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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정약용도서관에서
임철순 2022년 09월 01일 (목) 00:04:22

9월, ‘독서의 달’입니다. 처서(8월 23일) 이후 날씨가 시원해지면서 가을이 되니 책 읽기에 아주 좋습니다. 당송 8대가 중 한 명인 한유(韓愈, 768~824)가 아들에게 독서를 권한 글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의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때는 가을이라 장맛비 개고 새로 시원한 기운 들판에 들어오니 등잔불 점점 가까이할 만하고 책 거뒀다 폈다 할 만하다. 어찌 아침저녁으로 생각하지 않겠는가. 너를 위해 세월을 아껴야 하리라.”[時秋積雨霽 新凉入郊墟 燈火稍可親 簡編可卷舒 豈不旦夕念 爲爾惜居諸]

독서에 꼭 정해진 장소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독서라면 역시 도서관입니다. 읽을 수 있는 책이 많기도 하고 분위기와 공간이 정숙·쾌적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요즘 우리나라 도서관은 숫자가 많이 늘어난 데다 저마다 특징 있게 운영돼 지역주민들의 문화생활 공간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정약용도서관의 내부 구조나 열람석 배치는 시원하고 널찍하고 다양하다.  

나도 집에서 가까운 곳에 2020년 5월 문을 연 남양주 정약용도서관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주민입니다. 벼르고 벼르다가 7월에 처음 가본 뒤부터 이곳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전국에서 여섯 번째로 규모가 크다거나 국립중앙도서관장도 인테리어를 벤치마킹하려고 찾아와 보고 갔다거나 이곳에서 드라마를 찍었다는 이야기도 듣기에 즐겁습니다.

    
  다산 정약용 동상과 도서관 입구.
7월 중순 필자 촬영.
 

밤 10시에 갔는데 아무런 장애 없이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고, 자동 시스템을 통해 원하는 책을 한 번에 다섯 권까지 빌릴 수 있고, 번거로운 절차를 거칠 것 없이 도서 반납이 가능하게 한 장치, 각양각색으로 다양하게 배치한 열람석 등 모든 게 놀랍고 보기에 좋았습니다. 문화행사도 자주 개최해 ‘지혜와 휴식이 있는 곳’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서가가 그다지 높지 않은 것도 나름대로 친근감을 자아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있습니다. 도서 기증 문제입니다. 도서관의 서가에 빈 공간이 많기도 하고 내가 집에 갖고 있는 책을 기증하고 싶기도 해 문의하니 기증신청서에 필요한 사항을 써서 책과 함께 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증신청서가 기분을 상하게 합니다. “아래의 조건에 이의 없이 따를 것을 동의합니다.”라는 말 아래 이런 내용이 씌어 있습니다. “가.수증 채택 여부에 관여하지 않는다. 나.비채택된 기증신청 자료는 임의로 처분하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출간된 지 5년 이내의 도서만 받고, 다섯 권 이상의 전집류나 만화류, 밑줄 친 책은 받지 않는다는 등 조건이 여러 가지인데, 그런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기증해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는 한마디도 없이 마치 “책 받아주는 것만도 다행인 줄 알아라, 우리한테 필요없는 건 다 버리겠다. 귀찮다”고 을러대는 것 같습니다.

    
  도서반납 시스템은 이용하기 편리하다.  

책을 받아줄 건지 말 건지를 기증자 개인에게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기증도서 목록을 검색해야만 내가 낸 책이 기증된 건지 아닌지 한 달 가까이 또는 그 이상 지나서야 알 수 있습니다. 받지 않기로 한 책은 쓰레기로 내다버리는 게 아니라 ‘도서나눔코너’에 갖다 놓아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게 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도서관의 건물 구조나 인테리어, 열람석을 비롯한 각종 시설물 배치가 아무리 훌륭하고 시스템의 자동화가 잘 돼 있더라도 운영자, 종사자들의 마음을 담은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받쳐주지 않으면 겉과 속이 일치되기 어렵습니다.

도서기증 신청서의 문안을 어떻게 하면 더 친절하고 쉬운 말로 바꿀지, 어떻게 하면 책을 기증하고 싶은 생각을 더 우러나게 할지, 어떻게 하면 내다버리는 책이 아니라 좀더 수준 높고 희귀한 도서를 기증받을 수 있을지 연구하기 바랍니다. 책을 다루는 일은 공무원들이 그저 귀찮은 일반 민원 다루듯 해서는 안 됩니다.

주차장도 건물 이용자들의 수요에 비해 많이 모자라 보였습니다. 앞으로 행사나 강좌가 더 다양해지면 이용자가 계속 늘어날 텐데 좀 걱정스러웠습니다.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문화시설이 앞으로 더 멋지게 운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불만족스러운 점을 꼬집어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점은 아마도 정약용도서관만의 문제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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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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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석 (121.XXX.XXX.6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역시도 유사한 일을 겪은 터라 많은 공감이 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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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5 0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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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0.XXX.XXX.9)
댓글을 이제야 읽었네요.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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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9 07: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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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 (175.XXX.XXX.151)
종종 오래되고, 발행 부수도 몇 되지 않아 구하기 어려운 책을 찾아 도서관으로 향하고는 합니다. 선의로 그런 책을 기증하더라도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없다면 참 아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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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1 18: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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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22.XXX.XXX.214)
안타까운 일이지요. '쓰레기'를 잔뜩 갖다 버리는 사람들을 경계하다가 보니 빚어진 일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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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5 06: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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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호 (210.XXX.XXX.48)
선배님 고견 감사합니다 도서관장들에게 참고해서 반영토록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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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1 13: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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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118.XXX.XXX.80)
네. 감사합니다. 그래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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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1 16: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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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222.XXX.XXX.68)
임 국장님, 이제 남양주에 계시니 뵙기 어렵군요. 저는 해남 인송문학관 집필실에 2개월 예정으로 들어갑니다. 부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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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1 10: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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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118.XXX.XXX.80)
남양주라도 서울 안 멀어요. 해남이면 조옿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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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1 16: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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