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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살아남기
박종진 2022년 12월 02일 (금) 01:07:21

만년필 역사상 가장 인기가 좋았던 파커 51은 1978년 공식적으로 생산이 중단됩니다. 지금도 인기가 있는 이 만년필이 왜 생산 중단되었는지, 논란이 많지만 답은 간단합니다. 팔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41년에 나온 파커 51은 그 시대의 유행을 잔뜩 품고 있어 당시 빌딩, 자동차, TV, 라디오와 어울렸지만, 1970년대의 자동차 등과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유행에 어울리지 못하는 구식 물건이 되고 구식(舊式)은 신식에 밀려나는 것은 세상의 이치(理致)입니다. 최근 이 파커 51이 복각(復刻) 되었습니다. 요즘의 유행에 맞게 뚜껑은 돌려 잠그는 나사식으로 변화를 주고 잉크를 넣는 방법도 컨버터 방식으로 바꿔 나왔습니다. 이 복각된 파커 51은 성공할까요? 이것은 역시 답은 간단합니다. 현대와 어울리는 것이냐? 각자 생각해 보시면 쉽게 답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좌) 최근에 복각된 파커 51 돌려 잠그고 열수 있는 나사선이 있는 뚜껑으로 바뀌었다.
(우) 1980년대 크로스社는 볼펜 매출이 줄자 역량을 모아 내놓은 시그니처(Signiture) 만년필. 이 만년필은 몽블랑149, 파커듀오폴드, 펠리칸 M800과 경쟁하길 원했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1980년대 필기구 세계를 장악한 볼펜에 이상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약 30년 동안은 저가는 물론 고급품까지 필기구 세계는 온통 볼펜의 세상이었습니다. 고급시장에서 파커 75 만년필이 고군분투(孤軍奮鬪) 중이었지만, 고급인 크로스(CROSS) 볼펜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급 볼펜인 크로스가 1980년대 들어서면서 매출이 줄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크로스 볼펜도 파커 51처럼 한 세대가 지나면서 유행에 뒤처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크로스 볼펜의 매출은 줄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급 필기구 시장을 만년필이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파커 75의 매출이 늘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파커 75 역시 나온 지 30년이 다 된 아버지 세대의 만년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는 새로운 만년필들이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새로운 것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듭니다. 특히 필기구 세계처럼 보수(保守)적인 곳은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눈에 익은 디자인 역시 좋은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절묘한 해법은 우연인지 몰라도 독일 펠리칸사(社)에서 가장 먼저 내놓았습니다. 1950년대 할아버지 세대에 만년필이었던 펠리칸 400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복각하였고, 이것은 성공했습니다. 당시 가장 큰 만년필 회사였던 파커는 이 새로운 유행을 못 읽었습니다. 파커 75에 미련이 남았는지 이것을 살짝 변형하여, 같은 펜촉에 크기만 키운 파커 프리미어를 내놓았지만 이것은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워터맨이 사업을 시작한 지 100주년을 기념하여 내놓은 맨 100은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맨 100은 1910년대 외관에 현대의 기술을 반영하여 만들어졌습니다. 해법은 완전히 나왔습니다. 최소한 한 세대 이전의 명작을 현대의 감각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큰 펜촉을 장착하는 것이었습니다. 1987년 파커는 1920년대 명작 듀오폴드를 새롭게 복각하였고, 같은 해 펠리칸 역시 400을 복각한 M400의 크기를 키우고 큰 펜촉을 장착하여, M800을 내놓습니다. 이 둘은 크게 성공하였고,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현대의 명작이 되었습니다.

   
  1) 다양한 펠리칸 M800
2) 1920년대 명작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복각한 파커 듀오폴드
3) 1910년대~1920년대 만년필을 현대 감각으로 복각한 워터맨 맨 100 패트리션 (밴드는 1929년에 나온 패트리션을 오마주 하였다.)
 

영원한 만년필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래 살아남는 만년필은 있습니다. 첫 번째 품질입니다. 위에 언급된 만년필 중 어느 하나라도 품질이 떨어진 만년필은 없습니다. 품질은 당연한 것입니다. 두 번째 유행을 따르는 것입니다. 세상없어도 유행에 뒤처진 것은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세상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예민하게 귀 기울이고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유행을 따르되 자기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중심 없이 따르다 보면 그 유행이 끝나면, 그 유행과 함께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人生)과 비슷한가요? 비슷할 겁니다. 왜냐면 우리의 운명(運命) 역시 정해진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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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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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 (175.XXX.XXX.160)
만년필을 쓴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진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내일은 만년필을 한번 써봐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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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3 09: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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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사진 보다 실물을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만년필은 정말 보석처럼 아름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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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5 09: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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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a (39.XXX.XXX.177)
시대의 흐름을 바로 읽고 유행을 따르되, 품질은 우수해야한다-요즘의 다양한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는 핵심이네요!
필기구를 통해 세상의 흐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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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2 13: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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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135)
어이쿠 별 말씀을 요^^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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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2 17: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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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석 (220.XXX.XXX.162)
만년필의 흥망사로 인생을 배우는게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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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2 10: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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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118.XXX.XXX.138)
맞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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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2 11: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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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211.XXX.XXX.173)
품질과 트렌디함, 뚜렷한 정체성 이 세 가지는 좋은 물건이 가져야 할 덕목이겠군요. 오늘도 만년필에서 세상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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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2 08: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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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파커51 같은 만년필이 왜 단종되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 이번 글을 써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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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2 09: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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