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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한 위조범 니코트라
허찬국 2022년 08월 29일 (월) 00:01:06

오래된 진기한 기록은 드물어 가치가 높습니다. 이런 기록물은 대개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지요. 종이와 인쇄술이 발명되면서 문자나 그림을 담은 기록물이 늘어났지만 오랫동안 온전히 보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오래된 서적도 희귀합니다. 국내에 두 권밖에 없다는, 한글 창제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에 대한 논란에서 보듯 오래된 희귀한 기록물은 귀하여 가치를 평가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에 비해 외국, 특히 유럽에는 잘 보존된 기록물들이 많습니다. 근대적 법치 제도의 효시로 여겨지는 마그나 카르타 (Magna Carta), 사후 그의 제자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글과 드로잉을 모아 만든 모음집(Leoni binding), 셰익스피어 자필 원고 등 필자도 많지는 않으나 역사적 의의가 큰 인상적인 옛날 기록문들을 직접 보았습니다.

유럽 이주민들의 역사가 300여 년밖에 되지 않는 미국에 오래된 유럽의 기록물이 드문 것이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19세기부터 부를 축적한 미국 수집가들이 늘며 유럽의 역사적 기록물, 예술품들이 대거 미국으로 유입되었습니다. 15세기 인쇄술 발명으로 유명한 구텐베르크가 1455년경 찍어낸 원본에 장식 그림이 추가된 성경이 예일대학교의 도서관 유리 보관함 안에 전시된 것을 보았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21본 중 하나인데, 오스트리아의 수도원에 20세기 초까지 보관되다 런던을 거쳐 미국 수집가가 구입한 후 1926년 예일대학교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귀한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하겠지요.

이 구텐베르크 성경과 유사한 경로로 10년쯤 후 미국 미시건대학교에 기증되어 귀한 대접을 받아오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자필 노트가 위작이라는 소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문제가 된 것은 1610년에 갈릴레이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던 한 쪽짜리 문서입니다. 갈릴레이가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당시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고, (태양계) 별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을 지지하게 된 것과 관련이 있는 내용입니다. 당시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목성을 계속 관찰한 결과 목성이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목성 주위 작은 별들(위성, 또는 달)이 목성 주변에 머무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위성들이 목성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여러 달에 걸쳐 자필로 기록한 메모로 사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미시간대 도서관은 최근까지 “지구가 아닌 대상의 주변을 도는 물체를 보여주는 최초의 관측 자료”라고 이 문서의 역사적, 과학적 의의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문서가 위조임을 밝혀낸 전문가는 메모의 윗부분과 몇 달 후에 쓰였을 아랫부분이 동일한 잉크로 작성된 것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균질한 잉크가 대량으로 생산되지 않던 시절이어서 의구심을 촉발한 거죠. 결정적인 단서는 종이였습니다. 종이를 빛에 비추었을 때 보이는 투명무늬 상호(watermark)에 따르면 그 종이가 177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갈릴레이가 그 메모를 작성했다는 시점에는 없었던 종이인 거지요. 위작임을 인정한 미시건대 도서관은 이 문서를 유용하게 활용할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위조범으로 지목된 이탈리아인 토비아 니코트라(Tobia Nicotra)가 대단한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그의 행적은 영화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의 블랙 코미디를 연상시킵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37년 그는 ‘세계에서 가장 능숙한 서명 위조가’라고 알려졌는데 서명, 문서, 음악을 망라하는 그가 손댄 분야는 다양했습니다. "모방은 최선의 칭찬이다"라는 시각에서 보면 그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유명한 인물들 명단과 분야를 보면 혀를 차게 됩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 음악가 헨델, 모차르트, 글룩, 바그너, 종교개혁 신학자 마르틴 루터, 미술가 및 과학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술가 미켈란젤로, 과학자 갈릴레오 등이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갈릴레이의 것으로 알려진 뉴욕의 모건도서관이 소장한 다른 문서도 미시건대의 경우와 유사한 모조품으로 판명되었다고 하니 천체과학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도가 꽤 높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음악에 대한 애정이 특별났던 모양입니다. 가짜 악보들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1932년에는 2년 전에 사망한 한 이탈리아 작곡가를 사칭하며 소규모 악단을 이끌고 미국에서 연주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진정 다재다능한 ‘르네상스맨(Renaissance man)’이 아닐까 생각 듭니다.

또 놀라운 사실은 그가 이탈리아 출신 명 지휘자 토스카니니(1886~1957)의 전기를 써 출판한 사실입니다. 1920년대 미국을 방문한 니코트라는 당시 토스카니니가 미국에서 엄청난 명성을 누리고 있음을 보고 그의 전기를 이탈리아어로 쓴 후 책이 영어로 번역되어 ‘Arturo Toscanini’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하지만 토스카니니의 아들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이 그 전기가 가공된 내용이 넘치는 문제가 많은 책이라 폄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토스카니니 전기 원본의 복사본이 아직까지도 아마존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1930년대 초 모차르트가 작곡한 악보라고 속여 자신이 쓴 악보를 고(古)음악 전문가로 활동하던 토스카니니의 아들에게 팔았던 일도 있었다니 그의 음악적 재능이 보통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범행 동기(?)와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의 모습이 니코트라 이야기가 ‘부다페스트 호텔’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데 한몫합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활동하던 그는 아내 외에 일곱 명의 애인이 있었고 이들의 거처를 마련해주느라 돈이 필요했다는 게 중요한 동기라는 거지요. 두 번째는 법과의 조우인데, 일부 사기 행각이 드러나 체포되어 1934년 법원으로부터 2년 형과 큰 벌금을 부과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북부 이탈리아를 지배하던 파시스트당(黨)이 그의 서명 위조 능력을 이용하려고 사면하여 그를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생몰연도나 생애에 대한 더 자세한 기록은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2차 세계대전을 무사히 넘기지 못했을 듯싶습니다. 권위나 명성에 약해지는 상류계층을 대상으로 사기행각을 이어가며 바쁜 가운데 혼자 낄낄거리기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자적 양심과 고집 때문에 온갖 구박을 받고 몸과 마음을 해쳐 고생한 갈릴레이와 비교해보면 사는 방법도,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방법도 여러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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