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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인지력 걱정
홍승철 2022년 08월 11일 (목) 00:00:24

지난 반년 가까이 어찌된 셈인지 매일 10시간씩이나 잤습니다. 좀처럼 자는 시간을 줄일 수 없었습니다. 입원한 동안엔 7시간 이내로 잤는데 말이죠. 7월 중순에 와서야 변화가 생겼습니다. 9시간 정도로 줄었다가 요 며칠 사이 8시간 자기가 가능해졌습니다. 체력이 나아진 덕분이겠지요.

자는 시간을 줄였으니 시간을 벌었습니다. 일과 중 책 읽기를 얼마간 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퇴원 후 책 읽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고 읽는다 해도 과거 읽었던 책을 조금씩 다시 읽는 정도였습니다.

이제는 새 것을 읽겠다고 생각하고 『피아노의 역사』라는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재미가 없었으니까요. 내가 생각한 역사와 필자가 생각한 역사가 달랐나 봅니다. 너무 다양한 종류의 이야기가 섞여 있었습니다. 끈기를 가지고 어떤 이야기는 건너뛰면서 읽어내려고 애썼습니다. 결국은 포기했습니다. 80여 페이지를 읽었으니 참을성은 있었습니다.

한 가지 걱정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증상에 관해서입니다. 몸의 증상을 한마디로 하면 ‘편마비’입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신체와 정신에 걸쳐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는 병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입원 초기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인지력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두 달 정도 계속하다가 문제없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입원한 지 몇 달 뒤 담당 의사에게 언어 치료받기를 요청했습니다. 담당 의사는 문제가 없는데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가끔씩 말씨가 어눌해져서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는 말을 받아주어 치료 시간을 추가하였습니다.

그때 ‘병원과 건강관리 공단에서 증상이 없다든가 치료되었다 하는 기준은 제한적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받은 인지력에 문제가 없다는 판정도 미덥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책 읽기가 힘들었던 게 인지력의 문제 때문이 아닌지 걱정되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읽어야 하니 다음 책을 골랐습니다. 서울대학교 최무영 교수가 쓴 『물리학 강의』입니다. 앞의 책도 그렇지만 이 책은 누이동생이 3년 전 세상을 뜨고 난 뒤 짐을 정리하던 때 누이의 책장에서 골라 집에 가져온 책들 중 하나입니다. 학생 때는 경영학과를 다녔고 졸업한 뒤에는 오랜 기간 회사원으로 일했는데 이 책을 고른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자연과학개론이라는 과목을 들을 때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나이 서른 전후에 ‘20세기에는 과학이 굉장히 발전하였고 우리 생각에도 큰 영향을 미치니 과학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관심은 있었던 분야이지요.

배우려 하거나 읽은 기억은 없습니다. 『물리학 강의』를 읽기 시작하니 반가웠습니다. 내용이 흥미진진하였기 때문입니다. 왜 진작에 이런 책을 접하지 못했나 하는 탄성이 나와서 출간일을 보니 2008년 12월에 초판이 나왔고 읽고 있는 책은 2009년 1월에 나온 재판입니다. ‘이런 책이 더 일찍 나왔으면, 그리고 내가 이 책이라도 일찍 발견했으면····’

어떤 점이 그렇게 재미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한마디로는 호기심을 채워주어서라고 답하겠습니다. 과거에 어쩌다 한두 번 들은 적 있는 과학 용어들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으니 반갑고, 모르던 사실도 소개하고 알려주니 더 좋았습니다. 어떤 부분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 않는데 문제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요.

과학적 사고의 첫째 요소가 ‘기존지식에 대해 의식적으로 반성하는 것’이라는데, 과학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니 반가웠습니다. 회절(回折, 에돌이)이란 용어는 파동이 장애물을 만나면 돌아서 나가는 현상이랍니다. 언젠가 들었는데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림자 진 지역의 현상, 창문을 열었을 때 창과는 반대편 방향의 소리가 들려오는 현상을 연상하며 즐거웠습니다.

뉴턴 역학을 고전 역학이라 하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고전 역학과 현대 역학은 다른가? 둘을 구분하는 이유는 고전 역학이 틀려서인가?’ 책을 읽으면서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이라는 현대 역학은 고전 역학의 내용을 포함하는 넓은 범위의 이론이라는군요. 고전 역학으로 해결 못하는(다루지 않았으므로) 상대적인 시공간의 개념을 다룬다고요. 혼자만 몰랐을 수도 있지만 이제 의문을 풀었습니다.

책을 읽는 재미와 함께 다른 기쁨도 생겼습니다. 인지력에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을 날려 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의 책 읽기를 중단하고는 걱정했지만, 이번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관심은 갖고 있었지만 잘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를 무척 재미있게 읽고 있으니 말입니다. 복잡한 과학 수식이 나오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어도 전문 분야가 아니니까 그 정도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더위도 덜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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