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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 정말 어렵지요?
임철순 2008년 06월 09일 (월) 00:01:07
한국어는 참 어렵습니다. 서로 비슷한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구별하는 것과 띄어쓰기를 정확하게 하는 것도 어렵지만, 맞춤법에 맞게 글을 쓰는 일은 특히 어렵습니다. 뉘우치거나 탄식할 때 또는 어이가 없을 때, 작은 것을 업신여길 때 쓰는 감탄사는 애게게 또는 에게게일 것 같은데 정확한 맞춤법은 애걔걔가 맞습니다. 정말 애걔걔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좋은 것을 고르고 난 뒤 남은 허름한 물건, 그래서 별로 쓸모없는 것들을 우리는 흔히 허접쓰레기라고 말하지만 그런 말은 사전에 없습니다. 허접쓰레기는 허섭스레기의 잘못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아니 도대체 애게게라고 하면 왜 안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발음하는 데 되게 공을 들여야 하는 허섭스레기보다는 허접쓰레기가 어감 상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이상한 것들은 참 많습니다. ‘거북이’는 왜 ‘거북’으로 바꾸었는지 모르겠고 ‘반딧불’이 뭐가 어때서 굳이 ‘반딧불이’로 쓰라고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안성맞춤은 전에 안성마춤이었고 숨바꼭질도 숨박꼭질이라고 쓴 적이 있었는데 골탕이라도 먹이려는 것처럼 말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눈썹은 눈섭이라고 하면 틀리지만, 눈곱은 눈꼽이라고 쓰면 틀리니 헷갈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이시옷은 또 얼마나 어렵습니까? 어느 때, 어떤 말에 사이시옷을 써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나무꾼 나무때기에는 사이시옷을 넣으면 안 되지만, 나뭇잎 나뭇조각에는 사이시옷이 들어가야 맞습니다. 어렵습니다.

말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반지빠르다는 말을 최근에야 새로 알게 됐습니다. 그 뜻은 1)말이나 행동 따위가 얄미울 만큼 민첩하고 약삭빠르다 2)얄밉게 교만하다 3)어중간하여 쓰기에 알맞지 아니하다, 이렇게 세 가지나 됩니다. 잘 쓰지 않아서 몰랐던 말인데, 그래도 들으면 어떤 의미일 것이라는 짐작을 하기는 비교적 쉬운 단어입니다.

그런데 10여 년 동안 맞춤법을 틀리게 써온 말을 최근에 하나 알게 됐습니다. '벌게지다'입니다. 나는 이 말을 늘 '벌개지다'라고 써 왔는데, 어느 날 내가 보낸 메일을 퇴직한 신문사 선배가 바로잡아 주어서 잘못을 알게 됐습니다. 내가 틀리게 쓴 줄도 모르고 함부로 글을 고쳐서 여러 사람에게 전송했다고 방방 뜨다가 그야말로 얼굴이 벌게지고 말았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낡은 사전에는 '벌개지다'로 돼 있었습니다. 그렇게 망신을 당한 다음 날 바로 서점에 가서 국어사전을 새로 샀습니다.

어떤 말을 다룬 것이든 사전은 의심의 여지 없이 명쾌합니다. 사전을 쥐면 안심이 됩니다. 늘 사전을 뒤지는 사람은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장마> <완장>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윤흥길은 국어사전 뒤지는 게 취미라고 합니다. 아무데나 펼쳐 표제어를 훑어 나가다 보면 눈에 띄는 단어가 있고 줄을 쳐 가면서 뜻을 익히다 보면 글의 소재가 찾아진다는 겁니다. <霧堤(무제)>라는 소설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 말의 뜻은 배 위에서 보면 육지처럼 보이는 먼 바다의 안개, 즉 바다에서 만나는 신기루입니다. 오랜 항해에 지친 선원들이 육지를 그리워하다가 보게 되는 환상을 말합니다. 사전을 뒤지다가 그 단어를 알게 된 윤흥길은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단어 하나에 기대어 이야기를 꾸며 중편소설로 엮었답니다. 글 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사람도 이렇게 국어사전을 끼고 사는데,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말의 뜻과 맞춤법에 너무도 무신경합니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의 맞춤법에 대해서 말이 많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맞춤법 틀리는 것까지 함께 지적하며 이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의 맞춤법과 문장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순서대로 몇 가지를 꼽아 보겠습니다.

'3.15 정신으로 이 땅에 진정한 민주화와 국가번영을 이루어지기 기원합니다.' 작년 3월 23일 마산 3.15묘지 방명록에 남긴 이 글은 어법이 맞지 않습니다. 작년 현충일에 국립묘지에서 쓴 글 '당신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읍니다. 번영된 조국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모든것을 받치겠읍니다'에는 습니다, 바치다가 읍니다, 받치다로 잘못돼 있습니다. '이루는데'도 '이루는 데'로 띄어 써야 맞습니다. '읍니다'는 또 나옵니다. 대통령 취임일(2008.2.25)에 '국민을 섬기며 선진 일류국가를 만드는데 온 몸을 바치겠읍니다'라고 잘못 썼습니다. 올해 5월 6일 박경리씨의 빈소를 찾았을 때는 '이나라 강산을 사랑하시는 문학의 큰별께서 고히 잠드소서'라고 써서 웃음을 샀습니다. '고히'는 '고이'의 잘못이며 '이나라'와 '큰별'은 당연히 띄어 써야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문장이 말이 되지 않는 점입니다.

