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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이름은 어머니, 그리고 미미 <하>
오마리 2008년 05월 31일 (토) 00:33:43
추석 명절에 찾아온 자손들이 모두 떠나가자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셨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3일 후 혼수상태에 빠지셨고 병원에서 영면하셨습니다. 아마 당신의 힘들고 길었던 삶의 여정을 그 쯤에서 종식하고 싶으셨던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언니의 얘기에 의하면 그것은 자살이나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언니는 "더 이상 외롭게 방치되는 것이 싫으셨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라면 충분히 그러실 수 있는 분이지, 자신의 존엄성이 점점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견딜 수 없으셨겠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슬픔이 너무 컸습니다.

어머니는 단명하고 자손이 귀한 집안의 장손에게 시집와 많은 자식을 낳으셔 조상들을 기쁘게 하셨고 여러 면에서도 가정에 헌신하셨습니다만, 아버지께서 타계하신 후 너무 오래 홀로 사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재혼을 원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찬성했으나 의외로 오빠들이 강력히 반대하였습니다. 집안의 체면 유지를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오빠들이 어머니와 살지 않으면서도 어머니 노년의 외로움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한 잡음을 걱정하는 순전한 이기심에서 반대한 것입니다.

어머니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했으며, 자식들의 의사도 자유의지에 맡겼고, 여성스러면서도 남자처럼 대범했으며 어려운 노인들을 보면 많이 가슴 아파 하셨습니다. 평소에 거주하시던, 산의 인근 도시 노인정의 회장으로 불우한 노인들을 위해 돌아가시는 그 때까지 점심과 소소한 비품을 제공하고, 노인들이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오락물까지 설치하는 등 재정적인 보조를 하는 것으로 보람을 가지셨습니다.


말년 10여년을 뇌경색으로 말을 할 수 없게 되고 반쪽 지체가 자유롭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자 아주 자존심이 상하신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말씀은 알아 들으시는데 자기 의사를 전달하지 못하니 답답해 괴로워하는 모습이셨으며 걷기까지 불편해지시니 그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효자라고 생각했던 셋째 오빠가 정년퇴직하자 산정의 어머니 옆에 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가족들은 모두 어머니에 대한 염려를 덜하게 되었습니다만 돌아가실 때의 어머니 모습을 묘사한 언니의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미어져 내렸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수발하러 간 언니는 어머니 옆에 있던 올케나 일하는 사람이 어머니를 깨끗이 돌보지 않았는지 똥이 어머니 손톱 밑에 말라 붙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에 불려 전부 긁어냈다고 합니다.

그보다 더한 것은 홀로 쓰시는 방과 욕실에 어머니 혼자 방치해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 크고 넓은 방에 음식이나 달랑 넣어 주고 아무도 자주 들어가 보지 않았다는 말에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으며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그 길고 긴 하루하루 아무도 찾지 않는 덩그런 방에서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몸으로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그런 힘든 몸으로 똥이 제대로 닦였겠는지요. 빨리 떠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식음을 전폐하여 생명을 단축하려 하셨겠습니까. 그것이 어머니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이곳 토론토에 제가 아는 82세 되시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우연히 누군가의 소개로 알게 된 분인데, 그 분 또한 기가 막힌 상황에 사십니다. 관절염까지 앓아 걷기조차 불편한 그 노인을 딸이 집안 청소에 밥짓기 빨래까지 시키고 있습니다. 딸과 사위는 가게를 운영하는데, 집에 오면 딸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어머니만 부려먹는 것입니다.


게다가 아무리 노인이라도 용돈이 필요한데 단돈 십원을 주지 않고 혹사하고 오히려 사위가 딸 모르게 얼마 돈을 주다가 들키면 딸과 싸움을 한다고 합니다.

