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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여왕 장례식을 보고
임종건 2022년 09월 30일 (금) 00:02:22

9월 8일 스코트랜드의 발모럴 성에서 서거해 잉글랜드의 윈저 성에서 19일 안장되기까지 11일 간의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은 다시 보기 어려운 세기적인 장례식이었다. 거기에는 영국의 전통과 문화가 있었고, 대영제국의 영화가 있었다. 하관식이 열렸던 19일 런던에서 윈저성에 이르는 30Km 연도에는 100만 명의 영국인들이 여왕의 마지막 길을 꽃으로, 박수로 송별했다. 영국의 언론들은 전 세계에서 여왕의 장례식을 시청한 사람을 40억 명으로 추산했다.

여왕이 살아 있었을 때 나는 여왕이 참척(慘慽)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했었다. 1948년 생으로 나와 동갑인 찰스 왕세자가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64년을 기다린 왕세자가 왕관을 쓰지도 못하고 먼저 죽는다면 그런 죽음에 대한 원망을 여왕의 노욕 때문으로 돌릴 사람도 있겠다 싶었다.

공주로, 여왕으로, 꽃처럼 살다 간 엘리자베스 2세여왕의 마지막 가는 도로 위와 영구차 지붕 위에는 시민들이 던진 꽃다발이 수북했다

여왕이 병석에서 죽지 않은 것도 축복이다. 죽기 이틀 전 TV에 중계된 새 총리 리즈 트러스의 알현을 받을 때까지도 여왕은 건강한 모습이었다. 죽기 직전까지 웃는 얼굴로 국사를 챙긴 여왕은 고통 없이 죽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부러움인가.

74세의 찰스3세 국왕은 세계 최고령 국왕 등극이다. 왕세자로서 인기가 없었던 터라 그가 병이라도 얻는다면 왕위는 지지도 여론 조사에서 아버지를 훨씬 앞서는 여왕의 손자 윌리엄 왕세손에게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찰스 국왕도 더 늙지 않은 나이에 왕좌를 물려받아 다행이다 싶었다.

여왕의 향년 96세, 재위 70년은 영국 인구의 95% 이상이 여왕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인들에게 여왕은 자신들의 역사이고 삶 자체였다. 그 역사 속에는 승리와 영광의 순간도 있었으나 좌절과 시련도 많았다.

여왕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할 무렵부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 거느렸던 많은 식민지국가들이 독립했고, 제국의 영화는 시들었다. 세계의 패권은 한 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에 넘어갔다.

여왕에게 영광의 순간이 언제였을까를 생각해본다. 아마도 공주의 신분으로 운전병으로 참전한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승리했을 때, 1980년대 영국이 미국과 함께 소련 공산체제 해체를 달성했을 때가 얼른 떠오른다.

그밖에 ‘철의 여인’으로 불리던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인 마거릿 대처 정부에서 ‘영국병’ 치유에 성공했을 때, 아르헨티나와의 영토분쟁이었던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을 막아냈을 때도 여왕에겐 기쁨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반면, 북아일랜드의 내전, 영국의 EU탈퇴 이후 지속되는 경제난 그리고 끊임없이 터지는 왕실의 스캔들과 왕실폐지론으로 인해 여왕은 불면의 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특히 왕실의 스캔들은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세자빈의 이혼과, 다이애나빈의 비운의 사망으로 이어져 아직도 왕실에 대한 불신의 요인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여왕의 장례식에는 세계 500여명의 국가원수와 국왕이 조문했다. 최대의 국제행사인 유엔총회에서도 볼 수 없는 국가원수들의 대집합이었다. 여왕을 국가원수로 받드는 나라가 14개국이고, 영연방으로 남아 있는 국가도 50여 개국이다. 거기에서 대영제국의 잔영을 보는 듯했다.

장례기간 동안 나의 귓전을 울린 소리는 여왕의 관을 운구하고, 좌우로 늘어서 행진하는 근위병들의 ‘저벅저벅’ 군화발자국 소리와 기병대의 말발굽 소리였다. 붉은 색 제복에 검은 털모자를 쓴 근위병의 발자국 소리는 세계를 누비며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던 제국군대의 진격의 소리처럼 들렸다.

영국 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나흘간 일반 조문을 받자 조문행렬이 8Km나 밤낮없이 늘어섰다. 연도에 늘어선 조문인파 가운데는 어린 자녀를 대동한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려고 데리고 왔다고 했다.

대영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장례제도는 일반인들에겐 생소하고 복잡한 것이겠지만, 자랑스런 문화이자 지킬 가치가 있는 전통으로 여겨지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영국의 현 집권당의 당명은 20세기 중 65년을 집권한 보수당(Conservatives)이다. 영국은 역시 보수적인 국민성이 강한 나라다.

입헌군주제나 왕정을 유지하는 나라가 많지만 앞으로 어느 나라의 군주가 엘리자베스 여왕만큼 크고 넓은 애도를 받을 것인가? 여왕에 대한 추모는 세계사를 주도한 영국이라는 나라와 오랜 재위기간만이 아니라 여왕의 정갈하고 품위 있는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국에서조차 그런 추모는 다시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군주에 대한 충성심이나 국력면에선 일본도 영국에 못지않으나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에는 비교가 안 된다. 나치와 손잡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라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일본이 조선에서 자행한 식민통치만 봐도 영국에 비할 수 없이 억압적이고 비문명적이었다.

혁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세에 의해 왕권을 빼앗긴 조선왕조의 국장을 떠올려본다. 기록으로 보면 조선왕조의 국장은 기간이나 동원인력, 장례절차의 까다로움에서 영국왕실에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영국여왕의 관을 맨 근위병은 8명이었으나 조선 정조대왕의 관을 멘 담배군은 2,280명, 운구호위행렬은 4,500명이나 됐다.

장례기간도 3개월에서 5개월이 걸렸다. 석물 제작 등 능(陵) 조성에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왕의 유언을 듣는 고명(顧命)에서 죽음을 확인하는 초종(初終), 염(殮), 운구, 매장 이후 3년상에 이르는 절차는 대대적인 간소화 절차 없이 오늘날 실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나마 조선왕실의 적통은 일제의 강요에 의해 왕세자를 일본황족과 정략결혼케 함으로써 입헌군주의 맥도 완전히 끊겼다.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에서 나라가 지역, 계층, 세대, 정파 간에 갈가리 찢겨 대립과 갈등으로 국력소모가 극심하다. 이런 때에 우리에게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깨끗한 삶으로 모범을 보여, 민심을 통합하고, 국난을 극복하는 구심점으로의 군주가 있다면 어떨까 하고 꿈같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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