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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가 하고 싶을 때-이덕무,『키 큰 소나무에게 길을 묻다』
김이경 2008년 06월 10일 (화) 01:07:42

모처럼 언니와 만나 수다를 떨었습니다. 입이 무거운 데다 영원한 아군이라 밖으로 말이 샐 걱정이 없지요. 그래선지 잠깐이다 싶었는데 어느새 세 시간이 훌쩍 넘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수다를 복기해보니 그 세 시간 중 두 시간은 남의 뒷담화를 한 것 같습니다. 세상에 제일 재밌는 게 불구경이라지만 뒷담화의 재미 또한 만만치가 않습니다. 다만 뒤끝이 씁쓸해지는 후유증이 문제입니다. 과연, 집에 와서도 두고두고 떨떠름합니다. 내 무능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남의 탓을 하고, 나를 괜찮은 인간으로 생각하고 싶어 남의 허물을 뒤진 일이 개운할 리는 없지요. 문득 옛글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남의 잘못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은 피를 머금었다가 뿜는 것과 같아서 먼저 자신의 입을 더럽히기 마련이다.”

조선의 대표 책벌레 이덕무가 한 말입니다. 규장각 검서관으로 정조대 문예부흥의 한 축을 담당한 이덕무의 별명은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입니다. 등잔불 하나 넉넉히 켤 수 없는 가난한 살림에 종일 햇살을 따라가며 책을 읽고는 해가 길어져 참 다행이라고 기뻐하는 사람, 추운 겨울밤 『한서』 한 질을 이불 위에 덮어서 얼어 죽기를 면했다고 좋아하는 사람이니 책만 보는 바보가 틀림없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 바보 선비가 남긴 글을 읽으면 왜 약디약은 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는지요.

서른아홉에 정조의 부름을 받고 관직에 나아가기까지 이덕무는 서출(庶出)의 가난한 서생으로 기약 없는 날을 살았습니다. 과거를 볼 수도 없는 반쪽짜리 선비노릇을 하면서도 그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학문은 세상에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언제 쓰일지 모를 처지에도 독서는 실천되어야 제값을 한다고 믿었으니, 그 믿음이 스스로를 얼마나 괴롭혔겠습니까?

이덕무의 산문집 『키 큰 소나무에게 길을 묻다』(『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의 완역서)에는, 너그럽지 못하고 화를 잘 낸다고 자신을 책망하는 대목이 자주 눈에 띕니다. 아마도 세상의 기준을 무조건 따를 수 없는 처지에서 자신이 생각한 원칙을 지키다보니, 속 좁단 얘기도 듣고 까칠한 사람이란 욕도 먹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자기반성을 하며 좀 너그러워져야겠다고 여러 번 다짐도 합니다. 허나, 책만 보는 바보라 하여 이덕무가 남이 권하는 대로 “응응” 하는 무골호인인 줄 알면 오산입니다.

너그러운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그는 그런데 과연 너그러움이란, 관용이란 무엇인가 하고 묻습니다. 그는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않고 그릇됨을 바로잡지 못하는 관대함”은 참된 너그러움이 아니라고 봅니다. 참으로 너그럽기 위해서는 공정하게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경지에 오르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그는 그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일단 남의 말부터 하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근거 없는 비방이나 밝지 못한 판단으로 멋대로 남을 평하지 않는 것뿐인데, 어찌 하면 그렇게 될까? …나쁜 소문은 두 배로 퍼지고 좋은 소문은 반으로 줄어든다. 덕망 있는 선비는 반대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남과 이야기하면서 그의 작은 허물을 자세히 살폈다가 그가 가기를 기다려 곧 비웃는 자들을 물여우의 무리라 한다. …화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후회할 일이 있을까 조심하는 것은 사람됨의 기본이다. …훌륭한 사람에겐 커다란 노여움이 있을 뿐 작은 노여움은 없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곳으로 남을 이끌지 마라.”

『키 큰 소나무에게 길을 묻다』의 상당 부분은 자연현상과 동식물을 관찰한 세밀한 기록들입니다. 사실에 근거하여 기술하고 비평하는 실학정신의 발로인데, 이는 사람관계에도 적용됩니다. 이덕무는 칭찬도 비방도 다 사실을 넘어선 것이라고 경계합니다. 사랑이 지나쳐 단점을 못 보는 것이나 미움이 지나쳐 장점을 놓치는 것이나 다 잘못이라는 거지요. 오직 사실에 입각하여 공정하게 판단하는 것, 그리하여 남을 견딜 수 없는 곳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것. 그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고 거듭 새깁니다.

이덕무가 죽고 이태가 지난 뒤 정조는 탄식합니다. “지금 책들을 펴내는 것을 보니 검서관 이덕무의 학식과 능력이 잊혀지지 않는구나.” 말 한 마디, 글자 한 자의 무서움을 알았던 사람은 그렇게 큰 그림자를 남깁니다. 가슴 답답한 날, 세상을 탓하는 대신 말없이 글을 읽었던 책벌레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가슴에 원망이 쌓일수록 말을 멈추고 책을 펼치랍니다. 고칠 수 없는 남의 허물을 들추기보다 고쳐야 하는 제 허물에 마음을 쓰라고 합니다. 그것만이 부끄러움을 더는 길이라고 합니다. 더는 부끄럽지 않기 위해 이제는 입을 닫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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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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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자 (218.XXX.XXX.216)
말과 행동, 그리고 내면의 절제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글 입니다.

도움이 되었습니다.
崔惠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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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1 18: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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