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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연 사람을 그린 『소설 예수』
홍승철 2022년 09월 14일 (수) 00:12:39

윤석철의 『소설 예수』가 2020년에 1~4권이 나온 데 이어 금년 7월 하순, 5권에서 7권 마지막 권까지 발간됐습니다. 재작년 처음 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이야기의 막바지에 가까워지면서 긴장이 높아졌습니다. 내용도 현재의 상황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회상이 나온다 해도 현재 상황과 직결되는 이야기였습니다. 긴장이 더해지니 좀처럼 손에서 책을 뗄 수 없었습니다. ‘하루 이틀 사이에도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났구나.’ 누구의 생애라도 한 사람을 중심으로 보면 많은 일과 거기에 연관되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밀도 있게 그릴 일은 아니겠지요.

제 7권의 남은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는 마지막 장면이 기대되었습니다. 보통의 소설을 읽을 때와는 달랐습니다. 대체로 끝 부분이 가까워지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극적인 끝맺음이 될까?’ ‘어떤 감동을 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까지 읽고 보니 아주 차분했습니다. 예수 자신이 여러 번 말했듯이 그대로 형벌을 받으며 조용히 사라져 갔습니다. 다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생각을 전했습니다. ‘아, 작가는 이미 그러리라고 긴 이야기 속에서 말을 한 셈이지.’ 결말에 대한 아쉬움도 없었고 조용히 책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만큼 소설은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읽으면서 예수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말이나 행동을 자주 흉내 내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생활 주변의 사소한 일에 대입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를 대하는 인물들의 정치 놀음이 전개되는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지금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 대제사장 가야바의 사람들,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 측 알렉산더, 이들의 정치역학적 관계와 생각을 예수의 생각과 병렬하여 자세히 묘사해서 극적인 효과를 높여 주었습니다.

이전에서와 마찬가지로 성서 속에서 잘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소설 속에서 밀도 있게 그려져서 반가웠습니다. 사람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예수를 처형하기로 합니다. 예수의 말과 행동이 통치 체제와 부딪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토라(모세5경)에 위배되는 말을 하니 말입니다.

앞 이야기에서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는 기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예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희생 제물을 바쳐 제사하는 일로 죄의 용서를 받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안식일의 주인은 하느님이 아니고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창조한 이후 사람에게 자유를 주었고 간섭하지도 않으니 벌하거나 상줄 줄 일이 없다는 것이지요. 토라를 유대인 통치 체제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성전의 입장을 완전히 뒤집는 생각입니다.

그런가 하면 토라에 나와 있는 희년(禧年: 50년에 한 번 모든 이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땅은 원 주인에게 돌려주며 노예는 해방하라는 해)은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죽음 이후의 천국과 지옥을 내세워 사람들을 유혹하거나 위협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권력자에게 억압받고 있는 사람을 해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미래의 천국을 기다릴 일이 아니라 ‘지금 이 땅’ 위에서 이루어야 한다고 말로 귀결됩니다. 이에 대해 지배 계급인 가야바, 헤롯 안티파스, 빌라도는 예수를 제거하기로 합의합니다. 그들이 예수의 말이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는 잣대는 단순합니다. 전통과 규칙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체제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장은 이천년 전의 유대교 지도자에 대한 저항이 될 뿐 아니라 오늘날의 기독교 신자들에게도 도전이 됩니다. 이미 앞에서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소설 전편을 통해서 작가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이라고 그리고 있습니다. 사람이므로 최후가 가까워지면서 마음의 갈등도 겪습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세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리····’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예수는 하느님이 세상을 만든 다음에는 창조자로서 사람 위에 군림하지 않고 사람이 자유 의지로 세상을 살아가게 하고 스스로는 떠났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난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새로운 세계로 떠났다고 합니다. 오늘날 신자의 기도는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간구합니다”의 내용으로 구성됩니다. 사람의 자율에 맡기고 간섭하지 않는다는 생각과 배치되는 일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그는 하느님에게 질문하는 기도를 하는데 자주 아버지 요셉의 상(像)이 교차합니다. 예수의 질문에 아버지의 상이 대답을 합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사람에게 맡기고 떠났다는 말과 기도하는 모습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자에게 하느님의 정체에 대해 또 하나의 질문이 될 것입니다.

예수는 지배 계급에게서 죽음의 형벌을 받으리라고 예견하면서도 피하지 않습니다. 혼자만의 노력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을 알기에 제자들이 계속해서 씨를 뿌리는 사람이 되거나 그들 자신이 씨가 될 것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뜻, 즉 억압받는 사람이 자유를 얻고 이 땅 위에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이 지속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렇다고 나중에라도 성공할 것인지의 확신은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입니다. 다만 할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합니다. 누구에게나 생각을 전파하고 바리새파의 요하난이 대화를 원하니 기꺼이 그에게 자기 생각을 밝힙니다. 그러다 보니 그를 만난 적이 없는 로마의 정치인 아레니우스나 빌라도의 아내 클라우디아가 그를 범상치 않게 생각하게 되고 십자가형을 집행하는 로마군 백부장도 그를 달리 생각하게 합니다. 그들에게도 씨를 뿌린 셈입니다.

『소설 예수』는 사람들이 통념으로 알거나 믿어온 바에 대해 현학적이지 않은 단순한 질문을 던지며 새롭게 인식한 예수의 생각과 모습을 그려냅니다. 그러다가 결론적으로 작가는 ‘하느님의 시대가 사라지고 사람의 시대 문을 연 사람 예수’라고 말하며, 그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처음으로 분리의 울음을 울었다’고 합니다. 구원을 완성한 존재가 아니라 해방을 시작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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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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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용 (182.XXX.XXX.174)
벌써 오래된 글이네요,
전7권을 삼매에 들어 완독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자유주의 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철학적 변증으로서 인격적존재인 하나님과 예수의 존재를 밝히려는 도전적 저작인 듯합니다.
기독교 원리주의자, 성경의 무오류성에 천착하는 이들은 어떻게 느낄지 궁금합니다.
기회가 되면 접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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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4 15:42:03
0 0
이병길 (210.XXX.XXX.130)
역시 대광 출신은 다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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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4 11:54:17
0 0
홍승철 (221.XXX.XXX.146)
많은 영향을 받았지요. 생각은 무척 달라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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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4 12:01:33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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