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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리고 인간의 품격
이태원 참사와 타이타닉호의 교훈
김홍묵 2022년 11월 24일 (목) 00:00:13

‘이태원 참사’, 지난달 29일 밤 한국 서울 한복판에서 있은 생게망게한 핼러윈(Halloween) 악몽. 두 번 다시 되뇌기조차 싫은 참변입니다.
한숨으로 달랠 수 있을까, 눈물로 씻을 수 있을까, 창졸간에 생령을 앗긴 158명 젊은이들의 넋을 무슨 말로 위로할까? 입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 참혹한 생지옥을 보고 지워지지 않는 자괴감을 반의반이나마 떨쳐버릴 방도를 찾다 우연히 타이타닉호의 2등 항해사 찰스 라이톨러(Charles Lightoller 1874~1952)의 회고록을 만났습니다. 
  
라이톨러는 1912년 4월 14일 거대 빙산에 부딪혀 침몰(사망 1,514명, 구조 710명)한 타이타닉호 승무원 중 생존한 유일한 남자(당시 38세)입니다. 생존자를 구조하라는 선장 명령으로 살아남은 그는 17쪽 분량의 회고록에서 감동적인 기록을 남겼습니다. 110년 전의 일입니다.
그 감동의 서사시를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 당시 세계 최고 부자였던 에스터 4세는 임신 5개월 된 아내를 보트에 태워 보내며 갑판 위에서 “사랑해요 여보!”라고 외쳤습니다. 승객들을 대피시키던 선원 한 명이 보트에 타라고 권하자 그는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사람이 최소한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자리를 옆에 있던 아일랜드 부인에게 양보했습니다.
그는 타이타닉호 10척도 만들 수 있는 부호였지만 삶의 기회를 모두 거절했습니다. 목숨으로 양심을 지킨 사나이의 위대한 선택이었습니다.

# “금수만도 못하게 살 바에야 신사도를 지키겠다”

□ 성공한 은행가 구겐하임은 마지막 순간에도 화려한 이브닝 코트로 갈아입었습니다. “체통을 지키고 신사처럼 죽겠습니다.” 
구조된 아내에게는 “이 배에 나의 이기심 때문에 구조받지 못한 여성은 없을 것이오. 나는 금수만도 못하게 살 바에야 신사도를 지키겠소”라고 쓴 쪽지를 남겼습니다.

□ “세상 어디든지 당신과 함께 갈 거예요.” 메이시(Macy′s)백화점 창업자 슈트라우스(당시 67세)는 어떤 말로도 아내 로잘리(당시 63세)를 구명정에 태우지 못했습니다. 선원이 권한 구명정 승선을 슈트라우스도 단호하게 거절하고, 부부는 손을 맞잡고 초연히 최후를 맞았습니다.
뉴욕 브롱크스에 세워진 슈트라우스 부부를 기리는 기념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바닷물로도 침몰시킬 수 없었던 사랑’이라고.

 # 두 아이 엄마 대신 죽은 ‘이름 없는 어머니’

□ “올라오세요. 아이는 엄마가 필요합니다.” 
스미스 부인은 그리스 로잔의 생존자 모임에서 자신을 구해준 한 여성의 숭고한 사랑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두 아이가 구명보트에 오르자 만석이 돼서 제 자리는 없었습니다. 이때 한 여성분이 일어나서 저를 구명보트 안으로 끌어당기며 한 말씀입니다.” 
그 여성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름 없는 어머니’라고 새긴 기념비만이 위대한 사랑의 흔적입니다.

라이톨러는 회고록 말미에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무엇이 목숨까지 던지는 결단을 내리게 했을까.  지금 당장 내 인생의 타이타닉호가 침몰해 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  내가 이 세상 마지막 순간까지 내 가슴속에서 놓아서는 안 될 가치는 무엇일까.”
인간의 품격에 대한 물음이 아닌가 합니다.

사랑, 희생, 배려, 평등, 정의, 품격, 명예, 아니면 인간다운 성품? 
우리는 온갖 허구(虛構)의 용어를 죄다 동원해도 타이타닉 희생자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내린 고귀한 결단을 따라잡을 용단이 서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태원 참사는 사후 온갖 관종(關種 관심종자)들의 재재거림에도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태원과 타이타닉 사고는 대칭적으로 비교할 사안은 아니지만, “좋은 세상에서 꼭 다시 만나자”고 한 이태원 산자들의 염원이 꼭 이루어지길 간절히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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