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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복 기념관과 이세기 회장
최창신 2008년 05월 22일 (목) 01:40:24
-걸어서 탐라(耽羅) 일주(10)-

이세기(李世基) 회장은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 국회 문화공보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일하는 동안 문화체육부 예산에 5억원을 추가로 배정해 주었습니다. 이를 가지고 서복(徐福) 기념관을 지을 수 있는 부지를 우선 확보하는데 종자돈으로 쓰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기념관 건립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일이 처음부터 수월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순서를 따지자면 서귀포시가 전면에 나서 견인차 역할을 하고 그 뒤를 제주도가 밀어주며 문화체육부가 적극적으로 예산확보 노력을 기울였어야 옳았습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거꾸로 국회에서, 그것도 해당 상임위원장이 더 열을 올려 정부와 제주도 관계자들을 독려하고 설득하는 형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당시 강상주(姜相周) 서귀포시장이 이 회장과 뜻을 같이하고 열성적으로 나서 주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정방폭포 근처에 부지가 확보됐고 지방비 1백억원이 투입돼 기념관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역사적인 자료들을 정리하여 기념관으로서의 아주 기초적인 꼴은 갖출 수가 있었으나 이렇다하게 보여줄 게 마땅치 않았던 것입니다.

   
  ▲ 진시황의 분부로 불로초를 찾아 서귀포를 다녀갔다는 서복의 석상  
그렇지 않아도 자료수집 등을 위해 베이징과 산동성을 여러 차례 방문하던 이 회장은 산동성장[韓禹郡]을 찾아가 “서복의 석상(石像)을 만들어 서귀포시에 기증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가 2004년 11월이었습니다.

반년이 지난 2005년 5월 마침내 산동성으로부터 3m짜리 석상이 만들어졌으니 가져가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나 이를 어찌합니까? 묘하게도 그 시점에 서귀포의 재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석상의 수송비용을 급하게 마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딱한 사정을 듣고 이 회장은 이빈 중국대사를 찾아가 설득했습니다. “2천년 전 서복 선생이 우리 조선에 올 때는 중국의 배를 타고 왔습니다. 이제 그분이 다시 우리나라로 옵니다. 아무리 기나긴 세월의 강을 건너 석재로 형상화되어 온다고 하지만 우리 배가 가서 실어온다면 그건 화물 취급하는 것 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분의 후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군요. 13억 중국 국민들이 섭섭해 할 것입니다. 자존심도 상할 것이구요.“

이 대사는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바로 산동성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명분을 설명하고 모든 비용을 중국 측이 부담하고 중국 배로 ‘모셔 오도록’ 조치를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서복 기념관은 그해(2005년) 9월 2일 드디어 문을 열었습니다.

그 후 2년이 지난 2007년 4월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宝) 총리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바쁜 일정의 틈을 쪼개어 국내 주요 인사 20여명을 초청하고 그 가운데 중국관련 단체장 5명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는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5명 가운데 이 회장도 포함됐습니다.

각 사람에게 2분씩의 발언기회가 주어진다고 미리 알려졌습니다. 통역을 써야하니 실제로는 1분 밖에 시간이 없는 셈이었습니다.

이 회장은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이 기회에 서복 기념관을 위해 중국 총리의 친필휘호를 받아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주석과 총리의 경우 휘호를 써달라는 청탁이 너무 많이 들어와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 합니다. 이 폐단을 없애기 위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는 재임기간 동안 단 한 장의 휘호도 쓰지 않기로 굳게 약속한 바 있었습니다.

이런 판국에 휘호를 받아내면 역사적인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됐습니다. 그러나 이를 성사시키려면 설득력 있는 호소가 필요했습니다. 2분도 부족할 판에 통역을 내세운 1분으로는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한·중간의 우호증진, 서복의 역사, 기념관의 건립과정과 향후 역할, 휘호의 필요성 등을 써서 이를 중국어로 번역, 4분짜리 원고를 만든 다음 이를 수도 없이 읽어 모두 암기했습니다. 당일 이 회장은 통역 없이 4분짜리 스피치를 중국어로 유창하게 해냈습니다.

   
  ▲ 원자바오 총리의 글씨를 새긴 서복공원 표지석. 석상과 표지석 모두 이세기 회장의 요청에 따라 중국 산동성이 제작해서 보내온 것입니다.  
그 노력이 원자바오 총리를 감동시켜 휘호를 받아내게 됩니다. 베이징으로 돌아간 원 총리는 한 달쯤 뒤에 ‘서복공원(徐福公園)’이라고 쓴 휘호를 대사관을 통해 보내 주었습니다.

이를 들고 이 회장은 다시 산동성으로 건너가 성장[姜大明)을 만나 휘호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강 성장: 아니, 이게 총리의 친필 맞습니까? 믿을 수 없습니다. 아마 후진타오 주석과 상의하고 썼을 것입니다. 이 회장님 대단하십니다.

이 회장: 그래서 말인데요. 전에 산동성 서기(張高麗)님이 커다란 자연석과 돌로 만든 작품 여러 점을 기증해 주기로 했는데 수고스럽겠지만 그 자연석에 이 휘호의 글씨를 그대로 새겨 주실 수 없겠습니까?
강 성장: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난 3월 산동성 정부가 보내준 석물 기증품들이 서귀포에 도착했습니다. ‘서복공원’ 휘호가 새겨진 20톤짜리 대형 태산석과 서복의 행전(行傳)을 돌에 암각한 벽화 6점, 진시황 사기에 나오는 서복 관련 문구가 새겨진 비석 2점. 4월 10일 이 새 식구들은 기념관 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최창신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다.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태권도신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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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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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210.XXX.XXX.253)
너무나 훌륭한 일이 전파되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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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3 19:37:13
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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