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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에 잠을 설칠 때 -『즐거운 살인』
김이경 2008년 08월 05일 (화) 07:38:42
해가 저문 지 오래건만 끈끈한 열기는 가실 줄을 모릅니다. 오늘밤도 깊은 잠을 자기는 틀린 모양입니다. 예전엔 이런 여름밤이면 TV에서 ‘납량 특집극’이란 걸 했습니다. 주로 소복 입은 생머리 귀신이 여기저기 출몰하는 드라마였는데, 그게 정말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납량 특집극’이란 걸 안 하는가 봅니다. 하기야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고 드라마보다 뉴스가 더 끔찍한 세상이니 따로 무슨 ‘납량’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래도 더위를 잊는 데는 ‘무서운 이야기’만 한 게 없습니다. 겁 많은 저는, 원한에 사무친 생머리 귀신들 때문에 오랫동안 밤에 화장실도 못 가고 징징대곤 했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TV 앞을 떠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심리학자들의 분석처럼 죽음에 끌리는 인간의 본성 때문인지, 공포를 통해 자신의 안전을 확인하는 심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사람들은 스릴과 서스펜스 넘치는 범죄 이야기를 즐깁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50년간 범죄소설은 전세계적으로 100억 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스릴과 서스펜스를 즐기는 것은 개인적 취향을 넘어 하나의 사회현상이라고 할 만합니다. 옛날 사람들도 무서운 이야기를 즐기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지요. 그렇다면 왜 현대인들은 범죄소설에 매혹될까? 그 자신 범죄소설광인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은 자본주의 사회가 이 현상의 배후라고 말합니다.

『즐거운 살인』은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만델이 범죄소설의 역사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설명하는 독특한 책입니다.(만델은 추리소설, 미스터리소설, 서스펜스 소설 등을 통틀어 ‘범죄소설’이라고 부릅니다.) 만델은 범죄소설이 언제부터 왜 인기를 끌게 되었는지, 범죄소설을 소비하는 욕구는 어디서 생겼으며 어떻게 변화했는지 셜록 홈즈에 방불한 솜씨로 추적해 가는데, 그걸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만델은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더불어 그에 대한 원초적 반란이 전개되었던 19세기 중반에 범죄소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고 합니다. 홍길동 같은 전 시대의 ‘고귀한’ 악당들은 이제 사악한 범죄자로 바뀝니다. 반역자는 사라지고 도둑이나 살인자 같은 개인만이 남는 거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개인적 불행과 공포를 보면서 기분전환을 합니다.

특히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은 죽음입니다. 물론 과거에도 죽음은 인간의 관심사였지만, 달라진 게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개인간의 경쟁은 극에 달하고 경쟁의 도구인 육체가 부각됩니다. 동시에 죽음은 필연적인 귀결이라기보다 뜻밖의 사고로 받아들여지고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폭력적 죽음 -살인-이 범죄소설의 핵심으로 떠오른 건 그래서입니다.

하지만 그 죽음은 “생생하지도 고통스럽지도 두렵지도 않고, 맞서 싸울 수도 없는 죽음”입니다. 만델은 이러한 “죽음의 물신화(物神化)”야말로 범죄소설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점점 더 잔인해지는 소설과 영화 속의 죽음들을 보면 그의 말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끔찍한 죽음을 즐기는 것일까요? 인간이 원래 잔인해서일까요?

만델은 그 이유를 추리소설이 지닌 이데올로기에서 찾습니다. 어쨌든 결말은 해피엔딩, 범죄는 응징되고 정의는 실현됩니다. 그렇게 계급간의 갈등을 잊게 하고 소외된 인간을 위로하고 통합해주는 문학, 그것이 범죄소설이 지닌 힘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 아서 코난 도일, 모리스 르블랑, 에드가 월리스 같은 유명 추리작가들이 모두 완강한 보수파였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물론 그레이엄 그린 같은 독특한 경우도 있습니다. 영국 첩보기관 요원이었던 그는 처음엔 보수파였으나 나중엔 제3세계 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완전히 바뀌었지요. 범죄소설 역시 변화하여,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통합적 기능이 쇠퇴해 갑니다. ‘우리 편’이 적이 되고, 부패한 권력이 범죄자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최근의 스릴러 소설들은 선악의 경계가 사라진 세계를 잘 보여줍니다.

만델은 범죄소설의 이런 변화가 부르주아적 가치의 위기를 반영한다고 진단합니다. 마르크스주의자라서 하는 말이라기엔 그의 어조는 어둡기만 합니다.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가 없는 상태에서, 이것은 부르주아적 가치의 위기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적인 가치의 위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델은 개인적인 복수를 이상화하는 최근의 범죄소설에 대해 “불길한 징조”라고 우려합니다. 목적도 연민도 없는 “냉소적인 반란자”들이 괴로움과 증오 때문에 반란을 일으키는 사태, 그것이야말로 끔찍한 범죄, 가장 큰 공포의 도가니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대낮의 도심에서 일어나는 무차별 칼부림처럼 말이지요.

현실의 무료함을 잊기 위해 살인을 즐기는 사이, 악은 더 크고 정교해졌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정체불명의 공포를 묘사하는 최근 소설들을 보면 출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오싹한 일이지요. 차라리 생머리 귀신이 그리워지는 여름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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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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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211.XXX.XXX.8)
미국에서는 미스테리라고 합니다.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는 추리소설이라고 하는데, 독일에서는 범죄소설이라고 합니다. 각각 그 작품의 국가적 개성이 있기도 합니다.
암튼 잼있는 얘기 보내주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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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00: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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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211.XXX.XXX.8)
영국의 저명 추리작가이며 평론가인 하워드 크라프트는 '오락으로서의 살인'이라는 책과 '침대곁의 동반자 살인'이라는 책에서 살인 자체를 즐거움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살인은 범죄이지요. 하지만 운동 경기 할때 상대방을 '죽인다'고 하지요. 그러고 보면 가상의 살인이 즐거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지요.추리소설을 영국에서는 탐정소설이라고 하고 프랑스에서는 경찰소설이라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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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00: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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