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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國葬), 브렉시트, 그리고 파운드화
허찬국 2022년 09월 29일 (목) 00:35:42

여왕의 서거로 더 심해질 브렉시트 후유증

이달 초순 영국에서 70년간 재위했던 엘리자베스 2세가 타계하며 전통적 장엄과 위풍이 넘치는 의식(pomp and circumstance), 국장(國葬)이 치러졌습니다. CNN 방송의 실시간 중계를 보며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을 비롯해서 런던을 여행했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마지막으로 갔던 2019년 여름 마침 버킹엄 궁(宮)에서 영국 왕실이 보유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드로잉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구경했습니다. 여왕이 매년 여름을 런던보다 선선한 스코틀랜드의 밸모럴 성에서 보낼 때를 맞추어 버킹엄궁을 유로 관람객들에 개방하는데, 그 해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서거 500주년이어서 특별전시회가 열린 것이지요.

영국의 정식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그리고 북아일랜드 4개 나라로 구성되었습니다. 나름대로 독특한 역사나 언어를 보유한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국가입니다. 70년간이나 연합왕국의 상징적 군주로 익숙한 존재였던 여왕은 이런 연합을 유지하는 데 적지 않은 구심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밤샘을 불사하는 조문객 행렬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국장이 끝나자마자 나라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영국은 다른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팬데믹과 이어지는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과 같은 악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영국이 자초한 악재, EU 탈퇴(브렉시트) 후유증은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영국과 다른 EU회원국 간 인적, 물적 이동에 아무 제한이 없던 브렉시트 이전과 달리 새로운 출입국 절차가 필요한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EU회원국 아일랜드와 같은 섬에 있으나 영국의 일부인 북아일랜드가 난제입니다.

친(親)아일랜드 가톨릭 신도와 친영국 신교도들 간 유혈분쟁이 오랫동안 이어지다 1998년 어렵게 문제를 봉합하는 협정으로 불안한 평화가 유지되어오고 있는 민감한 곳이지요. 그런데 브렉시트로 인해 두 나라의 국경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브렉시트 전에는 이웃 동네 가듯 자유로이 아일랜드를 드나들던 북아일랜드 사람들은 뜬금없는 국경 통제를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EU와 영국은 북아일랜드를 브렉시트 이전처럼 대우하기로 하는 ‘북아일랜드 프로토콜’에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근래 영국 정부는 어렵게 도출한 이 프로토콜을 번복하려고 합니다. EU는 말도 꺼내지 말라는 입장이고, 브렉시트를 좋지 않게 보는 미국 바이든 정부도 불편해하고 있습니다. 만약 프로토콜 번복으로 북아일랜드 갈등이 재연되면 판도라 상자가 열리며 온갖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가 큽니다. 또 다른 연합왕국의 일원인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개연성도 커 보입니다. 2016년 EU 탈퇴/잔류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스코틀랜드에서는 60% 이상의 유권자가 EU잔류를 지지했기 때문에 브렉시트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진영에 유리한 이슈입니다. 자치정부는 내년 10월 독립 여부를 묻는 스코틀랜드 국민투표를 실시할 계획입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몇 년 후 영국이 어떤 모습일지 예상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파운드화 약세로 치달은 영국의 지난 20년

이번 주 영국 돈 파운드 가치가 크게 하락한 것이 주요 경제 뉴스였습니다. 새로 들어선 트러스 총리의 정부가 의욕적으로 내세운 감세방안이 혹평을 받으며 불거진 문제입니다. 지난 20여 년간 영국 경제의 위상을 영국 돈 파운드의 가치가 어떻게 변했나를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돈의 가치를 다른 나라 화폐로 측정한 것이 환율인데 두 나라의 상대적 경제 사정을 잘 보여줍니다. 영국의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이웃인 독일, 프랑스 등 EU 주요국들이 사용하는 유로화가 좋은 비교 대상이 됩니다. 아래 그림의 세로축은 1파운드가 유로화로 표시된 가치를, 가로축은 유로화가 사용되기 시작한 1999년 1월부터 2022년 8월까지 시점을 표시합니다.

유로화 출범 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까지 1파운드가 1.5~1.7유로 수준이었으나 이제는 1.2유로를 하회하고 있습니다. 금융위기 당시 영국도 미국과 비슷하게 주택금융시장이 붕괴하며 엄청난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2008/9년 파운드 가치가 크게 하락한 것이죠. 요즘 국내에서 원화 환율 움직임을 설명하는 방식에 따르면 영국 학생의 독일로 유학하는 비용이 약 20~30% 올라간 거지요.

   

그 이후 점차 파운드화 가치가 오르며 2015년경에는 2008년 이전 수준으로 복귀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2016년 브렉시트 폭탄이 터지며 파운드화 가치는 크게 하락했고 그 이후 힘을 못 쓰는 양상입니다. 브렉시트를 밀어붙인 집권당(보수당)과 선동가들은 영국이 EU를 탈퇴하여 각종 규제의 굴레를 벗어나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가능한 곳, 대대적인 자유무역 국가로 변신할 것이라고 광고하였습니다. 대영제국의 번영을 재현한다는 암시였는데 사기성 농후한 마케팅이었죠. 탈퇴 이후 영국의 실상은 ‘제국의 영화 부활’을 코앞에 둔 곳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더 작아진 영국이 미래의 모습일 수 있지요.

권위주의, 독재 세력이 득세하고 있어 자유민주 진영의 안정과 협조가 더 절실한 때에 최근 새롭게 출범한 트러스 총리의 정부가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우며 상황이 악화되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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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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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순 (211.XXX.XXX.103)
현재 영국의 모습과 EU 와의 관계, 그리고 미래 영국의 모습에 대한 불안한 전망까지, 짧은 글을 통해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잘 써주신 유익한 글 아주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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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9 11: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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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찬국 (119.XXX.XXX.206)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22-09-30 1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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