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이성낙 이런생각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 하는데도
이성낙 2022년 10월 28일 (금) 02:05:02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28일, 서울에서 한일 양국 외교부 장관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타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난제를 풀었다는 긍정적 평가보다는,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처사였다는 불만과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결국 한일 양국 간에 합의한 협상 결과는 파기 수준으로 매몰되었고, 이로 인해 지난 몇 년간 한일 관계는 순탄치 않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일본은 한국을 ‘국가 간 합의를 일방적으로 내팽개쳐버리는 국가’ 또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고 비판합니다. 특히 일본 정계와 언론은 한국이 상대할 가치가 없는 나라라는 둥 막말 수준의 주장을 거리낌 없이 하고 있습니다. 국가 간에 오가는 ‘외교 언어’로서는 도를 넘는 무례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로서는 마냥 듣고만 있기에 거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 관계자는 물론 국내 언론의 반응은 의외로 조용하기만 합니다. 왜 그리도 ‘무덤덤한지’ 답답하기까지 합니다.

독일의 생활 언어에 ‘Jain’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긍정의 Ja(yes)와 부정의 Nein(no)을 합성한 단어인데, 난처한 경우에 처했을 때 곧잘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외교관은 결코 ‘Ja’라고 확답을 해서도 안 되지만, ‘Nein’이라고 부정적으로 대답해서도 안 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는 외교관의 불문율이라고까지 합니다. 그만큼 외교관의 언어는 ‘직설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필자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한국과 관련해 막말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약속을 깬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라는 표현에는 ‘거짓말쟁이’라는 함의가 있습니다. 국익을 대변해야 할 우리 외교부가 그 험한 ‘망언’에 왜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결코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필자 같으면 이렇게 응답형 맞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그러면 일본은 국제법을 그리도 잘 지켜서, 1895년 우리 땅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했는가?”
외교부가 ‘과거사’를 직설적으로 언급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 우리 언론매체가 외교부를 대신해 이런 질문쯤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좀 다른 시각에서, 지난 역사는 외교 관계에서 대화로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는 걸 보여줍니다. 일례로 임진왜란 후, 사명대사(四溟大師, 1544~1610)는 일본으로 건너가 왜군에게 끌려갔던 동포 3,000여 명을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같은 한 승장(僧將)의 행보를 ‘협상 외교’의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한 국가의 외교력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비슷한 예를 독일 근현대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일의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1967) 총리가 1955년 모스크바를 찾아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와 잡혀간 민간인 약 1만여 명의 독일인을 고국으로 데려왔습니다. 이는 독일 외교에서 쾌거로 꼽히는 역사의 한 장면입니다.

   
  한 여인이 모스크바에서 귀국한 아데나워 총리에게 무릎을 꿇으며 고마운 마음을 표하자 당시 79세의 총리가 허리를 굽혀 여인을 일으켜 세웠다. (1955. 09. 14.)  

그때의 일화입니다. 당시 언론에서 너무 굴욕스러운 ‘대가(代價) 외교’를 했다고 비판하자, 아데나워 총리는 “협상은 상대가 있고, 양자가 결과에 만족해야 한다. 즉, 한쪽이 ‘후려치듯’ 협상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라는 말로 여론의 비난을 잠재웠습니다.

또 다른 외교 협상 관련 에피소드입니다. 1972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1918~1993) 일본 총리가 죽(竹)의 장막을 넘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다나카는 중국 주석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을 만나러 간 것이지만, 협상 상대는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 총리였습니다. 모든 협상 절차와 결과를 저우언라이가 주도한 것입니다.
당시 다나카가 귀국하기에 앞서 마오 주석을 예방했을 때, 마오 주석이 다나카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한문을 상용하는데, ‘사죄’라는 단어를 일본어로는 어떻게 씁니까?” 다나카가 직접 손으로 글자를 써 보이자, 마오 주석은 중국도 그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나카 총리의 사죄를 재차 확인한 높은 수준의 정치적 ‘제스처’라고 할 만합니다. 또한 이 회동에서 다나카 총리가 마오 주석에게 “전쟁 배상금은?” 하며 운을 띄우자, 배석했던 저우언라이 총리가 단호하게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전쟁 배상금은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물론 다나카는 배상금을 받지 않겠다는 중국 측의 말을 믿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 무렵 중국은 한 푼의 외화라도 절실한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시 독일 언론의 보도를 토대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이런 일화를 떠올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일 양국 외교부 장관이 타결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에서 합의한 배상금 10억 엔(한화 약 100억 원)에 연연하지 말고, 우리 측이 “배상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작금의 우리네 국력이 100억 원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성싶고, 그 배상금을 우리가 부담하는 것이 정신적으로도 큰 득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로부터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공식 사과를 받아내는 것입니다.

‘외교적 품격(Diplomatic Dignity)’이란 표현을 떠올리면서, 일본 정부가 우리를 두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식의 만용(蠻勇)에 가까운 언어를 구사하면, 우리 정부나 언론 차원에서도 이를 묵과하지 않고 대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2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한세상 (14.XXX.XXX.154)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게 난다 긴다하는 사람을 외무고시에서 뽑았다면서요? 그 사람들,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답변달기
2022-10-29 00:32:45
0 0
Sungnack1212 (218.XXX.XXX.234)
좀 부끄럽고 언급하기 어렵지만,
전문가들이 너무 인문학과 거리를 두고 있는가 싶습니다.
답변달기
2022-10-30 23:34:40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