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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바다를 닮은 사람들
권오숙 2022년 12월 28일 (수) 00:01:45

오늘은 거제 통영 강연의 두 번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고 싶습니다. 지난 글에서는 거제와 통영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 이야기를 했었지요. 하지만 좋은 추억에 사람 이야기가 빠질 리가 없습니다. 이번 거제 통영 강연에서도 따뜻한 정을 듬뿍 받고 왔습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썼듯이 거제 도서관에서 10시부터 12시까지 두 시간 강연을 마치고 시외버스로 통영으로 이동하여 다시 도서관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꽤나 무리한 일정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통영 수업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시외버스가 거제 터미널에서 12:06분에 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첫날 거제 수강생들께 사정을 설명드리고 조금 일찍 수업을 마치기로 했습니다. 대신 중간 휴식 없이 2시간 연강을 했습니다. 첫날은 도서관 선생님이 택시를 예약해 두시어 강연을 마치자마자 시외버스 터미널로 내달려 무사히 통영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주 수업이 끝나고 강연을 들으신 한 여사님이 통영 도서관까지 태워주시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너무 무리한 제의여서 극구 사양하다가 정 그러시면 거제터미널까지만 태워주십사 부탁했으나 결국 여사님은 통영 도서관 앞까지 나를 실어다 주셨습니다. 덕분에 강연까지 1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다시 1시간을 달려 거제까지 돌아가실 여사님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담소를 나누며 함께 먹은 갈치조림은 세상에 둘도 없는 맛이었습니다. 어디 요리 때문만이었겠습니까? 너무나 따뜻한 배려에 들뜬 제게 무엇인들 맛이 없었겠습니까? 통영까지 50여 분간, 또 식사를 하는 50여 분간 여사님과 나는 서로 안 지 불과 1주밖에 안 되었다는 것이 무색하게 속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막연한 믿음을 공유한 덕이었겠지요.

통영 강연에서 거제 여사님이 태워다 주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남자 수강생 한 분이 물으셨습니다. “역부러?”하고. 아마 그분은 무슨 다른 일이 있어서 통영에 오는 길에 태워주었겠지 설마 일부러야 왔겠어? 하고 생각하신 듯합니다. “네, 역부러요.” 나는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시상에.....” 라고 놀라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사님의 그런 서비스는 계속되었습니다. 아니 마지막 주에는 강연 전날에 거제 학동 해변을 드라이브시켜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좀 일찍 내려와 터미널에 도착하면 연락을 달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그리고 내 전화번호도 따갔습니다. 애초에 파도에 쓸리는 몽돌 소리를 반드시 듣고 가리라 다짐한 터였습니다. 하지만 강연 당일 통영까지 태워다 주시는 것도 과분한데 전날 여행까지 신세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강연 전날 일찍 내려가서 학동 해안으로 향하는 버스를 혼자 타고 꼬불꼬불 시골길을 달렸습니다. 거제 케이블카가 오가는 노자산의 멋진 풍광을 감상하는 중에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교수님∼거제도 여인입니다. 내려오고 계신가요?”

“ㅎㅎ 저 벌써 도착해서 버스 타고 학동행입니다. 잘 구경하고 갈 테니 걱정 마셔요.”

“ㅠㅠ 오늘 바람의 언덕까지 드라이브시켜 드리려고 했는데∼ 잘 알겠습니다. 즐거이 다녀오셔요”

이런 문자를 나누는데 감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따뜻한 배려를 물리친 것이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학동 해안에서 잠시 몽돌 소리를 들으며 어슬렁거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날이 어둑해졌습니다. 바람의 언덕을 가보지 못한 걸 못내 아쉬워하며 근처 식당에서 해물뚝배기를 먹고 일찍 숙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사님이 걱정하실까봐 메시지를 하나 보냈습니다.

“거제의 여인님∼∼∼. 오늘 학동 해변에서 좋은 시간 가졌습니다. 그동안 너무 신세를 많이 져서 책 하나 들고 왔는데 성함 알려주심 사인해서 내일 드릴까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난 그 여사님의 성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분에게서 그런 과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니....

“아이고 별말씀을요. 제가 너무 들이대서 좀 당혹스러웠을 것 같은 현타가 뒤늦게 옵니다.ㅋ”

이 문자를 보니 너무 신세를 지는 것이 염치없어 혼자 간 것인데 내가 부담스러워서 거부한 것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음 날 다시 통영으로 태워다 주시는 길에 내 마음을 잘 말씀드리고 그 동안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서도 너무 감사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말들로 내 마음을 다 전하지 못하였음을 느꼈습니다.

통영도서관에서는 70세가 훨씬 넘어 보이는 백발의 여사님이 늘 맨 앞자리에서 열심히 필기를 하시며 강연을 들으셨습니다. 거제 통영에서의 나의 시간이 끝나간다는 서운한 마음으로 마지막 수업을 마쳤습니다. 한 분 한 분께 인사를 드리는데 백발의 여사님이 검은 비닐 봉투를 내미셨습니다. 울컥하는 마음에 감사 인사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봉지만 가슴에 꼭 끌어안은 채 눈인사만 드렸습니다. “버스 타고 올라가민서 드셔요.”

서울행 버스 안에서 열어 본 검은 봉투에는 미니 약과, 젤리 사탕, 그리고 매실 주스가 들어 있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내가 뭘 좋아할까 고심하며 이것들을 고르셨을 여사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거제도서관과 통영도서관 담당 선생님들이 정성껏 준비하신 기념품과 간식들도 고마웠지만 검은 봉투 속 간식들은 말할 수 없이 날 감동시켰습니다. 그 연세에 빠지지 않고 오셔서 열심히 들어주신 것만도 감동이었는데....

쪽빛 바다만큼이나 넓고 깊은 그분들의 베풂을 받을 만큼 나도 그분들께 드린 것이 있으려나 걱정이 됩니다. 그런 대접을 받기에 혹여 내 지식이 너무 빈약한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합니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닦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그분들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거제와 통영의 여사님들~! 잘 지내고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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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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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218.XXX.XXX.38)
권오숙 교수님, 시골 인심이 느껴지는 따뜻한 글 잘 읽엇습니다.오래전에 가 보았던 몽돌해수욕장이 눈에 아른 거리고, 차르르 찰찰 굴러가던 돌맹이 소리도 들려오는 듯합니다.

교수님을 통해 통영 모습과 검은 봉투를 건네준 할머니의 따뜻함을 저도 느끼며 읽었습니다.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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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31 16:44:02
0 0
김동환 (218.XXX.XXX.23)
꽃보다 아름다운 분을 만나셨군요

저도 늦은나이에 학교를 다녔는데요 수업(구로동)이 늦은 과목을 듣고 교수님 댁(청담동)을 대충알아 두었다가 저의집도 압구정(사실은 광화문)이라 잠깐만 돌아 가면 된다고 속여? 모셔다 드리며 수업외의 강의를 40분가량 차안에서 듣는 사치를 누렸던 적이 있습니다,

혹시 그분도??그런 마음??

어찌되었든 강의를 듣는거 컬럼과 책을 읽는거는 또다른 세상을 보는 것이라 즐겁습니다,

아침 뇌(腦)가 샤워 하는 듯한 글 잘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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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8 07:43:00
0 0
권오숙 (175.XXX.XXX.176)
아, 어쩜 그런 저의가 있으셨을 수도 있겠네요.
청담동 교수님도 얼마나 고마워하셨을까 알 것 같습니다.
즐겁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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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8 22:18:3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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