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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와 필기구의 헤게모니(1)
박종진 2022년 08월 31일 (수) 00:00:37

지난 8월 1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위해 우리 돈 약 360조 원을 투자하는, 이른바 ‘반도체 산업육성법’에 서명했습니다. 이것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고 앞으로 있을 치열한 반도체 전쟁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럼 반도체가 뭐기에 미국은 저렇게 엄청난 돈을 퍼붓는 것일까요? 간단히 알아보면, 전기가 통하는 도체,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가 있고 그 중간이 반도체입니다. 반도체는 저항의 크기를 조절하여 빛을 내는 등 전자산업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반도체는 크게 두 가지로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와 정보를 처리하는 비메모리가 있는데, 메모리 쪽이 우리나라의 기업인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필기구를 연구하는 제가 반도체 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은 바로 반도체 종류 중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분야 때문입니다. “정보를 저장한다.” 제 기준으로 보면 필기구입니다.

그리고 이런 필기구에 관한 헤게모니는 아주 오래전에도 있었고, 이것은 완벽하지 않았던 최초의 문자들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문자는 그리스어로 두 강 사이를 뜻하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나왔습니다. 여기서 두 강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입니다. 지금의 이라크 지역으로 기원전 3400년경입니다. 이곳에서 맨 처음 도시를 이루고 문자를 만든 사람들은 수메르인들이었는데, 이들은 두 강 사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점토에 뾰족하게 자른 갈대 등으로 눌러 기록을 남겼습니다.

   
  맥아와 보릿가루 수령 내역을 적은 점토판(기원전 3100~2900년)  

​이 점토판을 햇볕에 말리면 오래갔고 불에 구우면 반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겁고 부피를 많이 차지했습니다. 게다가 어려웠습니다. 설형문자(楔形文字)로 불리는 이 문자 체계는 나중에 이 지역을 점령하는 아카드,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고 아나톨리아(지금의 튀르키에)에 있다가 사라진 히타이트까지 3000년 넘게 사용되었습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또 하나의 새로운 문자가 등장했는데, 나일 강을 끼고 기원전 3100년경 통일을 이룬 이집트의 상형문자입니다. 사람의 머리, 손, 발, 사자, 벌, 새, 식물의 줄기 등으로 그려진 상형문자는 신전의 기둥과 벽에 새기기도 했지만, 나일 강 삼각주에 자라는 식물인 파피루스를 판판하게 종이처럼 만들고 골풀로 만든 붓으로 잉크를 찍어 쓰기도 했습니다.

이 방식은 파피루스를 얇게 자르고 가로와 세로로 붙여 파피루스 종이를 만들고, 잉크를 만들어야 하는 등 사람 손이 많이 들어가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보다 여러모로 우수했습니다. 부피가 작아 보관이 쉽고 가벼워 갖고 다니기 편리했습니다.

하지만 이 상형문자를 쓰고 그리는 것은 시간이 걸렸고 상당한 기술과 인내심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 상형문자의 필기체인 신관(神官)문자도 곧이어 등장했습니다. 이 문자들 역시 꽤나 오래 사용되었는데, 기원전 660년에 민중문자가 소개 된 후 종교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하다가 기원후 400년경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은 이 어렵고 불편한 글자들이 왜 그렇게 오랜 기간 사용된 것일까요? 이유는 문자를 아는 것이 힘이었고, 그것을 유지하는 비결은 독점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대에 문자는 아무나 배울 수 없었습니다. 아주 극소수가 배웠고 읽고 쓸 줄 아는 것은 대단한 권력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만 알고 싶어 했고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유리했습니다.

하지만 이 두 문명과 가까운 거리에 살았던 페니키아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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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커비 (110.XXX.XXX.5)
용산 중앙박물관에 점토판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는데 한번 가서 구경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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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1 17:56:19
0 0
박종진 (211.XXX.XXX.243)
저도 다녀왔습니다. 사진은 그 전시회에서 찍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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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6 12:41:16
0 0
Nerie (211.XXX.XXX.212)
반도체와 갈대펜, 정보 독점의 의미를 연결하시다니 대단합니다. 어려운 문자와 복잡한 필기체계가 쉽고 단순하게 바뀌는 과정은 교육과 정보의 대중화로도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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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1 15:15:38
0 0
박종진 (211.XXX.XXX.243)
요즘같이 정보의 접근이 쉬운시대로 가는데. 필기구의 발달이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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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6 12:40:25
0 0
단석 (39.XXX.XXX.217)
2편이 기대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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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1 14:52:44
0 0
박종진 (211.XXX.XXX.243)
저도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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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6 12:36:38
0 0
소라 (118.XXX.XXX.12)
필기구와 문자의 이야기가 함께 흘러가군요! 앞으로의 이야기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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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1 08:38:12
0 0
박종진 (211.XXX.XXX.243)
필기구와 문자 불가분의 관계를 관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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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6 12:36:17
0 0
김봉현 (106.XXX.XXX.109)
정보의 원천인 문자와 필기구의 역사와 변화를 이렇게 체계적으로 보는 즐거움이 대단할 것 같습니다.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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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1 08:12:50
0 0
박종진 (211.XXX.XXX.243)
다음 편 기대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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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6 12:34:1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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