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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이의 글을 읽는 즐거움
홍승철 2022년 10월 17일 (월) 01:05:40

생각해 보니 그와 한 부서에서 근무한 기간은 1년뿐입니다. 그전엔 단 한 번 점심 먹으면서 소개받은 일은 있어도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습니다. 1년간의 한 부서 근무를 끝낸 뒤로는 30년째 가끔씩 저녁 약속으로 만났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때로 대화가 뜸한 적이 있었지만 만남은 최근까지 이어 오고 있습니다.

저녁 자리의 대화는 술을 곁들이다 보면 들뜬 상태에서 그 자리에서만 즐거운 이야기로 끝나곤 하는 일이 많지만, 그와의 대화는 맑은 정신의 상황이 그대로 연장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그가 책을 냈다 할 때 만남에서 들었거나 단체 카톡방을 통해 이미 읽은 이야기가 많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별 기대가 없었다는 말이지요.

그의 책을 선물로 받으니 제목은 『내가 걸어온 길, 가야 할 길』이었습니다. 일단 서문을 읽어보고 목차를 훑어보았습니다. 주제를 몇 가지로 구분하여 편집하였는데 회사 일과는 직접 연관되지 않아 보이는 주제들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아, 그러면 좀 다른 이야기도 있겠네.‘

   

일단 읽을 만하다고 긍정적으로 여기기 시작하니 다른 기억도 났습니다.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 그리고 그만둔 이후에도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와 한 부서에서 근무한 후배들 중 내가 존경하는 이가 두 사람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김성은이란 인물이다.” 그러니 읽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글을 읽기 시작하니 쉬우면서도 편한 글이어서 줄줄 읽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인들과 대화할 때도 그런 투로 말하면서 주제의 내용을 짧은 어휘나 문장으로 정리하곤 하던 그가 생각났습니다.

“주식 시세가 하락할 때 사는 의사 결정을 ‘두려움을 사는 행위’라고도 한다”거니 “끈기 있게 기다림으로써 큰 폭의 이익을 실현하는 일은 ‘기다림의 대가(代價)’”라는 말은 상황을 짧은 말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러면 핵심이 머릿속에서 잘 정리가 되지요. 그의 특성이 잘 드러나면서 내가 미처 생각 못한 점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때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쓴 부분도 있었는데 그런 글을 읽으면 반가웠습니다. 회사의 CEO까지 지낸 경험을 일반 사회의 일과 결부하여 그려낸 내용은 퇴직 후의 생각이라고 보입니다. 그런 이야기에서는 이제는 여유로워진 필자의 삶을 느끼게도 했습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밥 먹는 일을 쓴 글에서는 만나는 이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중간 주제가 바뀌는 페이지에는 필자가 직접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서울과 근교 여러 곳의 풍경을 흑백으로 옅게 처리하여 그가 말한 대로 생각하며 걸어 다니는 길을 보여 줍니다.

회사 시절의 일이든 또는 근래의 개인 일이든 어떤 글에서도 거창한 담론이 아닌 일상의 언어로 생활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렇지’ 하는 공감을 쉽게 이끌어냅니다. 아래 글은 한 예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제 그릇만큼 물을 얻어 간다고 한다. 큰 그릇은 많이, 작은 그릇은 적게 얻고, 그리고 그릇이 없어서 못 받아 가는 사람도 있다. 간혹 큰 그릇을 들고 서 있는데도 물을 못 받아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그릇을 거꾸로 들고 있는 사람이다. 자기 그릇의 생김새나 크기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릇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가치와 평가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운동’과 ‘혁신’은 별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서로 다른 현상에서 공통점을 생각해낸 일이 내가 가끔 생각하기도 하고 즐기기도 하는 일이어서 역시 반가웠습니다.

프랑스 니스의 어떤 카페는 손님의 태도에 따라 커피 가격을 달리하는 가격표를 붙여 놓았다는 글을 읽으면서는 10여 년 전 아프리카 세네갈의 프랑스 문화원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게 돼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 문화원 뜰의 야외 식당에서 “생맥주 두 잔”이라고 주문했는데 현지인 종업원이 한참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참다못해 종업원을 불러 주문한 지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불평했더니, 대꾸하기를 “당신들이 예의를 안 지켰다”고 했습니다. “생맥주 두 잔을 주세요”라고 말해야 한다는 나무람이었지요. 거기서는 가격이 차이 난 게 아니라 서비스 수준이 달라진 거지요.

이미 30년 전에 아마도 술잔을 같이 기울이며 통탄하듯 말한 이야기도 글로 썼습니다. “무엇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는 것도 가치를 높이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조직 안에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그렇지 못한 많은 현상을 생각하며 헛헛함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글을 읽어 나가니 여느 책과는 다른 흥미가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대화를 이어온 필자 김성은의 글을 읽으면서 재미, 공감, 새로운 지혜를 얻은 사실이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내게 즐거움의 항목을 하나 더 추가해준 일이었습니다.

* 책은 절판되어 서점에서 살 수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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