나이든 분들이 흔히 잘 틀리는 '습니다'는 1989년 3월에 시행된 표준어규정 제 17항에 따라 '읍니다' 대신 쓰이고 있는 말입니다. 비슷한 발음의 몇 형태가 쓰일 경우 그 의미에 아무런 차이가 없고 그 중 하나가 널리 쓰이면 그 한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입니다. 그래서 '읍니다'보다 상대적으로 더 널리 쓰이는 '습니다'가 표준말이 된 것인데, 이 대통령처럼 나이든 분들은 아직도 그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맞춤법은 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에 남는 방명록에 대통령이 맞춤법도 틀리고 어법도 맞지 않는 글을 남기는 것은 그 개인의 잘못이면서 국민 전체의 수치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통령의 맞춤법 때문에 창피해 하는 것입니다. 방명록의 글은 연설(즉흥이든 아니든)보다 더 오래 가는 역사적 기록입니다.

대통령이 그렇게 자주 틀리는데도 바로잡는 노력이 없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틀릴 수 있다고 칩시다. 그 밑이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뭘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들도 맞춤법을 모르고 문장에 서투르기 때문에 대통령의 잘못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잘못을 알기는 하는데 말을 하기가 귀찮은 사람들만 모여 있는 건가요, 아니면 잘못을 알아도 감히 말을 할 수 없는 분위기인가요? 어떤 경우든 다 문제입니다.

방명록의 휘호가 연설보다 더 오래 남는 기록이라고 말했지만, 왜 연설문은 미리 준비하고 여러 사람이 읽고 검토하면서 방명록에 남기는 글은 전적으로 대통령 개인에게 맡기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연설문보다 짧고 연설문보다 더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게 방명록의 글입니다. 그런 글을 쓰는 것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사전에 치밀하게 연구하고 기획해야 하는 공적 행위입니다. 연설비서관이 있는 것처럼 방명록 또는 휘호비서관도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연설비서관이 그 부분까지 챙겨야 합니다. 평생 치열한 자세로 글을 써왔고 <토지>라는 민족문학의 유산을 남긴 박경리씨에게 바친 문장, 대체 그게 뭡니까?

이 경우를 통해 드러나는 것처럼 매사를 그렇게 무심하고 편안하게, 바꿔 말하면 안이하게 다룬 것이 오늘의 이 국정난맥과 국민의 분노를 부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맞춤법에는 동의하기 어렵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지만, 그것은 국민 모두가 지켜야 하고 알려고 애써야 하는 규약입니다. 대통령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맞춤법을 지켜야 마땅한 제1 국민입니다. 맞춤법이 맞아야 올바른 소통과 이해가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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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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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순 (211.XXX.XXX.129)
2008년 6월 10일 [화요일] 오전 08:47
임주필님, 구구절절 옳은 말씀만 쓰셨네요. 덕분에 맞춤법 공부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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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9 15: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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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귀호 (211.XXX.XXX.129)
2008년 6월 9일 [월요일] 오전 10:24
마음에 듭니다.정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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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9 15: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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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권 (211.XXX.XXX.129)
2008년 6월 09일 [월요일] 오전 10:10
정말 공감합니다. 특히 학교에 있는 더로서는 늘 아이들에게 맞춤법에 맞게 쓰라고 하지만 저조차 틀리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특히 복수 표준어도 있고, 띄어쓰기도 어렵고 그렇습니다. 외국인이 우리 글을 배우려면 얼마나 힘들까하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늘 보내주시는 칼럼을 잘 보고 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금성초 교사 소진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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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9 15: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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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후 (211.XXX.XXX.129)
요즈음 젊은 사람들에게 맞춤법을 가지고 핀잔을 주고는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늘 국어사전을 끼고 살아야 한다는 각오가 듭니다. 참으로 좋은 글입니다. 임 철순님의 글은 보석입니다. 항상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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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2 1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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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211.XXX.XXX.129)
2008-06-09 14:50:35
한글 맞춤법 상식 계속 써주세요. 맞춤법은 어렵지만 상식으로 많이 읽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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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2 1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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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사냐면웃지요 (210.XXX.XXX.142)
영문과 졸업하고 영어 신문은 일 학년 때 부터 지금까지 40 년 째..최근 10 여 년 간은 기고문,심층 보도 중 단 한 건도 읽지 않고는 넘기지 않는(여행한 후에는 모아 두었다가) 편집증적 읽기와 영문판 각국 고전 소설,다큐 까지...그러나 사전 없으면 못 읽습니다. 한글 읽을 때나 쓸 때도 사전을 뒤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봅니다. 다만 필자 분께서 지적한 대로 표기법을 바꾼다는 것은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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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9 16: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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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호 (218.XXX.XXX.108)
주필님께서 지적하신대로 우리 말은 말할 때는 편한데, 글로 쓸 때에는 너무 어렵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더 큰 문제는 단순 맞춤법이 아니라 문장이 "말이 안돼는 경우" 입니다. 멀쩡한 대학 나오고도 자기 의사를 일목요연하게 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을 가끔 보게 됩니다.

노래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연습해도 음치를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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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9 10: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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