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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는 애 젖 먹이러 갔는데요…
신아연 2008년 07월 15일 (화) 08:10:23

지난 달 27일자 김 흥숙 님의 칼럼 <저, 임신했어요…> 를 읽고 오래 전에 쓴 제 글이 생각났습니다.

우선 그 글을 여기에 옮겨보겠습니다.


<얼굴에 여드름이 돋고 풋풋한 향기를 뿜을 나이의 여고생들이 어찌된 영문인지 등에는 책가방을 메고 두 손으로는 유모차를 끌면서 등교를 합니다.

말로만 듣던 ‘리틀맘’들인가 봅니다.
교문을 들어선 어린 엄마들은 갓난아기를 학교 부속 탁아시설에 맡기고 1교시 수업을 받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 무섭게 아기에게 젖을 물리러 달려갑니다. 수업 중이라 해도 아기가 보챈다는 연락이 오거나 젖이 불면 언제나 교실을 나갈 수 있습니다. ‘육아와 학업’ 가운데 ‘육아’를 우선토록 학교측이 배려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교시 담당 선생님이 한 학생을 호명하자 급우들은 “걔는 지금 애 젖주러 갔는데요.”라고 대답합니다. 여고 교실에서 오간 대화라기에는 너무 생뚱맞고 엽기적이기까지 합니다.

더욱 한심스런 점은 애 아비들이 대부분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학생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불장난의 결과에 책임감을 느껴 졸업 후 장래를 약속하며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기를 원하는 녀석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리틀맘들도 거기에 대해서는 기대조차 없노라고 당돌히 대꾸합니다.

가장 어리게는 16세에 출산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생명을 세상에 내보내느라 산고를 치르는 모습에서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막 태어난 핏덩이 ‘손주’를 받아 안고는 철부지 딸자식에 대한 원망도 잠시 잊은 듯, 웃는 것도 같고 우는 것도 같은 표정을 짓는 친정엄마(?)를 대하는 민망함이란…

그 날 수업이 어찌어찌 끝났습니다. 하지만 하교 후 10대 미혼모들의 생활은 더욱 한심스럽습니다. 실상 본격적인 애보기는 그 때부터인 듯, 방과 후 또래들과 삼삼오오 햄버거 집으로 몰려가거나 액세서리 가게를 기웃거릴 나이에 그네들은 유모차를 힘겹게 접어 끌고 스쿨 버스에 올라 곧장 집으로 향합니다.

아기를 안은 손으로 어깨에 걸린 기저귀 가방을 추스리던 중에 옆으로 비어져 나온 기저귀 하나가 바닥에 떨어집니다. 거머쥔 보따리가 많다 보니 미처 주울 새도 없이 버스가 움직입니다. 버스에 앉아서 잠시 졸고 나서 반나절을 시달린 몸으로 아기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습니다.

집에는 반겨주는 가족이나 맛있는 간식 대신 아침에 미처 세탁하지 못한 아기 옷이며, 앞대기, 기저귀 따위의 밀린 빨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다 학교에서 적신 빨랫감도 이미 한 가방입니다. 미혼모가 된 딸자식을 보고 있으면 속이 터지게 생겨서 그런지 출산을 한 여고생들 대부분은 부모 집에서 나와 아이와 함께 따로 살고 있었습니다. >

이상은 임신을 한 여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시드니 인근의 한 고등학교를 소개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내용입니다.

이 학교는 늘어만 가는 호주의 ‘10대 엄마들’이 육아 대책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학업을 포기하게 되자 이를 막아보기 위한 고육책으로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학교를 다니도록 허용했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고등학교는 마치게 하자는 의도입니다.

어쩌다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한 10대 소녀들이 더 불행해지는 것을 막고, 이왕지사 저질러진 일,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우선 보듬고 안아주자는 취지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 그 프로그램에서는 김 흥숙님의 글에서처럼 스스로 원해서, 또래들의 부러움과 선망 속에서, 무슨 유행처럼 10대 소녀들이 임신을 했다는 암시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 학교가 소개된 때가 딱 5년 전입니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그 때 이후 호주 전역에는 리틀맘들을 받아들이는 학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 프로그램은 리틀맘의 좌절되고 뒤틀린 일상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앞질러 과장된 절망도 없었지만 영화의 세팅된 결말처럼 상투적 희망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절망에 대한 섣부른 예단도 절제되어 있었지만 희망 또한 절대적으로 보류된 막막한 현재만이 정지된 화면처럼 존재했다는 뜻입니다.

그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고, 먹구름 낀 하늘 밑 나뭇가지 위에 옹송거리고 앉은 작은 새같은 애처로운 현실만이 있었습니다.


리틀맘들의 실상은 이러합니다. 그러니 철없는 애들이야 뭘 몰라서 그런다고 해도, 이를 미화하는 듯한 주제의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 또래들의 엉뚱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성세대들은 대놓고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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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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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장춘 (211.XXX.XXX.129)
2008-07-15 10:37:32
1984년 호주를 잠시 혼자서 여행 한적이 있습니다.
시드니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드물 때입니다.
아기 같은 엄마들이 여기도 조금은 있을 것입니다.
덜 많을 때 어떻게 해야 할텐데, 아마 조금은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답변달기
2008-07-15 15: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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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211.XXX.XXX.129)
2008-07-15 09:56:29
이런 얘기를 들으면 남의 일같지 않습니다. 시간이나 장소도 아주 가까이 있는 느낌입니다. 생각하게 해주시는 글, 늘 고맙습니다.
답변달기
2008-07-15 15: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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