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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 장날을 기다리는 마음
함인희 2022년 10월 27일 (목) 00:01:56

이름도 정겨운 조치원댁이 된 지도 어느새 열두 해가 흘렀네요. 조치원살이의 재미를 따져보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라지만, 그중에서도 장날을 기다리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답니다.

저희 이모님(블루베리 농장 주인장)은 조치원읍 신흥리에 자리한 대동국민학교 출신입니다. 학창 시절 “조치원 5일장은 언제 서나요?”라는 시험문제가 나왔는데, ‘보나마나 5일에 서겠지’ 해서 5일이라고 자신 있게 써냈다가 보기 좋게 틀렸던 기억이 난다며 웃음 지으시더라구요. 조치원 장날은 4와 9로 끝나는 날에 선답니다.

제가 장날을 기다리는 이유는 가지 오이 상추 배추 같은 채소를 한 보따리씩 살 수 있는 데다, 철마다 바뀌는 과일을 무진장 싼 값에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여름만 해도 참외와 복숭아를 배가 터지도록 먹었습니다. 홈플러스나 싱싱장터(로컬푸드)에서 개당 2,000원씩 하는 참외를 장날 시장에서는 개당 500원이면 살 수 있습니다. 참외 출하가 절정에 달할 때는 어른 주먹보다 큰 참외를 커다란 비닐봉지에 20개 넘게 담아 단돈(?) 1만 원에 팝니다. 행여 맛이 싱겁거나 신선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의심은 안 하셔도 됩니다. 달콤한 맛이 일품이요 아삭한 식감까지 갖춘 장날 참외는 가성비 가심비 모두 최고랍니다.

복숭아 철이 시작되면 조치원 인근에는 도로변에 복숭아 매대가 속속 등장하고, 복숭아를 주제로 한 글짓기 대회가 열리는가 하면, 복숭아 축제 한마당이 펼쳐집니다. 예전엔 복사꽃 미인 선발대회도 치렀을 겁니다. 복숭아 꽃망울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조치원은 ‘울긋불긋 꽃대궐’이 되고, 환갑 지나 손주까지 본 할머니 마음도 괜시리 싱숭생숭해지곤 한답니다.

복숭아는 한 번 집었다 놓으면 그대로 손자국이 남을 만큼 여리고 예민한 데다, 금세 무르는 속성도 있고 딱히 보관방법도 없기에 제철에만 즐길 수 있습지요. 대신 수입 과일과 경쟁할 필요가 없기에 농장주 입장에서는 적정 가격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하네요. 장날 시장에 가면 흠집 나고 무른 복숭아가 넘쳐납니다. 집에서 식구끼리 먹는 것이니 약간 무르거나 조금 흠집 난 것이 대수겠습니까? 인심 후한 장사꾼 만나 5,000원만 건네면 제 주먹만 한 크기의 잘생긴 복숭아 반 궤짝을 담아 준답니다.

장 보러 읍내 나간 길에 조치원 전통시장 맛집을 순례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백종원도 인정한 조치원 파닭(튀김 닭 위에 잘게 썬 파를 얹어주는)의 원조는 바로 당신이라 주장하는 여사장님은 올해 7학년 5반이라는데 가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당신이 시작한 파닭 집, 딸이 독립해서 경기도 광주 인근 전통시장에 분점을 내서 대박을 터뜨렸고, 지금은 스물한 살 친손녀가 할머니 비법을 전수 중이랍니다. 코로나 전에는 한 마리 6,000원 두 마리 1만원이었는데 지금은 한 마리 7,000원 두 마리 1만2,000원으로 훌쩍 올랐습니다. 그래도 장날이면 파닭 집 앞에 줄이 꽤 길게 늘어선답니다.

파닭 집 모퉁이를 돌면 사람들이 웅성웅성 진을 치고 있는 집이 보이는데요, 요즘 입소문을 타고 번성 중인 중국집입니다. 메뉴는 짜장면, 짬뽕, 탕수육 딱 세 가지. 코로나 전에는 정말 ‘착한 가격’이었는데 이곳도 조금씩 올랐네요. 그래도 짜장면 3,500원, 짬뽕 4,000원, 탕수육 1만 원입니다. 중국집은 파닭 집 사장님 소개로 갔는데요, 원래 대전에서 알아주는 중국집 주방장이었다가 주인이 중국집을 접는 바람에 시장 안에다 자신의 중국집을 차린 것이랍니다. ‘값은 싸도 솜씨는 그만’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며 ‘강추’ 하셨답니다.

장날이면 만나는 묵밥 아줌마, 시장 입구의 만둣집 남매, 세 번째 골목길의 행복 죽집 여사장님, 전통시장의 숨은 명물 찹쌀 호떡집 내외분들, 모두 한결같이 짠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인데요, 지나가면서 서로의 안부도 물어주고 눈인사도 나누어주는 시장 사람들이 그리워 오늘도 장날을 기다리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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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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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222.XXX.XXX.94)
글의 내용 자체가 살아 있는 사회학이 아닌가 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로서 <생물사회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읽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장날풍경, 눈 앞에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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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7 16: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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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222.XXX.XXX.137)
소박하고 구수하고 살갑고 쉬운 글과 내용 감사히 편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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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7 10: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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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도 (175.XXX.XXX.146)
가을이 한참 익어 가는 때에 우리네 5일장을 참 정갈하게 전해 주셨네요. 우리 자유칼럼 애독자들도 파닭집이며, 중국집, 묵밥, 죽집, 만둣집, 호떡집 모두모두 응원하고 있다고 전해주시길...... 또한 님의 글도 참 고맙게 잘 새기며 멀리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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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7 0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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