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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7월 18일
임철순 2008년 07월 18일 (금) 01:15:55

1985년 7월 18일이 무슨 날입니까? 아무 날도 아닙니다. 음력으로 6월 1일, 무오(戊午)였던 그 날은 우리가 지나 보내온 수많은 날들 중 하루이며, 이제는 돌이켜 살 수 없는 과거의 어느 날입니다.

굳이 이 날을 이야기하는 것은 옛 신문 때문입니다. 최근 집안을 정리하는데 낡은 서류봉투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버릴까 하다가 열어 보니 누렇게 빛이 바랜 1985년 7월 18일자 한국일보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게 대체 뭐지? 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이름이 나간 것이든 아니든 내가 쓴 기사는 모두 스크랩을 했지만, 어느 날부턴가 그 일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신문을 보관한 것이 의외였습니다.

신문은 12면에 불과했고, 1면 톱은 전두환 대통령의 제헌절 경축사였습니다. 헌법의 권위와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씀, 평화적 정권교체를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약속이 세로 6단 크기의 컷과 함께 실려 있었습니다. 5공화국 시절 대통령의 말은 처음부터 ‘강조했다’, 야당 대표의 말은 ‘주장했다’고 보도한 게 우리 언론의 부끄러운 모습이었는데, 그 기사에서도 전 대통령은 잘도 강조하고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1면 톱인데도 기자 이름은 없었습니다.

11면은 사회면입니다. 왼쪽의 네 칸짜리 고정만화 ‘두꺼비’(안의섭)의 소재도 제헌절입니다. 두꺼비는 “심심한데 헛소리나 한마디 하자/헌법을 처음 제정한 제헌절은 물론 쉬어야 한다/그런데 그 후 여러 번 뜯어 고쳤으니…/‘개헌절’이라는 것을 만들어 역시 쉬는 날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사회면 톱에 내가 쓴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신문을 보관했던 것입니다. ‘투병 1년 7개월…안타까운 안부’라는 제목 아래 현민 유진오 박사의 근황을 전한 기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37주년 제헌절 기념식이 열린 17일 상오 우리나라 헌법을 기초했던 玄民 兪鎭午박사(79)는 병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당시 사회부 기자로 문교부를 출입하던 나는 출입처와 관계없이 제헌절 화제를 찾아 현민 취재에 나섰고, 서울대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현민은 목 뒤의 뇌혈전증으로 1983년 12월 26일에 쓰러진 뒤, 뇌가 일부 손상돼 오른손이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간간이 병원 구내를 산책하거나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했습니다. 언어가 순조로워지라고 주치의가 일부러 노래를 시키면 현민은 주로 “이 풍진세상을 만났으니…”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회복을 장담하기 어려웠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한 현민은 초대 법제처장, 고려대 총장, 민중당 대통령후보와 신민당 총재를 역임한 원로였으며 <김강사와 T교수>, <창랑정기>와 같은 빼어난 소설을 남긴 작가였습니다. 그러나 친일의 낙인과 5공 당시 국정자문위원을 했다는 멍에도 그를 늘 따라다녔으니 毁譽褒貶(훼예포폄)이 한 몸에 엇갈렸던 셈입니다.

나는 당시 현민을 보지 못했습니다. 병실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 기사는 현민의 부인 李容載(이용재) 여사(당시 64세)와 의료진이 해 준 이야기를 쓴 것입니다. 이 여사는 그때 병실 문을 반 쯤 열고 문간에 서서 나의 질문에 응해 주었는데, 좀 들어가자고 하자 “지금 주무시고 계신다”며 상냥하면서도 분명하게 거절했습니다. 현민이 잠을 잔다는 말과, 이 여사의 교양과 지성에 압도돼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취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취재경위는 그랬는데도 그 기사는 병실 안에 들어가 모든 걸 다 살펴본 것처럼, 현민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씌어 있습니다. 원래 좋은 기사란 120을 취재해서 80 정도 쓰는 거라는데, 대부분의 기자들은 70~80을 취재하고도 120을 쓰려 하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전지적(全知的) 화자처럼 말하다 보면 과장과 왜곡이 빚어지는 것입니다. 그 기사는 ‘17일이 제헌절인 줄 알면서도 낮잠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그로서는 내심 우리 헌법의 험난한 역정과 憲政의 앞길에 대한 만감이 교차됐을 것이다’라고 끝납니다. 어떻게 그렇게도 현민의 마음 속까지 다 들여다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 현민의 투병기사를 사회면 톱으로 대문짝 만하게 실은 이유는 빤합니다. 데스크나 취재기자인 나나 똑같이 이 기사가 나간 뒤 현민이 곧 타계하기를, 그래서 이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을 전하는 ‘특종’기사가 되기를 바란 것입니다. 하는 수작이 빤합니다. 기자들은, 남들은 보지 못하게 자기 눈 앞에서만 무슨 일이 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초년 기자 시절, 회사 차를 타고 고가도로 밑을 지나면서 ‘저 버스 좀 안 떨어지나’ 그런 생각도 더러 했습니다. 나 혼자만 쓰는 기사,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보도를 바라는 욕심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민은 그런 기대와 달리 이 기사가 나간 뒤 2년이 넘은 1987년 8월 30일에 타계했습니다. 그 때 고려대 학생들은 국정자문위원을 지낸 친일문학자의 빈소를 고려대에 차릴 수 없다고 반대시위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모두 나중 이야기입니다.

