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정달호 타임 앤 타임
     
특별한 콘서트홀에서 보낸 '뮤직 바캉스'
정달호 2022년 08월 10일 (수) 00:02:01

이달 초 부산에서 음악과 함께하는 3박4일의 휴가를 잘 보내고 왔습니다. 작년 4월 부산 수영구 소재 문화 명소인 'F1963 복합문화공간' 내에 금난새뮤직센터(Gum Nanse Music Center, GMC)가 건립되고 나서 개최되는 첫 여름음악제에 초청을 받아, 시설 구경도 할 겸 음악도 듣겠다는 마음으로 부산엘 다녀온 것입니다. 사철 휴양지이기도 한 제주에 살고 있기에 딱히 '휴가'라는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구경 반 음악 반'의 마음으로 갔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음악과 함께한 휴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형태의 휴가를 요즘 유행하는 '호캉스(호텔에서 보내는 바캉스)'라는 말처럼 '뮤캉스(뮤직과 함께하는 바캉스)'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아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루체른 페스티벌, 베르비에 페스티벌,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처럼 유럽에는 음악 페스티벌이 많이 운영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서울국제음악제(SIMF), 대관령국제음악제, 통영국제음악제 등 유수한 음악제들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서울 같은 대도시가 아닌 지방 소도시에서 개최되는 페스티벌에 가는 것은 휴가의 요소가 가미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산은 대도시지만 저는 이번 금난새뮤직센터에서 개최된 'F1963 Summer Music Festival'(2022. 8.1~8.7)에 참가하면서 단지 내 숲속의 작은 숙소에서 지냈기에 어느 정도 휴가의 기분을 낼 수 있었습니다.

F1963 복합문화공관은 와이어를 생산하는 중견기업인 고려제강과 부산시의 합작으로, 이 회사의 옛 공장(1963년 건립)을 대폭 리모델링해서 설립한 약 3천 평 규모의 문화 시설입니다. 그 안에는 대형 전시관(석천홀)과 국제갤러리, 대형 YES24 중고책서점, 예술과 건축 전문 도서관 등 문화·연구시설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카페(테라로사), 양식당 (마이클스), 한식당(복순도가), 수제맥주집(프라하993) 등 편의시설과, 건물 뒤편으로는 아담한 정원과 분수, 인공호수와 폭포 등 자연친화적 설치물들이 있으며, 단지 주위에는 대숲으로 된 산책로도 있어 새벽부터 밤까지 누구나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카페 테라로사는 제가 지금껏 가본 대형 카페 중 가장 멋지게 꾸며놓은 곳입니다. 옛 공장 시설과 장비 등을 상당 부분 그대로 둔 채 카페 시설을 들여놓아서 산업화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생산공장과 문화소비의 혼합이라는 묘한 조화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돼 있습니다.

이런 것만으로도 부산의 명소로 자리매김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멋진 공간인데 공장의 옛 창고 자리에 새로이 금난새뮤직센터 건물이 따로 들어섬으로써 더욱 완성도 높은 문화공간이 된 것입니다. 건물의 다른 한쪽에는 현대자동차의 첨단디자인센터인 '현대스튜디오'가 입주해 있는데 클래식 중심의 청각예술과 비디오 중심의 시각예술이 시너지를 이루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금난새뮤직센터는 크지 않은 아담한 공간으로서 가로 100미터, 세로 20미터의 긴 공간 구조에 1개의 콘서트홀과 여러 개의 연습실로 구성돼 있습니다. 부산 출신 기업인과 역시 부산 출신의 성공한 음악가가 뜻을 모아 제대로 된 음악 시설을 만들었기에 작지만 강한 뮤직센터로 성장해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뮤직센터의 핵심인 콘서트홀은 정방형에 가까운 공간으로서 높이는 아파트 3, 4층과 비슷하며 방음 시설로, 아래는 목재 위는 유리로 돼 있는 특이한 구조입니다. 유리 부분은 지상층인데 낮에는 햇빛을 받을 수 있게 돼 있으며 유리벽 안으로는 수직으로 자른 긴 유리가 접이 커튼식으로 촘촘히 달려 방음 효과를 증진한다고 합니다. 아래쪽 목재 방음벽은 수직 패널들을 서로 각이 지도록 이어놓았는데 패널 하나하나를 부착할 때마다 음향효과를 일일이 체크해가면서 붙이느라 이 작업에만 두 달이 걸렸다고 합니다. 천장에는 베를린 필을 벤치마킹한 특수 타원형 방음 구조물 여남은 개가 부착돼 있습니다. 국내 최고로 알려진 음향전문가(김남돈 교수)의 디자인에 따라 완벽한 아쿠스틱을 이루려는 다양한 노력의 결과로, 관객들은 연주가 진행되는 내내 낭랑하게 울리는 순수한 소리의 파장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센터의 디렉터인 금난새 지휘자는 클래식음악의 대중화에 평생을 바쳐온 분인 만큼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뮤직센터를 운영해오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뮤직센터의 목표를 두 가지로 제시하였습니다. 첫째는 한국에서 실내음악의 메카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보통 콘서트 하면 교향악 같은 큰 규모의 음악을 떠올리는데 정작 그 나라의 음악 수준은 수많은 실내악 연주에서 드러난다고 합니다. 센터의 두 번째 목표는 젊은 음악가를 발굴·육성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목표에 걸맞게 이번 제1회 페스티벌은 18개의 콘서트로 편성되었으며 독주자와 앙상블 연주자를 합해 총 46명의 젊은 음악가들을 초청해 한껏 기량을 발휘토록 하였습니다. 일부는 잘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은 화려한 이력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젊은 음악가들이었습니다. 마에스트로 금난새는 16세의 클래식 기타리스트를 유튜브 영상에서 발굴하기까지 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국내외의 젊은 음악가를 찾아내 육성해오고 있습니다.

