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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진 한국 문학의 위상과 번역 논란
권오숙 2023년 01월 26일 (목) 00:36:27

지난 1월 17일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BK21 <트랜스 시대 발신자로서의 한국어문학 교육연구팀>과 제주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가 제주대학교에서 공동주최한 국제학술대회에 다녀왔습니다. 영문학 전공자인 필자가 이 학술대회에 참가한 것은 <번역과 헤게모니>라는 세션 때문이었습니다. 이 세션에는 번역가로 활동하며 끊임없이 올바른 번역 태도나 전략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필자의 관심을 끄는 발표가 많았습니다. 

그중 가장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과 리지 뷸러(Lizzie Buehler)가 번역한 The Disaster Tourist를 비교 분석한 발표였습니다. 이 영문판은 2021년에 영국 추리문학협회가 주관하는 대거상의 번역추리소설상(Cime Fiction in Translation Dagger 2021)을 받았습니다. 발표자는 원작과 번역을 아주 꼼꼼하게 비교하며 이 번역이 얼마나 오역을 많이 하고, 별다른 이유 없이 추가와 삭제를 하고, 작중 상황과 인물의 성격을 변질시켜, 결과적으로 작품의 메시지를 왜곡했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가 영어로 번역한 The Vegetarian이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았을 때도 심한 번역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수상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는 “이 작품이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의 높은 미학적 성취가 데보라 스미스라는 걸출한 번역가와 만난 덕분”(한국일보 2016년 5월 19일)이라며 번역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그동안 한국 문학이 국제상을 받지 못하고 세계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모두 번역의 탓인 양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번역 텍스트를 원전과 비교 분석하고 심각한 번역 오류들을 꾸준히 제기했습니다. 작품의 메시지 전달과 관련 있는 원문의 중요한 문장을 삭제하거나 문단들을 통째로 생략하고, 일례로 '아내가 식성이 좋았다'는 원문을 '아내는 유능한 요리사였다'라고 옮기는 등의 오역들도 많이 지적되었습니다. 심지어 주인공의 성격까지 변형시켰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원전의 주인공 영혜는 한국적 가부장제에 짓눌린 수동적인 캐릭터인데 스미스의 번역에서는 능동적이고 이성적인 여성으로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너무 논란이 심하자 스미스는 원작자와 협의하여 상당 부분의 번역을 수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스미스의 번역에 대해 “새로운 세대의 관점과 번역자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반영”한 것이라고 옹호했습니다. 일례로 한국외대 윤선경 교수는 “한강은 『채식주의자』의 작가, 데보라 스미스는 The Vegetarian의 작가”라고 주장하며 번역의 독자성을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페미니즘 의식을 담고 있는 여성 작가 한강의 원작이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 그쳤지만, The Vegetarian은 원본을 변형시키며 개입하여 페미니즘을 강조한 페미니즘 번역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대학저널 2021, 2. 10일자). 윤선경의 이런 주장은 같은 인터뷰에서 말한 “압축과 변형, 삭제를 하더라도 원본이 얘기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유지돼야 한다.”는 주장과 상충됩니다. 

원본 중심 번역과 독자 수용 중심 번역, 번역의 충실성과 가독성을 두고 수세기 동안 대립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창작적 번역’(creative translation)이란 개념이 번역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직역보다는 의역, 더 나아가 자유로운 혹은 창의적인 의역을 옹호하는 경향이 심화되었습니다. 물론 언어 간의 차이로 인해 완전한 번역이란 불가능하고,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 항상 옳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원작의 메시지나 인물까지 변형시키는 것은 분명 번역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윤선경은 원전에 대한 충실성을 ‘문화 사대주의’라고 비평하지만, 오히려 해외 시장의 독자들을 위해서는 충실성보다 가독성을 강조하고, 국내 독자들을 위한 번역에서는 엄중하게 충실성을 요구하는 이중적 잣대가 ‘문화 사대주의’가 아닐까요?

스미스의 『채식주의자』 번역과 뷸러의 『밤의 여행자들』 번역이 권위 있는 국제상 수상과 더불어 영어를 구사하는 독자에게까지 한국문학의 지평을 열어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국제상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단순히 번역자들의 뛰어난 번역 덕분이기만 할까요? 그렇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세계적으로 K-팝이나 K-드라마의 대유행에서 비롯된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한국문학에도 세계인의 눈을 돌리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접한 한국문학의 독특한 소재와 장르성이 마침내 국제상 수상의 쾌거까지 불러온 것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한국문학 번역은 엄청난 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발표에 의하면 2022년에만 27개 언어로 150여 종이 출판되었고, 이 중 4개의 작품이 국제상을 받았습니다. 한국문학이 유례없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면서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 번역의 질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도 직역주의자는 아닙니다. 다만 신진 번역가들의 감각적인 번역이 강력한 한류에 힘입어 국제적 조망을 받으면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한국 문학을 수십 년에 걸쳐 성실히 번역해온 중견 번역가들의 노력과 수고가 가려지는 듯해서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이번 발표에서 The Disaster Tourist 번역을 신랄하게 비판한 발표자는 번역이 질적으로 발전하지 않는 이상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있을 수 없고 지속가능한 K-문학 현상도 있을 수 없다고 강변했습니다. 아울러 상업성에만 치중하여 최신 작품들만 번역하기보다 한국문학의 정전 작품들을 번역하여 학문적인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하였습니다. 필자는 발표자의 이런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실무 번역 작업을 하거나 문학 번역 강의를 할 때 필자는 늘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두 가지 번역 태도, 즉 원전에 대한 충실성과 독자의 가독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고뇌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는 필자의 견해는 더 굳어진 듯합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독자들에게 쉬이 전달할 수 없는 부분을 슬쩍 건너뛰거나 자유로이 변형하고 ‘창의적 의역’이라고 말할 용기가 필자에게는 없습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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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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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용 (220.XXX.XXX.57)
안녕 하세요?
직역을 하고 의역을 해주면 어떨까요?
우리같은 사람은 의역을 해줘야 이해를 하거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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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6 10: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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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숙 (175.XXX.XXX.176)
네, 독자들의 가독성도 아주 중요하지요. 그 또한 번역가의 의무이고요. 의견 감사드립니다
답변달기
2023-01-27 11:5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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