다 다르게 깎습니다. 그리고 잉크가 나오는 틈이 좁은 것이 있고 넓은 것도 있기 때문에, 같은 모델이라도 필기감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뭔가 좀 알게 되셨나요? 나머지는 만년필을 내손에 맡기고 느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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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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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케이 (223.XXX.XXX.40)
뭘 좀 아는 건 없지만,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뭘 좀 알게 되면 얼마나 더 재미있을까요? ... 항상 공감가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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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19:20:57
0 0
박종진 (211.XXX.XXX.243)
뭘 좀 아시는 분 같은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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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20:26:55
0 0
행인 (118.XXX.XXX.130)
알면 알 수록 단순한 필기구를 넘어서는 즐거움이 있네요.
덕분에 만년필에 대해 알아 가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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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08: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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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이번 기회에 하나 장만 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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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20:26:13
0 0
사인펜 (1.XXX.XXX.252)
쓰는 사람 입장에서 필기감도 중요하지만, 역시 쓰이는 만년필 입장에서의 사용감도 이해한다면 더 즐거운 만년필 생활일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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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07:2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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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일방이 아니고 주고 받는 것이죠 ^^ 만년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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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20: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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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rie (211.XXX.XXX.212)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만년필을 써온 세대가 아니라 처음엔 다가가기 어렵기도 했고, 사용 시 잘 모르는 부분이 있기도 하죠. 호기심에 라디오니 시계니 분해하는 걸 즐기던 사람이라면 만년필도 분해해보고 싶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아름답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펜이 한정판이라지만 필기감만 고려했을 때 반드시 더 특별하지는 않다는 말씀이 위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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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07: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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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사실 평범한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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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20: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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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106.XXX.XXX.85)
만년필도 다른 모든 것들도 기본부터 차근차근 알아가면 더욱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네요. ^^ 오늘 알려주신 네 가지를 꼭 생각하며 만년필을 써야 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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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07: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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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즐거우면 된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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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20: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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