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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생명력
이상대 2008년 07월 10일 (목) 06:59:58

이곳 무주에 정착한 지는 아주 오래 되었지만 염소, 닭 등을 주로 방목, 방사하다 보니 처음 몇 해를 제외하곤 채소 하나 제대로 재배하지 못하였습니다. 가축을 정리하고 개인적으로 배울 것이 있어 서울에서 4년쯤 지내다 금년 들어 이곳에 상주하면서 주말농장 수준의 채전을 가꾸고 있지만 왕초보라 무척 힘이 들고 상당히 바쁘기도 합니다.

장비를 이용할 만한 규모가 아니어서 처음에는 아주 작은 터를 삽과 괭이로 일구어서 상추, 쑥갓, 부추는 씨를 뿌리고 가지, 도마도 등 몇 가지는 모종을 사다 심었습니다. 흥미와 보람을 느끼면서 그때그때마다 조금씩 확장하다 보니 지금은 처음보다는 많이 크지만 역시 좁은 공간입니다.

앞에 언급한 것 외에도 케일, 브로커리, 이름도 잊어 먹은 쌈 거리 4종과 고추(일반 고추와 꽈리, 피망) 그리고 호박(단 호박, 일반 호박), 오이, 옥수수, 해바라기... 그게 다가 아닙니다. 콩 몇 가지와 시험재배중인 취와 인진쑥, 그리고 머위도 있습니다. 엄청 많은 작물이 좁은 공간에서 상당히 복잡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놀랄 만큼 끈질기고 위대한 생명력을 보여준 가지, 줄 콩, 그리고 돌미나리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가지
처음에 두 포기의 모종을 사다 심었습니다. 이식 후 서울을 다녀오느라 며칠 돌보지 않았더니 몇 가지 작물이 아주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두 포기 심은 가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중 한 포기는 소생할 가망이 없을 정도로 축 늘어져 땅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잎은 누렇게 변색하여 오그라들고.

처음엔 너무 가물어서 그런가 했습니다.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나 하여 저녁 무렵에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거의 변화를 느낄 수 없을 정도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계속하여 물을 주었습니다.

3일 후에 줄기가 어느 정도 일어서고 뒤따라 극히 일부만 남은 잎도 제 위치를 잡으면서 푸름을 띄기 시작하였습니다.

곧 이어 비도 내리고 하여 다 죽어가던 것이 회생에 성공하여 잎과 가지를 더하더니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었습니다. 보다 놀라운 것은 상태가 그래도 나았던 다른 한 포기를 앞질러 아주 멋있게 생긴 열매를 두 개나 먼저 맺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상태로 봐선 어느 누구도 다 죽어가던 작물이라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어 하나의 생명을 살려낸 뿌듯함과 동시에 끈질긴 생명력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가지의 탈이 가뭄 탓이 아니고 늦서리 폭탄을 맞은 탓이란 걸 알았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원자폭탄을 맞은 것과 같았을 엄청난 시련을 하잘것없는 가지가 이겨낸 것입니다.

줄 콩
좀 늦은 감이 있어 조급한 마음에 원예용 상토를 구입하여 포트에 담아 발아를 재촉하였습니다. 그러나 며칠 만에 돌아와 보니 극소수는 발아에 성공하였으나 나머지는 물을 너무 많이 주어 그런지, 아니면 물에 담갔다가 포트에 담아 그런지 썩은 것도 있고 싹을 틔울 기미가 없는 것도 있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좀 밀식하는 감이 있었으나 고추를 심은 두렁에 씨를 다시 심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싹이 돋아나 일제히 새파란 모습을 보이면서 힘차게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적당한 조건이면 이상 없이 싹을 틔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서울서 볼일이 생겨 한참을 돌볼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줄 콩이라는 것이 습성상 아무 것이나 감고 올라가는데, 고추를 감고 올라가면 큰일이 아닙니까? 생각 끝에 미리 올라갈 망을 만들어 주고 매 포기마다 나뭇가지를 꽂아 주었습니다. 한 주일쯤 뒤에 서울에 더 머물러 있어야 할 일이었지만 줄 콩이 마음에 걸려 급히 내려와야 했습니다.

도착과 동시에 제대로 올라가는가 하고 확인하니 이게 웬일입니까? 누가 와서 감아준 것 같이 꽂아준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동물은 훈련을 거듭하면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고도의 묘기도 선보이기도 합니다만 줄 콩 같은 식물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하나의 예외도 없이 바라는 대로 올라간다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았습니다. 갖은 역경도 마다않고 억척 같이 잘 자라 열매를 맺어 대를 이르라는 조물주의 섭리일 것입니다만....

돌미나리
채전을 가꾸면서 웬일인지 돌미나리가 하나 둘 돋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습기만 있으면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돌미나리를 어떻게 하면 재배할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고 있었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이전에도 장날 시장에 갔다가 돌미나리라며 뿌리를 심으면 번식이 가능하다기에 뿌리를 잘라 심어 보았으나 헛수고였습니다. 모르는 것이 탈이었습니다. 그건 돌미나리가 아니었고 당연히 싹이 나지 않았습니다. 먹어보니 향은 좋아 그런대로 먹을 만 하였으나 우리 집에서도 나눠준 이웃집에서도 모두 먹지 않았답니다. 도대체 그게 무언가 알아보려고 한참 지난 후 다시 시장에 가보았더니 아예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채전에 절로 돋아난 돌미나리니 얼마나 반갑고 좋았겠습니까? 어느 정도 크는 대로 이식하여 작지만 미나리 깡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채전이 있는 곳은 원래 논이었고 습기가 많아서인지 돌미나리가 많았었습니다. 염소들이 워낙 먹고 밟아 씨가 말랐나 하였는데 강인한 번식력 덕분인지 또다시 채전 이곳저곳에서 부지런히 돋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씨가 뿌려져 있었는지? 그 씨가 얼마나 많았었는지? 발아 적기는 특별히 없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도 돋아나고 있습니다. 그래 또다시 어디에 옮겨 심을까 하고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글쓴이 이상대님은 경북 영주 태생의 농업인입니다. 육군 장교 출신으로 1988년 가을부터 전북 무주에 터를 잡아 자연 속에서 자연인으로 마음 편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처음엔 가축, 주로 염소를 방목 사육하다가 정리한 후 지금은 소규모 영농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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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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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49)
종종 자연에 관하여 써 주신 글을 즐겁게 읽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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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1 00:2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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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춘 (61.XXX.XXX.140)
어릴 적 살았던 시골 생각을 하며 말 못하는 작물의 생명력을 재미있게
소개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 채전에서 생명의 신비까지 감상하며
사시는 분이 부럽다고 하면 욕이 되겠지요. 늙은이의 잠고대라 용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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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3 11: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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