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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영희의 남친?
신아연 2008년 08월 26일 (화) 07:21:23
지난 번에 했던 이름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 합니다.

아기 적에 호주로 입양되어 온, 20대 중반의 초등학교 교사인 한국 아가씨가 있습니다. 어느 날 양부모가 자신의 한국 이름이 ‘재순’ 이라고 알려주었다면서, 자기 이름이 어떤 뉘앙스를 풍기는지, 분위기는 어떤지를 제게 물어왔습니다.

뜻으로 말고 어감 상 느낌이 궁금하다니, 한마디로 촌스런 이름인지, 세련된 이름인지 구분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그 아가씨의 요구에 어떻게 부응해야 할지 난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따금 내왕하는 그 아가씨한테서뿐 아니라 제 아이들에게서도 비슷한 일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돌을 막 지나 호주에 온 두 녀석은 한국 이름자의 고상하고 자시고를 떠나 이름만 듣고는그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무런 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한국 친구들을 사귈 기회나 다른 한인들을 좀체 대할 수 없는 곳에서 한 10년을 살아온 탓에, 가족이나 주위의 몇 사람으로는 여자 이름과 남자 이름을 분류하고 구분할 충분한 자료로 삼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철수’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남자 어린이고, ‘영희’는 철수의 등교 길 단짝 여자 아이라는 걸 그 녀석들이 무슨 재간으로 알겠습니까.

이따금 철수의 친구 ‘인수’가 영희더러 “함께 학교 가자”고 할 때에도 걔가 영희의 또 다른 ‘남친’ 인지 아니면 ‘여친’인지 알 도리가 없는 거지요.

‘용필, 병헌, 성근, 범수’ 등등은 남자이름이고, ‘미화, 경숙, 정순, 순자 ’ 는 여자 이름이라고 하면 ‘어째서?’하는 표정으로 눈만 말똥말똥 굴립니다.

그래 놓고 왜 그렇냐는 겁니다. 어떻게 척 듣기만 하면 남자인 줄 알고, 여자인 줄 아는지 한국 이름의 남녀 구분법을 가르쳐 달라는 겁니다.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합니까? 이름자 속에는 남성과 여성의 고유하고 본래적인 성품과 지향하고자 하는 품성을 담고 있다는 식의 한자 뜻풀이를 해주는 것은 나중 단계의 이야기이니, 왜냐고 물으면 그냥 웃을 수밖에요.

하지만 상황은 역전되어 이번에는 제가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지난 번 글에 썼듯이 저는 소위 영어의 세련된 이름과 그렇지 않은 이름에 대한 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10대 후반인 제 아이들의 감성과 감각에 맞춘 촌스런 영어이름은 이런 것들입니다. 물론 객관적인 기준같은 건 없습니다.

여자로는 오드리, 마가렛, 엘리자베스, 로즈마리 등이고, 남자는 헨리, 엘리어트, 해리 등이 그렇답니다. 반면에 제니스, 크리스틴, 크리스티나 등은 세련된 축에 속하며, 헤나, 소피아 같은 이름은 귀염성있다고 하네요.

제가 아는 70대 할머니 중에 ‘델마’라는 분이 있어서 그건 어떠냐고 물으니, 그 이름은 그 할머니의 할머니 세대에 유행했을 법한, 자기가 듣기에는 구식이다 못해 고리타분할 정도랍니다.

역시나 저로서는 아무런 감도 오지 않는 터라 이번에는 제가 아들을 멀뚱히 바라보았습니다. 하긴 그 분은 당신의 이름을 떳떳이 말한 적이 없는 데다 그것도 줄여서 ‘델’이라고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니 아마도 촌티를 조금이라도 벗어보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난번 제 글을 읽고 제 영어이름이 궁금하다며 도저히 밝히지 못할 정도냐고 물어오신 분들이 더러 계셨습니다만, 제 이름은 헤다 (Heather) 입니다.

제가 그랬듯이 대부분의 독자들도 아무 느낌이 없을 줄 압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헤다(Heather)는 유럽의 고산지대 박토에서 피는 보라, 분홍, 흰색 빛의 자잘한 야생화로 소박하면서도 강인하며 단아한 이미지의 꽃이라고 합니다.

여자로서 꽃 이름을 가졌으니 뜻이야 무난한데, 전에도 말했듯이 저보다 한 세대 전의 사람들한테 익숙한 이름이라니 그만 덧정이 없어져 버린 겁니다.

참고로 아까 말한 70대 델마 할머니의 친구 중에도 ‘헤다’ 가 있을 정도니까요.

‘헤다’라고 부를 때마다 풀이 죽는 제게 아들 녀석은 “한 10년 정도 지나면 엄마한테도 헤다라는 이름이 잘 어울릴 거예요.”라며 위로 같지도 않은 위로로 저를 약올리곤 하니 호주와서 이름 잘못 골라잡은 죄가 질기게도 오래 갑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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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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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현 (124.XXX.XXX.20)
제 이름이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발음이라 영어이름을 만들려하는데 Sophia 를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혹시 이게 여기선 촌스런이름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제가 키도자그마하니 귀염성있는이름이라면 다행이네요^^ 전 뉴질랜드에 1년간 유학온학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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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7 06:45:49
0 0
홍순기 (211.XXX.XXX.129)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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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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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우 (211.XXX.XXX.129)
저는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많은 과거엔 한국 사람들이 명함이 영어 이름을 이니시얼로 표기하곤 했었는데 저도 CW LEE라고 소개하면서 10년 이상 그렇게 사용해 오다가 몇몇 친한 외국인들이 하도 부르기 힘들고 이상하다고 해서 Chang Woo 인 제 이름의 앞자인 Chang으로만 불러달라고 했더니 훨씬 기억도 잘하고 부르기도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 이름 Chang에서 중국사람 냄새가 날 것 같다는 생각 자꾸들고 어감도 좋지 않은 것 같고....등등불만도 많지만 10년 이상 익숙해진 그들에게 다시 불쑥 다른 이름을 제시할 수도 없고... 아무리 마음대로 지을 수 있는 영어이름이라지만 신중하게 잘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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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18: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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