센터는 이번 페스티벌 이전에도 개관 이래 총 65회의 콘서트를 개최했다는데 이렇게 열정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펼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복잡한 문명사회에서 사람들이 좋은 음악을 통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오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음악이든, 음악을 듣고 행복해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전국에서 누구나 이곳을 찾아와서 음악을 즐길 수 있지만 주요 수혜자는 부산과 그 일원의 주민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페스티벌의 각 콘서트에는 부산 지역 교장선생님들, 초등학교 교사들, 음악치료사들과 같은 교육기관 인사들이 단체로 와서 관객석을 채웠고 무엇보다 기업에서 온 직원들이 많이 참석하였습니다.

클래식 음악 확산을 목적으로 세운 뮤직홀이라 관객들에게 입장료도 받지 않습니다. 누구든 인터넷으로 신청만 하면 선착순으로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순전히 기업들의 후원으로 유지된다고 하니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문화 의식이 이 정도에 이르렀구나 하는 놀라움마저 들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몇몇 뜻 있는 기업들이 앞장서서 다른 기업들까지 동원하여 후원 모임을 만들었으며 대부분 중소기업으로서 거액보다는 소액기부를 통해 후원회를 육성해나간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예술가와 기업인의 협력으로 문화융성이 이루어지고 있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산에 부는 클래식 음악 열풍은 무엇보다 고려제강의 문화 창달에 대한 강한 의지와 그 결과로서 생긴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이 인프라의 토대 위에서 금난새라는 훌륭한 음악인 겸 교육자와 부산 기업인들 간 마음의 일치가 이루어져 지금처럼 클래식 음악의 바람이 세차게 불게 된 것입니다. 저는 금난새뮤직센터와 같은 음악의 산실이 부산뿐만 아니라 제주나 강릉, 속초, 영호남 여러 도시 등 전국 각지에 생겨나서 우리 가곡을 포함한 고전음악(우리 작곡가의 클래식 작품도 많음)이 전 국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꿈을 꾸어봅니다.

전국적으로 기업이 운영하는 많은 콘서트홀이 있고 기업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음악회들이 적지 않지만 금난새뮤직센터처럼 클래식 음악을 적극 보급하면서 젊은 음악가를 육성하는 음악의 산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요즘 수많은 학원과 연습실을 거느린 대중음악에 애증과 갈등, 희열과 애환 같은 인간적 정서가 배어 있다면 클래식 음악에는 이에 더하여 균형과 조화, 절제와 배려 등 인문적 가치가 녹아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저는 클래식 음악이 더 많이 보급되고 애호될수록 사회가 안정되고 행복해질 것으로 믿습니다. 지금 세계를 제압할 기세로 우뚝 선 우리의 대중음악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오랜 전통을 지닌 클래식 음악이 더 확산되어 우리의 국민정서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더 평화롭고 안정되고 더 행복한 나라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