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고 가꾸는 공부를 하던 대학생 시절에 어느 교수님께서 늘 강조하셨던 용어가 요즘 더 자주 떠오르곤 합니다. 업무상으로도 그 단어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평생 늘 접하면서 살고 있긴 하지만, 요즘처럼 더 그 교수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했던 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강조하신 용어는 아주 간단합니다. ‘적지적수(適地適樹)’라는 단어로, 직역하면 알맞은 땅에 알맞은 나무를 골라 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도 살아가면서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나무를 포함한 식물은 일단 한 장소에 뿌리를 내리면 이동할 수 없어서 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입니다. 만약 적당한 환경이 아닌 곳에 씨앗이 떨어지면 새싹이 나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새싹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잘 이어갈 수 없습니다.

식물이 자라는 데 영향을 주는 환경 요인으로는 기본적으로 빛, 온도, 물, 그리고 토양이 있습니다. 빛을 많이 받아야 잘 사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그늘 속에서만 잘 사는 식물도 있습니다. 추운 극지방이나 고산지대에 적응해서 사는 식물도 있고 뜨거운 열대의 사막에서 사는 식물도 있습니다. 또 살아가는 내내 물을 많이 먹는 식물도 있고 물을 아주 조금만 먹고도 잘 살아가는 식물도 있습니다.

식물이 어떤 곳에 ‘자생’한다는 것은 그곳이 ‘적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식물을 심으려고 할 때 그곳이 ‘적지’인지 판단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자생지’와 얼마나 비슷한지를 비교해보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식물은 본래 자기가 살던 환경 조건에서 벗어나게 되면 잘 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식물들이 있습니다. ‘침입종’이라고 하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에 의해서 원래 살던 곳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가서 아주 번성하는 생물이 바로 그것인데, 너무나 번성하는 나머지 그곳에 원래 살고 있던 생물들의 생존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전 세계의 교류가 극적으로 증가했던 결과로 세계 각지에서 이러한 ‘침입종’의 피해가 매우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 나라들은 ‘침입종’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퇴치하기 위해서 엄청난 힘을 쏟고 있습니다.

‘적지적수’라는 개념이 과거에는 식물을 어떤 곳에서 잘 살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하면, 지금은 너무 혼자만 번성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식물을 심고 가꿀 때 ‘적지적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사회를 보면 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나 국가 요직에 특정인을 임명할 때 ‘적지적수’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에 관한 얘기이니 ‘서경(書經)’의 함유일덕(咸有一德, 임금과 신하가 다 한가지 덕이 있음)이나 ‘한비자(韓非子)’ 등에 나오는 임인유현(任人唯賢, 오직 인품과 능력만을 보고 사람을 임용한다)과 이모취인(以貌取人, 외모만 보고 사람을 쓴다)의 고사성어를 마음에 새기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꼭 이렇게 어려운 고사성어가 아니더라도 ‘적업적인(適業適人)’이라고 간단히 직관적으로 얘기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국내외적으로 많이 혼란스러운 지금, 어떤 자리에 사람을 등용할 때 그 사람이 과연 그 자리에 정말로 적합한 인물인지 철저한 검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한 ‘적지적수’에서처럼 등용한 그 한 사람이 자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끝나는 것은 국가나 사회에 큰 피해가 되지 않아 문제가 작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침입종’처럼 본인은 번성할지 모르나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적지적수를 가르쳐주셨던 대학 시절 교수님의 마음을 요즘에 다시 이해하게 되는 것은 그때 교수님께서 나무 얘기뿐만 아니라 사람 얘기도 강조하셨던 기억 때문입니다. 식물 세계에서 ‘침입종’의 문제가 점점 커지듯 우리나라 사회에서 그와 같은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적업적인’을 더 심사숙고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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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1969년 강원 원주 출생. 서울대 임학과 학사 석사 박사. 식물분류학 및 수목학 전공. 서울대수목원 연구원, 중국 남경식물연구소・식물원 교환연구원 거쳐 2001년부터 신구대 교수로 재직. 신구대식물원 원장 역임. 저서: ‘길에서 만나는 나무 123’, ‘자연자원의 이해(공저)’, ‘세계의 식물원 산책(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