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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동 부지 단상
박상도 2022년 12월 19일 (월) 00:00:19

지난가을 차를 타고 광화문 앞을 지나 안국동 방향으로 가다가 왼쪽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잠시 넋을 잃었습니다. “어? 여기가 어디이길래 이렇게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지? 아! 맞다. 여기가 송현동 땅이구나! 와~여기가 이렇게 넓었구나.”하며 감탄을 하며 구경하다가 이내 마음속에서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 항상 이곳을 지났었는데 4미터나 되는 높은 담장에 가려져 안쪽을 전혀 볼 수 없었는데, 이제 그 높던 담장을 허물고 확 트인 송현동 땅을 보니 이 좋은 걸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에 화가 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어준 땅이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송현동 땅은 해방 이후 40여 년간 미국 대사관의 직원 숙소로 활용되다가 1997년 삼성생명으로 주인이 바뀝니다. 삼성이 미술관을 비롯해 부지 개발을 하려다 무산되자 대한항공이 호텔을 지으려고 매입했지만 이 역시 진전이 되지 않았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송현동 땅은 LH를 거쳐 서울시 소유로 넘어왔습니다. 이후 지난 10월 7일에 ‘열린 송현’ 광장으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고 이렇게 새단장을 한 송현동 땅을 나이 50 중반이 넘어 필자가 비로소 보게 된 것입니다. 어린 시절 그 높은 담장 앞에 경찰이 보초를 서는 모습을 보면서 '여기는 누가 살길래 이렇게 경비가 삼엄하지' 라고 생각했고, 조금 나이가 들어 대학에 들어가서는 남의 나라에서 저렇게 높게 담장을 치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우방의 행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더욱 마음이 쓰였던 것은 그런 곳에 왜 우리 의무경찰이 배치되어 지켜주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담장은 높게 치고 입구는 철문으로 막고 담 위에는 철조망을 둘러놓은 것도 모자라 우리 경찰이 주야로 경비를 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과거 육군본부에서 군 복무를 할 때, 남쪽 담장 너머가 미 육군 제8군 사령부였습니다. 지금은 부지를 반납하고 평택으로 사령부는 이전했습니다만, 당시에 필자가 생활하던 생활관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용산 미군기지는 광할했습니다. 신병 때, 하루는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가는데 선임이 막아서며, “진정해, 오늘이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이야. 미군들 오늘 불꽃놀이 하는 거야.” 라며 안심시켰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저쪽은 전혀 다른 세상이야.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담장으로 가려져 몰라서 그렇지 저 안에는 없는게 없어 골프장도 있으니 말 다했지.” 필자는 설마 골프장까지 있을까? 이 좁은 서울 땅에 골프장을 만들어 놓고 산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골프장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용산 가족공원이 미8군 골프장이 있던 자리입니다.

나중에 복잡한 신원확인 절차를 하고 용산 미군기지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군 복무시절 선임이 했던 말처럼 미국 본토와 똑같은 도로와 보도 그리고 45도 각도로 전방 주차를 하는 주차 구획 등등 모든 게 널찍했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해외에서 근무하는 미군 장병과 그 가족들에게 미국 본토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당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지을 땅이 없어서 신도시를 개발하고, 다닥다닥 붙어서 살며, 좁은 주차공간에 후진으로 파킹을 하면서 살고있는 서울 시민에게 용산 미군기지의 여유로운 공간 배치는 부러움보다는 거부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분명 한국땅인데 그 위의 공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주한 미군 지위 협정(SOFA)의 근거가 된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4조의 원문입니다.
The Republic of Korea grants,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ccepts, the right to dispose United States land, air and sea forces in and about the territory of the Republic of Korea as determined by mutual agreement.

이 문장을 번역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許與, 허용)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위 내용을 보면 우리가 미군이 사용할 부지를 내어주고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는(accept) 것으로 해석됩니다. 즉, 미국은 “당신들이 제공하니까 우리가 받는다.”는 입장인 것입니다. 조약이 체결된 1954년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상호동등한 위치에서 맺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미국은 우리나라의 눈치를 전혀 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이미 반세기도 더 지나고 70년이 되어갑니다. 반공 이데올로기는 벌써 유물로 사라지고 힘의 균형은 재편되고 있습니다. 그간 미국이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공헌한 부분이 크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존재합니다. 세계화가 제국주의와 구분되는 것은 양방항 소통입니다. 주한 미국 대사들이 자주하는 말대로 이제는 한국 사회의 문화와 가치를 존중하며 같이 가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4미터 담장을 걷어내고 탁 트인 푸른 초원을 바라보는 해방감을 향후 한미관계에서 더 느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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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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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송 (210.XXX.XXX.46)
주제와는 관련없는 사소한 문제인데 아나운서님이 쓰신 글이라 감히 의견을 적습니다. 글 중반에 '넓고 광할하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광활'(廣闊, 넓을 광 넓을 활)이 맞습니다. 또한 '광활'은 기본적으로 '넓다'는 의미이니 둘 중 하나만 쓰셔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밖에 주차장 관련 대목에 나오는 '백파킹'이라는 말은 처음 봅니다, 사전에도 없고 포털 검색에도 나오지 않는군요. 제가 과문한 탓인 것 같은데 본문에 풀이를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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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0 10: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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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223.XXX.XXX.170)
그 넓고 소중한 땅을 넘겨 받은 후 25년동안 아무런 개발도 하지 않은 우리가 미국탓을 하는 것이 어처구니 없군요.
지금은 돈 좀 받지만 공짜로 나라 지켜주는데 그정도 땅은 차지할 만 하였다고 봅니다. 이런 식으로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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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9 07: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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