그 날 신문에는 지금은 대작가가 된 김훈 문화부기자의 글 두 가지가 실려 있습니다. 하나는 문화의 중앙집중을 개탄하는 ‘기자의 눈’, 다른 하나는 ‘여름과 시(2)’라는 문화면의 시리즈입니다. 나중에 한국일보 사장을 역임한 장명수 문화부장의 퇴폐이발소에 관한 ‘여기자 칼럼’, 7월 16일 67세로 타계한 독일의 노벨상 수상작가 하인리히 뵐의 작품과 생애에 관한 임종건 기자(현 서울경제 사장)의 박스기사도 눈에 띕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당연히 내 기사가 더 소중하며, 내 기사에 더 관심이 갑니다. 23년 전의 낡은 신문에서 나는 현민을 읽는 게 아니라 젊은 시절의 나를 읽고 있습니다. 몇 번을 고쳐 읽으면서 이 부분은 이렇게 썼으면 더 나았을 텐데, 이건 좀 분별이 모자라는 표현인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1985년 7월 18일은 돌이킬 수 없는 날입니다. 그 날의 신문에, 덜 익고 분별이 모자라는 젊은 기자의 미숙함이 잘 새겨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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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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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211.XXX.XXX.129)
2008-07-21 12:37:01
에구, 참 뜨끔한 글이네요. ^^ 전 아직도 '한껀' 생각을 하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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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1 16: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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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이 아래 이용백님이 쓴 글은 윤동주의 시 <자화상>인데(맞지요?),
그걸 줄줄 외우는구료.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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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1 16: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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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백 (211.XXX.XXX.130)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골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요. 지난 날의 치기 어린 글과 행동들, 오늘 문득, 부끄러움을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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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1 16: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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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장춘 (121.XXX.XXX.35)
2008-07-19 13:18:44
잘 읽었습니다. 추억으로 쓰는 컬럼은 아니지만 23년 전의 글을 다시 쓰면 그것은 교정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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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9 2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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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선 (121.XXX.XXX.35)
2008-07-18 19:44:45
선생님 글에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 삶도 더 치장하고 부풀리며 살고 있지 않는지 반성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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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8 21:4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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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남 (211.XXX.XXX.129)
2008-07-18 14:38:44
안녕하세요. 김성남입니다. 23년 전 이야기네요.
형님 칼럼 읽는 재미로 삽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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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8 15: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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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탁 (211.XXX.XXX.129)
2008년 7월 18일 [금요일] 오후 01:40
임철순국장 그리고 Freecolumn의 한국일보 사우동료들, 좋은 글을 계속 쓰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특히 오늘 임국장의 23년전 사회면 기사 이야기를 읽으니 그 시절의 이런 저런 추억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처갑디다. 저는 한국일보의 유료독자임을 계속 고집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박승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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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8 14: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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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실 (211.XXX.XXX.129)
2008-07-18 10:29:31
그래서 역사의 기록자인 기자가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기록하느냐가 한 국가공동체의 발전에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봅니다. 많은 시사점을 주는 좋은 칼럼을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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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8 14: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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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211.XXX.XXX.129)
2008-07-18 09:40:12
임철순 선생의 칼럼은 언제 만나도...........그 말밖에 안 나옵니다.
저도 그런 글을 써보고 싶은데, 괜히 어깨에 힘부터 들어갑니다. 건강하십시요. 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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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8 14: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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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근 (211.XXX.XXX.129)
2008년 7월 18일 [금요일] 오전 10:27 김상협,김준엽.노재봉.조순.이수성.이현재.......서울,고대 총장님명단이죠. 정계에 진출하신분도 계시고,고사하신분도계시고,,문제는 曲筆이라고.생각합니다,,,玄民선생...저는 곡필이라고 생각합니다,,지조는 생명이죠,,아무생각 없이 그저원로대접받는 사회풍토는 달라져야 된다고생각합니다,,개인생각이구요,,임주필님 글을 자주읽는독자입니다,,좋은하루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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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8 14: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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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순 (211.XXX.XXX.129)
2008년 7월 18일 [금요일] 오전 09:26
젊은 날의 미숙은 아름답지요. 미숙함을 딛고 성숙으로 향하기 때문 아닐까요. 더운 여름날 시원한 냉커피 한 잔 마시며 건강한 하루 되세요. 임주필님 글 읽으며 임주필님의 개구장이 깃든 표정 가끔 떠올리곤 합니다.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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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8 14: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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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춘 (61.XXX.XXX.139)
젊은 기자 시절의 “양심고백” 감명 깊이 읽었습니다.
요즘 기자들이 읽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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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8 13: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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