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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에서
방석순 2022년 09월 28일 (수) 00:03:12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해 모처럼 주민센터를 찾았습니다. 예전에는 동회, 동사무소로 불리던 곳이 언제부턴가 주민자치센터, 지역에 따라서는 행정복지센터로 간판을 바꿔 달았습니다. 주민이 마을 행정을 자치적으로 하는 곳인지, 주민 복지를 위한 행정을 하는 곳인지, 이름을 바꾼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일 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긴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 관공서의 명칭이나 홍보문구들은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를 찾아냈을까 싶을 정도로 멋져 보이는 게 많습니다. 더러 영문, 또는 한문에 한글로 짜깁기를 해서 억지스러운 것들도 있지만. ‘아이 서울 유(I Seoul You)’라는 문구는 이직도 입에 잘 붙질 않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주민센터의 외관들도 예전과는 판이합니다. 어떤 곳은 무슨 미술 전시관이나 예술단체 회관으로 착각할 만큼 세련되고 멋집니다. 그 속에서 빙글빙글 여유 있게 회전의자를 돌리는 직원들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근무하는 분위기도 분명 그만큼 좋아졌겠지요.

 
왼편은 경기도 양주시 회천4동 행정복지센터, 오른편은 평택시 비전1동 행정복지센터(글 내용과는 상관없음)

그런데 어쩌다가 한 번씩 들르는 이 동네 주민센터의 분위기는 어쩐지 늘 어정쩡합니다. 누가 들어오거나 말거나 시선도 주지 않고 굳게 다문 입, 그래서 함부로 말 붙이기가 겁이 날 정도입니다. 순번표를 빼는 기계를 찾다가 마침 출입구 가까이에서 민원서류 자동발급기를 발견했습니다. ‘그래, 굳이 저런 사람들에게 말 붙일 필요 있나. 저걸로 해결하지 뭐.’ 달려들어 기계 작동을 시작했는데 웬걸, 지문 인식이 안 되었다고 다시 하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또 한 번 시도했는데도 역시 헛방입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웬 젊은 목소리가 “손가락을 여기다 대셔야 합니다.” 하고 일러줍니다. 예상치 못한 친절에 깜짝 놀라 쳐다보니 잘생긴 총각이었습니다. 아니, 총각 같은 신랑인가. 어쨌거나 제가 손가락을 갖다 댄 곳은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라고 예시한 그림이고, 그 오른쪽에 지문 인식 렌즈 같은 게 따로 붙어 있었습니다.

덕분에 일사천리로 신청 절차를 진행하니 얼마의 수수료를 내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동전 몇 닢을 넣자 조금 후 기계 아래쪽에서 두 장짜리 주민등록등본이 스테이플로 딱 찍혀서 스르르 미끄러져 나옵니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각종 민원서류가 자동으로 기계에서 쏟아져 나오고. 우체국이나 우체통을 찾는 대신 이메일로 편지를 보내고, 거기다 사진은 물론 음악, 동영상까지 동봉(첨부)하고. 세금도 컴퓨터로 신고하고 납부까지 온라인으로. 이렇게 모든 게 전산화, 자동화되면 예전 그 일을 맡아보던 사람들은 다 무얼 하며 지내게 될까?’

그렇게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청년이 싱긋이 웃으며 다른 볼일은 없느냐고 묻습니다. 다시 한 번 놀라서 정말 엉뚱한 소리를 내뱉고 말았습니다.

“저기, 이건 딴 얘긴데, 왜 여기 직원들은 하나같이 저렇게 얼굴이 뿌루퉁한가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 어쩌다 한 번씩 들르는데 그때마다 저래서 말 붙이기도 어렵네. 이렇게 환한 얼굴을 본 건 오늘 젊은이가 처음입니다.”

칭찬인지, 비난인지, 헷갈리는 제 말에 청년은 영 표정 관리가 어려운 눈치였습니다. 아주 난처해진 얼굴로 “아, 예, 그런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더 이상 제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답변했습니다. 저 역시 헛나온 말이 더 이상 길어졌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싶어서 얼른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수고하세요.” 하고는 쏜살같이 출입문을 밀고 나왔습니다.

사실 주민센터에 바라는 말들은 따로 있었는데 정작 마주친 청년에게는 허튼소리만 하고 말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차량은 늘고 주차는 어려워 주민들 사이에도 신경이 날카로워져 가는데 주차 공간을 더 마련해 주었으면.’ ‘화단 가꾸기도 좋지만 우선 길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부터 처리하고 단속해주었으면.’ ‘세상 모든 일이 기계화, 전산화되어 가는데 나이 든 사람들을 위해 전산기기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는 부서 같은 게 생겼으면.’

마을 주민과 가장 가까운 행정관서가 바로 주민센터입니다. 그러나 주민들이 마음속으로 바라는 바를 선뜻 나서서 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쩐지 잘난 체하는 것 같고 주제넘어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민센터 직원들이 직접 나서서 마을과 주민을 살피는 모습도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찾아가는 행정’, ‘찾아가는 복지’라는 홍보 문구는 여전히 듣기 좋은 말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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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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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로켓 (61.XXX.XXX.59)
공감 가는 글을 주셔 잘 읽었습니다.
도시 권에 있는 소위 관공서들은 옛날의 동사무소, 면사무소, 군청 들과는 규모가 다르고 디자인도 세련을 넘어 사치스럽다는 감도 느낍니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찾은 서민은 어리둥절하고 위축됩니다.
모두 나라에 돈이 많아진 덕이겠지요!
근무하는 공무원들도 편안하고 아늑한 환경에서 근무해야겠지만그보다는 국민에게 다가서는 관공서가 우선인 것 같습니다.
재정이 빈약한 지방의 군청 등 행정기관을 들어가 보면 옛날 낡은 건물의 좁은 공간에서 민원인들을 맞이해 오손도손 상담 하는 것을 보고 더 인간적인 감을 느끼는 것은 나이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관공서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봉사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진리입니다
스마트한 건물과 시설 디자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정신 가짐이 중요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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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8 09: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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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24.XXX.XXX.108)
좋은 말씀에 감사합니다.
주민센터의 세련되고 멋진 사무공간에 대해 주민으로서 사실 자랑스러운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우리 사회가 발전했다는 증표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주민센터가 그에 걸맞게 역할을 해준다면 더 좋지 않을까, 정말 찾아가는 행정이나 복지가 이루어진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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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8 15: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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