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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년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은...”
함인희 2022년 09월 23일 (금) 00:00:08

당산마을에서 제 걸음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행복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 6-2(아니면 6-1) 생활권 공사가 한창입니다. 바로 그 앞으로는 논과 밭이 펼쳐져 있는데요, 올봄에 그곳에 7,000세대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습니다. 덕분인가, 요즘 당산마을 원룸은 완전 '만땅'(가득 채운다는 뜻의 만(満)과 영어단어 탱크(Tank, タンク)의 합성어라는 것을 처음 알았네요)이구요, 주변 식당들은 건설모 쓴 인부들로 늘 북적북적댑니다. 왁자지껄 들려오는 말소리 중에 중국어와 베트남어 정도는 구분이 되는데요,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말소리들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갑니다.

공사판이 벌어지는 곳에서 '함바집'(이 또한 건설현장식당의 일본어 표현임을 이제야 확인했네요)을 차려 돈을 쓸어 담았다는 여사장이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전국의 건설현장을 따라다니며 '함바집'을 해서 돈을 억수로 모은 여사장이 5년 전 이곳 당산마을에 식당을 차리고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이름도 거창한 백억 뷔페! 처음 문 열었을 때는 1인분에 5,000원이었구요, ‘월식(月食) 환영!’ ‘원룸 구해드립니다.’ ‘신용카드 결제 시 부가세 별도’ 등의 메모들이 식당 안 곳곳에 붙어 있었답니다.

이곳에선 얼굴을 두어 번만 마주치면 어디서 온 뉘신지 통성명하고 곧바로 단골손님이 되곤 합니다. 저는 조치원 홈플러스 계산대 아주머님들하고도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구요, 콩나물국밥집, 금단양만 장어집, 동치미 막국수집 어딜 가든 VIP 대접(?)을 받는답니다. 백억 뷔페도 두 번째 찾아간 날부터 단골이 되었지요. 여사장 인심이 얼마나 후하던지 아침에 담근 겉절이라며 한 보시기 싸주고, 누룽지가 알맞게 눌었다며 커다란 비닐봉지에 한가득 담아주고, 뒷밭에서 딴 거라며 상추에 가지에 토마토에 갈 때마다 선물을 한 보따리씩 안겨주더라구요.

여사장은 엄청 부지런한 데다 체력도 무척 강해 보였습니다. 하루 장사를 위해 매일 새벽 4시부터 준비를 시작하는데 200명분 정도 차리는 건 일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밥장사해서 이문을 남기려면 싼값에 신선한 식재료 구하는 것이 일등 노하우’인데, 일부 채소는 친정어머님이 직접 밭에서 기른 것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할 수 없이 수입산을 쓴다고 했습니다. 메뉴는 밥과 국 그리고 신김치에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기본으로 하고, 반찬 10여 가지를 매일 매 끼니 바꿔서 내는데 머릿속에 100가지 넘는 메뉴가 왔다갔다 한다고 했습니다.

저와 이모님은 건설현장 인부들이 한 차례 다녀간 후 손님이 뜸해진 시간을 이용해서 코로나 이전엔 백억 뷔페를 자주 찾아갔었지요. 저희가 가면 여사장은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맞으면서 점심이나 함께하자며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 겁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복스런 얼굴의 여사장. 여자 나이는 비밀이라며 끝내 밝히지 않았는데요, 스스로는 '남자들 속을 무진장 애타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하네요. 당시 동거하던 남자는 세 번째 남편인데, 당산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기사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남자에 관해서는 도가 텄다는 여사장. 자신에겐 원칙이 하나 있는데요, 남자 만나 정들어 함께 살게 되더라도 혼인신고는 절대 안 한다고 했습니다. 대신 결혼식만큼은 세 번 모두 드레스 입고 제대로 격식 갖추어 올렸다네요. 아이는 물론 절대로 낳지 않았구요. 친정어머니께서 “우리 딸년 시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은 혼인신고 안 하고 자식새끼 안 퍼질러 놓은 것”이라 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 듣고 1년쯤 지났을 때인가 봅니다. 여사장은 읍내에서 주류(酒類) 중간도매상을 한다는 남자와 네 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와 이모님은 아쉽게도 초대를 받지 못했네요. 그리고는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자 백억 뷔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어딘가로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결혼은 '문화적 음모'(cultural conspiracy)라 했던가요? 여사장은 뜻밖의 깨달음을 안겨주곤 홀연히 사라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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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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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61.XXX.XXX.219)
네번째 결혼해선 아이도 낳아 기르면서 행복하게 살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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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3 18:50:55
0 0
쏘시오 (125.XXX.XXX.230)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글에서 나온 그 공사판 중 일부는 완공됐고 일부는 또 시작했으니
누군가의 천억 뷔페도 성업 중이겠네요 ㅎㅎ
교수님의 사회학적 관찰력 존경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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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3 11: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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