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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바다와 '봄날의 책방'
권오숙 2022년 11월 29일 (화) 04:24:38

아니 겨울이 시작하려는 마당에 웬 봄날 타령이냐고요? ‘봄날의 책방’은 통영 문화 마을인 봉수로에 있는 아담하고 아름다운 책방입니다. 너무나도 맑고 깨끗한 10월에 이 귀한 책방을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셰익스피어 덕분입니다.

여행하기 좋고 책 읽기도 좋은 10월 한 달 동안 거제와 통영 시민들과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읽었습니다. 거제 도서관에서 강연 의뢰를 받은 건 1월 초였습니다. 전화를 주신 거제 도서관의 담당 선생님은 너무 멀리까지 내려오는 것이 미안해 통영 도서관 강연을 묶었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오전에는 거제, 오후에는 통영에서 강연하는 걸로 스케줄을 짰다며 승낙 여부를 물었습니다. 신중하지 못하고 성급한 나의 고질적인 돈키호테 기질이 발동해서 아무 고민 없이 오케이 했습니다.

그런데 강연 일정이 다가와 교통편을 찾아보던 나는 아연실색했습니다. 부산, 창원, 나주 등 수많은 도시에서 강연을 했지만 KTX가 닿지 않는 곳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곳도 KTX가 다니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기차를 타고 가서 강연을 하고 저녁 기차를 타고 올라올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덜컥 수락했던 것입니다.

부랴부랴 버스를 알아보니 남부터미널에서 거제까지 4시간 20분이 소요되었습니다.(실제로는 거의 4시간 40분 걸렸습니다.) 더구나 거제 강연이 10시에 시작되어서 첫 차를 타고 내려가도 강의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금요일에 내려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강연을 해야 했습니다. 학기 중 주말마다 5회에 걸쳐, 그것도 1박 2일로 거제와 통영을 오가는 가히 살인적인 스케줄이 진행되었습니다.

가족들뿐만 아니라 도서관 직원들의 긴장과 걱정을 한 몸에 받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내 특유의 행동방식이 발동했습니다. 나는 틈나는 대로 거제와 통영의 명소들을 찾아다니기로 작정했습니다. 어느 날은 황홀하고 가슴 벅찬 일몰 장면을 한없이 바라보았고, 또 어느 날은 거제 포로수용소의 가슴 아픈 역사 현장을 둘러봤습니다. 철이 지나 쓸쓸한 몽돌 해변에 앉아 바닷물이 스칠 때마다 몽돌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눈부시게 파아란 쪽빛 바다에 밝은 햇살이 비쳐 만들어내는 윤슬을 실눈으로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대자연도 감동적이었지만 통영의 봉수로에서 만난 전혁림 미술관과 그 옆에 붙어있던 앙증맞은 책방도 내 감성을 충만하게 채워주었습니다. 통영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는 봉수로는 문화와 예술의 거리로 요즘 아주 핫한 곳입니다. 쪽빛 바다만큼 파란 물감을 이용하여 구상과 추상의 묘한 경계로 통영의 바다를 그려낸 화가 전혁림(1915-2010)을 알게 된 것은 이번 여행 최대의 수확이었습니다.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구도로 통영의 바다를 시원하게 화폭에 담아낸 전혁림은 ‘색채의 마술사’, ‘바다의 화가’로 일컬어집니다. 그의 강렬한 바다 그림들이 봉수로의 거리 곳곳에 걸려 있었습니다. 전혁림의 예술에 분위기 있는 식당과 카페들이 어우러져 그곳이 핫 플레이스가 된 듯했습니다. 물론 '봄날의 책방'도 한몫했을 테고요.

마지막 강연 날 전혁림 미술관을 방문하면서 스쳐 지나갔던 '봄날의 책방'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꼭 다시 방문하리라 다짐을 했던 터여서 점심을 후다닥 먹고 달려갔습니다. 놀랍게도 책방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손님들이 꽤 많았습니다.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건물과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기는 소품들과 아기자기한 디스플레이 탓일까요? 많은 여행객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책방 안팎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바다’, ‘100세 인생’ 등 주제별로 책들이 비치되었고, 통영 출신 대 소설가인 박경리 코너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바다 그림들과 운치 있는 소품들로 독자들의 감성을 한껏 채워주는 공간이었습니다.

문화 인프라가 국내 최고라는 서울에서, 교보문고라는 국내 최고의 대형 서점을 지닌 도시 서울에서 온 나는 한없이 부러운 마음으로 책방을 한참 서성거렸습니다.

거제 통영에서 만난 쪽빛 바다와 몽돌 해변, 그리고 전혁림 미술관과 봄날의 책방은 나의 2022년 10월을 황홀한 추억들로 가득 채워 주었습니다. 거제 통영 시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채워준답시고 내려갔지만 오히려 나를 문화적으로 채워준 시간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임도 보고 뽕도 딴 것입니다. 아니 어쩜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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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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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 (116.XXX.XXX.129)
겨울의 문을 연 오늘 봄날 같은 글을 읽어 참 따뜻합니다. 통영 여행을 떠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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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9 15:59:36
0 0
권오숙 (175.XXX.XXX.176)
감사합니다. 강추입니다.
답변달기
2022-11-30 00:03:3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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