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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드레스, 여덟 명의 신부
방석순 2022년 08월 26일 (금) 00:08:53

오래전 네덜란드 여행 중에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든 거리에서 보행자가 1순위, 자전거가 2순위, 자동차가 3순위라는 겁니다. 세계 최상위 교역 국가인 그곳 사람들이 자동차 속도보다 보행자와 자전거 안전을 더 중시한다니. 지금은 우리에게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일이지만 경제 효율을 우선시하던 당시로서는 신기하게만 들렸습니다. 또 암스테르담 시장님은 즐겨 자전거로 출퇴근하는데 그분의 자랑거리가 좀 특별했습니다. 바로 자전거에 매달고 다니는 물통이랍니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물건이어서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이었습니다. 멀쩡히 잘 쓰던 물건도 새로운 모양, 더 좋아진 기능을 찾아 바꾸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네와는 좀 다른 취향이었습니다.

암스테르담 도심에서는 좁은 통행로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건물이 위쪽에서 이마를 맞대고 있는 진기한 풍경을 보았습니다. 300년인가 되었다는 두 건물의 기반이 조금씩 기울어져 어느 때부턴가는 아예 두 건물이 서로를 의지하는 모양새가 된 것입니다. 그래도 안전 진단 결과 별 위험이 없다 해서 여전히 인파가 북적이는 상가 구실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고 나면 새로운 빌딩이 들어서고, 새로운 시가(市街),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알던 길에서도 헤매게 되는 우리네와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외신이 전한 또 다른 흥미로운 소식을 소개하려 합니다. 하나의 웨딩드레스로 여덟 명의 신부가 결혼식을 치른 이야기입니다. 최근 미국 시카고의 에버니저 루터 교회에서 스물일곱 살의 예쁜 신부 세레나 스톤버그가 72년의 세월이 묻은 하얀 비단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세레나가 입은 드레스는 그 옛날 그녀의 할머니가 처음 입고 시집갔던 옷이랍니다.

1950년 스물한 살의 처녀 아델 라슨은 로이 스톤버그라는 청년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결혼식을 위해 아델은 어머니와 함께 웨딩드레스 쇼핑에 나섰습니다. 시카고 다운타운의 마셜필드 백화점을 훑고 다니던 이들은 여덟 번째 가게에서 마음에 꼭 드는 드레스를 찾아냈습니다.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돈 100달러를 주고 마침내 아델은 이 드레스의 첫 번째 주인이 되었습니다.

언니 아델의 결혼식에 들러리 섰던 동생 엘리너는 그 드레스가 높은 만다린 칼라에 긴 소매와 긴 꼬리, 등 쪽이 작고 예쁜 여러 개의 단추로 장식된, 유행을 따르지 않은 매우 기품 있는 옷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3년 후 엘리너도 어머니가 진공 박스에 고이 간직해 두었던 그 드레스를 빌려 입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무려 16년이 흐른 1969년 이번에는 아델의 작은 동생 샤론이 또 한 번 그 드레스를 입고 혼례를 치렀습니다. 샤론은 “엄마가 우리에게 아델 언니의 드레스를 입으라고 권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오히려 제가 새 드레스를 사러 가자는 엄마에게 말했지요. ‘엄마, 난 언니 드레스를 입을 거야.’라고요.”

다시 13년이 지난 1982년 원 드레스 주인 아델의 딸인 수 스톤버그가 로버트 매카시에게 시집갈 때도 아주 당연한 듯이 엄마 아델의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결혼식 때마다 모든 신부가 저 나름대로 베일과 부케, 보석으로 치장, 자기만의 멋을 드러냈지만 하나같이 아델의 드레스를 입으며 가족의 짙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1990년에는 엘리너의 딸 캐럴 밀턴, 1991년에는 캐럴의 동생 진 밀턴, 2013년에는 샤론의 딸 줄리 프랭크가 모두 이모(姨母) 아델의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줄리는 다른 신부들에 비해 키가 월등히 커서 드레스에 장식 리본을 덧대고 좀 더 긴 베일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올해 아델의 손녀딸 세레나의 결혼식에 아쉽게도 드레스의 원래 주인인 아델은 이미 세상을 떠나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델의 딸(세레나의 어머니)과 (아델의) 두 동생, (아델의) 세 조카 등 여섯 명의 올드 신부가 모두 참석해 여덟 번째 드레스 주인공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세레나는 “내가 예전 할머니가 결혼식을 올린 이 교회 복도를 할머니의 드레스를 입고 걷고 있다는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올랐어요.” 하며 할머니와의 특별한 연대감을 떠올렸습니다.

아델 할머니의 드레스는 72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이렇게 동생에 이어 딸, 조카, 그리고 손녀딸이 결혼할 때마다 차례로 착용하면서 이 집안 결혼식의 한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가문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된 것입니다. 손녀 세레나가 어느 고급 백화점에서 백만 달러짜리 새 드레스를 산다 한들 아델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드레스보다 더 귀하다 할 수 있을까요? 세상 모든 것이 돈의 크기로만 가치가 매겨지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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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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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121.XXX.XXX.142)
작지만 확실한 행복
정말 이 세상 어느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새 드레스보다 감동이 더 큰 드레스이고
최고로 멋진 주인공들입니다..
우리에겐 8월의 마지막 주말 선물 같은 글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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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6 10:55:20
0 0
방석순 (124.XXX.XXX.108)
저도 외신을 읽으며 많이 놀랐답니다.
저는 우리 사회, 동양 3국이 특히 전통을 중시한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정말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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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7 11: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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