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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마한 남자, 머리 벗어진 남자는 싫어욧!’
신아연 2008년 06월 03일 (화) 00:19:20
좁은 동포사회이다보니 저도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알량하나마 공인에 속합니다. 동포 신문에 실리는 글로 인해 이런 저런 모임이나 한국 상점 등에서 저를 알아보는 분들을 더러 만난다는 뜻입니다.

이름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점잖은 척해야 한다거나 남들 다 깎는 물건값도 못 깎는 것 따위에 대한 억울함은 별로 없습니다. 원래가 물색없이 나서는 성격도 아닌 데다 한 푼을 아끼자고 그악스레 흥정할 줄도 모르니까요.

실상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덕을 본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정한 인사를 받는다거나 , ‘만나서 영광’ 이라는 농담 섞인 박카스라도 한병 얻어 마시고 , 요구한 적 없는데도 선뜻 값을 깎아 주는 친절을 누릴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무슨 대단한 유명인사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니니 지금까지 별 탈없이 처신을 해 온 편인데 며칠 전에 그만 실언을 하는 바람에 ‘동포 사회의 알량한 공인’으로서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만에 만난 남편이 머리를 깎으려고 저와 함께 미용실을 갔는데, 이마로 자꾸 흘러내린다는 이유로 자신의 직모를 귀찮아하는 남편에게 미용사가 대뜸 ‘파마를 한번 해 보시죠’ 하고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번 기겁을 하여 ‘ 나는 파마한 남자와 머리 벗어진 남자를 제일 혐오한다’ 고 경박을 떨었습니다.
남편의 파마를 극렬히 말리려다보니 저도 모르게 수선을 피운 것이었습니다.

순간 ‘아차 ‘ 싶어 미용실을 둘러보니 그나마 다행히도 파마하는 아저씨나 대머리 아저씨는 없었습니다. 함부로 말을 뱉아낸 저보다 미용사와 다른 손님들이 더 놀랐으니 저의 경망스런 과격 발언을 수습할 길이 없어 그만 아득해졌습니다.

‘ 저 미용사는 한국서 온 지 이제 겨우 몇달 째라니 아직 나를 알지 못하겠지, 그리고 나는 이 미용실에 두번 다시 안 오면 그만일 테고 ’ 하며 딴에는 빠져나갈 방도를 궁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실 쪽에서 미용실 주인이 나타났습니다. 그 주인 미용사는 물론 저를 잘 압니다. 어느 땐가 동포신문에 난 제 글을 거의 다 찾아읽는다고 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어머머, 그 여자가 그런 심한 말을 했어? 그렇게 안 봤는데 , 어쩜!’ 하면서 자기들끼리 제 흉을 볼 생각을 하니, 더욱 난감해져서 ‘일단은 주인에게 내 정체를 탄로나지 않게 하는 게 수 다. ‘싶어 고개를 옆으로 슥~ 돌려 슬그머니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여기까지가 말 한 마디 잘못하는 통에 알량한 공인인 제가 ‘스타일 구기게 된 사연 ‘입니다.

그게 뭐 그리 대수냐고요? 그러기에 처음부터 제가 ‘좁은 동포 사회’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십 년 전쯤 시드니의 어느 한인 교회 목사 사모는 중국집에서 자장면 한 그릇 사먹는 데도 눈치가 보였답니다. ‘ 목사 부인이 외식이나 하고 돌아다닌다’는 말을 들을까봐 걱정이 되어서 그랬답니다.

실상 저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나 각 기관 혹은 단체의 리더만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 이민 사회에서는 누구나 저마다 공인입니다. 이른바 한인촌을 거닐다 보면 식품점을 하는 누구, 입시 학원을 경영하는 아무개, 노래방 모씨 등등 ‘유명 인사들’을 수시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주 한인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 중에, ‘좁아빠진 이민 사회에서…’ 로 시작하는 레퍼토리가 있습니다. 이민 사회가 워낙 좁다보니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신경을 쓰며 전전긍긍 남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뜻이지요.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시가 하나 있습니다. 이 시로 이번 일에 대해 스스로 맘을 달랠까 하니 파마한 아저씨들, 대머리 아저씨들, 그리고 파마한 대머리(?) 아저씨들도 제 실언에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규원 <죽고 난 뒤의 팬티>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도 아닌 죽은 자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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