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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수 없어 말 못하는 부채감
홍승철 2023년 01월 10일 (화) 00:00:06

사람들이 으레 하는 일은 피하고 지내 왔습니다. 그중 하나. 연말이나 새해를 맞으면서 정리하거나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편입니다. 해가 바뀐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근년에 와서야 평범한 생에서 해가 바뀌거나 달, 주간 , 날짜가 바뀌면 삶에 활력을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하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행동은 생각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2022년의 마지막 달을 보내면서는 좀 달랐습니다. 지난 한 해, 길게는 두 해 동안의 과정이 마음속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새해를 기다리는 마음도 여느 해와 달리 새 희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연말 날짜가 가까워질 때 한 해가 아니라 오래된 과거를 돌이켜보고 싶었습니다. 거창하게 인생 전체를 되돌아보자는 생각은 아니었고 앉은 자리에서 생각나는 몇 가지 일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잘못한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살면서 주변인들에게 무심히 대한 일이 후회스러웠습니다. 그중 한 친구의 일은 세월이 흘렀어도 잊히지 않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어느 강의실로 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잠시 놀랐습니다. 성휘라는 그 친구는 중2 때 한 반이었는데, 1학기 때는 그가 반장이었고 내가 부반장이었으며 2학기 때는 그가 부반장 내가 반장으로 지냈습니다.

둘은 사이가 좋았습니다. 학교 잔디밭에 그를 포함하여 울진 출신 친구와 또 다른 친구와 같이 앉아서 어둠이 내리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양한 대화를 나누곤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비 내리는 날 둘이서 뚝섬으로 가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물놀이를 한 적도 있습니다. 헤엄칠 줄 모르는 나인데도 말이죠. 그가 고등학교 진학 때는 대구로 이사 갔고 그 뒤로는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가 4년 만에 학교 강의실로 찾아왔으니 놀라웠습니다. 내가 어느 학교 무슨 학과로 진학했는지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렇지만 놀람은 잠깐, 반갑다고 간단한 인사말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금세 헤어졌습니다. 연락처도 묻지 않았습니다. 너무 무심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야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가까이 지냈던 친구가 어렵사리 찾아왔는데 덤덤하게 헤어졌으니 말입니다.

이후로도 나이 들도록 한때 가까이 했던 주변 친구나 동료들과 세월이 지나면 그냥 무심히 살았습니다. 학교 친구들은 졸업하고 나면 잊다시피 했고 직장 동료들은 조직 변경 등으로 거리가 멀어지면 어쩌다 만나게 될 때 의례적인 인사나 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쉰이 넘어서야 자신의 행동거지가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상 행동이라고 할까요, 과거와 달라진 행동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 대학 동기들의 모임에서 근교 등산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이 결성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자리를 같이한 때였는데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등산모임의 회장으로 결정되었고 그는 나를 총무로 지명했습니다. 등산이라고는 거의 한 적이 없는 터라 잠시 당황했지만 동기들에게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총무가 할 일은 단순했습니다. 매달 등산 날짜와 장소를 알리고, 하산 뒤의 점심 자리에서 참가비를 거두어 식당에 지불하고, 사진과 함께 등산기를 써서 참가하지 못한 동기들에게까지 이메일로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그 단순한 일에 정성을 들였습니다. 등산기에 누구누구가 어디를 다녀왔다고만 쓰지 않고, 반드시 몇 줄이라도 이야깃거리를 찾아서 썼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반응을 보니 친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 되었습니다.

얼마 후 다른 일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의 활동 모임 중 한 군데에 우연히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모임에서 내 역할에 최선을 다했더니 모임에 긍정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말할 것 없고 졸업 이후로도 대화 한 번 나누어 본 적 없는 동기들과도 어울릴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나이 쉰이 넘어서야 학교 동기들의 모임에서 일을 맡아서 나름대로 성의를 보인 일은 오랜 세월 동기들에게 무심했던 과거를 얼마간 돌이킨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주변의 동기들에게서는 같이 지낼 만한 친구로 재인식된 것 같아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동기 성휘에게 잘못한 일은 마음속에 큰 부채감으로 남아 있습니다. 혹시나 하고 페이스북 같은 데서 그 이름을 검색해 보기도 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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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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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석 (122.XXX.XXX.87)
안녕하세요?
홍승철님은 마음이 참 따뜻하신 분이군요.
'성휘'라는 분을 꼭 만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경찰쪽과 협의해보시면 어떨까요?
따뜻한 글 깊이 감사드립니다.
최용석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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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3 18: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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