제가 그런 얘기를 듣고 할머니께 보약을 지어 드리고 가끔 용돈을 드리고 옷을 사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딸이 할머니께 하는 말이 “어머니가 그 여자에게 나 몰래 무얼 해 주었으니까 그러겠지 아니면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여자가 왜 그런 호의를 베풀겠어? 무얼 만들어 주었지?”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할머니께서 고맙다고 깻잎장아찌를 제게 만들어 갖다 주셨지만 80 넘으신 할머니께서 손수 하신 것이라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지나가다 모르는 노약자나 아이들이 어려움에 처한 경우를 보게 되더라도 발을 멈추고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사람의 도리입니다. 하물며 나를 낳고 길러 주신 부모에게 효도는 못할망정 늙으신 부모를 부려먹어야 되겠습니까?

자식을 호사시켜 키운 부모든 없어서 가난하게 키울 수밖에 없었던 부모든 모든 부모는 자식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과 헌신으로 키웠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헐벗은 부모든, 무지한 부모든 모든 부모는 마땅히 존경 받아야 합니다. 더욱이 연로해 가는 부모는 꼭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 사후에 꽃이 오백 개, 천 개가 들어온들 그것이 이 세상에 안 계신 부모에게 무슨 행복이겠습니까? 커다란 눈의 아름다웠던 그대 이름은 미미, 나의 어머니는 손톱에 똥이 말라붙고 외로움에 지쳐 돌아가셨습니다. 성대한 장례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스운 코미디일 뿐입니다. 우리 부모 장례식은 이리 성대했소 라는 자식들의 체면과 자기만족을 위한 것일 뿐입니다. 그보다는 살아 생전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자주 동무해 드리고, 정성스런 죽 한 그릇을 올리는 게 천 개의 꽃다발보다 훌륭할 것입니다.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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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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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삼 (211.XXX.XXX.129)
2008년 6월 5일 [목요일] 오전 05:36
공감되는 얘기군요.
그러나 필자는 이웃 할머니는 보살피면서, 왜 자기의 어머니는 자주 찾아뵙지 못했을까요?
작은 오빠와 올케를 나무랄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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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5 08: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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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실 (211.XXX.XXX.129)
2008-06-01 16:15:59
오래 전에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말년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 같아 가슴이 더욱 아픕니다. 이 슬픈 글을 읽고 불효자는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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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2 08: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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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리 (99.XXX.XXX.82)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의 근본이신 부모님께는 전화한통하는 것도 별러서 며칠씩이나 끌다가 통화하면서 내 아이들에게는 항상 언제나 전화번호도 길어서 단축번호로 하루에도 몇번씩...내 아이에게가는 관심과 사랑을 반만 아니 그 반의반만이라도 부모님께 드릴수 있다면 우리 부모님께서는 항상 행복하시고 외롭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선생님 너무 슬퍼하시진 마십시요.선생님께선 더 많은 어머니들께 효도를 많이 하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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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1 13: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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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종기 (211.XXX.XXX.47)
저의 어머니 생각이 나는군요. 어머니가 힘들어 하고, 저의 집사람이 고생한 일들이 생각납니다. 앞으로 좋은일 많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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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1 12: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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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성 (211.XXX.XXX.47)
모친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저의 마음도 너무 아픕니다.
감명깊은 좋은 글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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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1 12: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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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규성 (211.XXX.XXX.47)
효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정년퇴직했던 오빠의 심정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어쩌다 잠시 와보면서 가족을 잘못 평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도 직접 모시는 분이 가장 수고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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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1 12: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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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211.XXX.XXX.47)
진솔하지 않습니까? 가슴이 아프다는 말입니다. 유별난 불효는 아니었던 같지마는 지나고 보니 모든 게 불효였다는 자괴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거꾸로 애들 얼굴을 보게 됩니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턱없이 무너졌을 때, 아내도 그랬을 때, 우리 애들은?하고 말입니다. 체념하면 너무 비참한 것 같지만 평화가 오겠지요. 긴장하면 스트레스만 쌓여서 비참을 앞당기는 것 같겠지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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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1 12: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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