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무스꾸리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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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무스꾸리를 추억하며

김창식

2008년 09월 04일 (목) 09:22:45

왕언니 멜리나 메르쿠리(Melina Mercouri, 1920년 생)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알려진 그리스 출신 아티스트들이 여럿 있지만 가장 널리,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뮤지션은 나나 무스꾸리(Nana Mouskouri)일 것입니다.

우리 나이로 75세(1934년 생)인 그녀는 은퇴한 셈이지만(지난 1월 월드 투어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고별 공연을 가졌음), 3억 5천만 장에 달하는 음반을 판매한 경이적인 기록의 소유자입니다. 그녀에 비견되는 여성 아티스트로는 그나마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 1942년 생) 정도를 거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조 디바인 스트라이샌드는 배우, 음반 프러듀서, 공연기획자로도 알려진 전방위(全方位) 연예인인 데다 정치. 사회적 색채도 강합니다. 무스꾸리와의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노래실력, 지명도, 음반 판매량 등에서는 견줄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어떤 가수도 레파토리의 다양성(팝, 민요, 가스펠, 리드, 샹송, 칸쏘네, 오페라 아리아 등을 망라)과 호소력, 목소리의 청아함에서 그녀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나나 무스꾸리는 자신의 히트곡도 매우 많지만(대충 꼽아 보아도 ‘하얀 손수건’, ‘아테네의 흰 장미’, ‘사랑의 기쁨’, ‘오버 앤 오버’, ‘온리 러브’, ‘자유의 송가’ 등) 다른 사람의 노래도 그녀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해석, 재창조하여 새롭고 깊이있는 감동을 선사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를테면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의 명곡 ‘Why Worry'를 들어보면, 이들의 노래는 특유의 읊조리는 듯한 창법으로 객관성을 확보하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삶을 관조하는 듯한 철학적 정조를 자아내는데 비하여, 그녀가 부르면 진정성을 가지고 아픔에 동참함이 느껴지며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치유하여 새로운 의지와 희망을 갖게 합니다.

나나 무스꾸리는 그리스어를 비롯한 7개 국어에 능통하였으며, 프랑스와 독일에서 특히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초기 대형 히트곡은 그녀를 발굴하여 키운 유명한 작곡가인 마노스 하지다키스(Manos Hadjidakis, 1925년 생)의 작품인 'Over and Over'입니다. 그렇지만 1960년 독일에서의 데뷔는 더욱 주목할 만합니다.

독일로 진출하여 ‘하얀 손수건’, ‘아테네의 흰 장미’ 등이 수록된 앨범을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유럽 전역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당시 놀랍게도 12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녀가 부른 독일어 노래를 들어보면-예컨대 ‘보리수(Der Lindenbaum)', ‘세레나데(Serenade)’, ‘일곱 송이 검은 장미(Sieben Schwarze Rosen)’ 등-그 매혹적인 발음하며, 독일어 또는 독일 노래가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것인지 감탄이 절로 납니다.

무엇보다 나나 무스꾸리 노래의 본령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기품있는 투명한 목소리와 가슴에 스며드는 짙은 호소력에 있다 할 것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를 흔히 “천상의 목소리”라고 하는데,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녀는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위무(慰撫)하고 높은 곳으로 인도합니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느껴집니다. 영혼이 눈을 뜨는 것입니다.

한편 청량감 있는 목소리의 소유자로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또 다른 가수가 있으니, 그는 바로 일세를 풍미한 반전과 평화의 포크 가수 조앤 바에즈(Joan Baez, 1941년 생)입니다. 두 사람을 비교하면, 바에즈의 목소리는 무스꾸리의 목소리보다 강하고(스핀토), 애잔하면서도 어느 시에 나오는 표현인 ‘겨울 하늘에 걸린 강철로 만든 무지개’ 같은 강단이 있습니다. 반면 무스꾸리의 목소리는 산들바람과 같은 부드러움(릴리꼬), 봄날의 아지랑이와 같은 아련함, 따뜻함이 있습니다. 정녕 그녀는 봄의 정령(精靈)인 것인가.

조앤 바에즈와 나나 무스꾸리는 놀랍게도 한 무대에 서서 듀엣으로 노래를 부른 적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면 이연실(참, 그녀의 목소리는 바에즈에 가깝습니다), 그보다는 박인희가 생각납니다. 조곤조곤한 박인희와는 목소리의 질감과 창법이 사뭇 다르지만 마음에 와 닿는 소리의 울림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외모도 닮은 듯합니다. 새삼 박인희도 그립습니다.

미국의 원로 가수인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와의 우정도 아름답습니다. 일곱 살 위인 그의 초청으로 그녀는 1964년 카네기홀에 데뷔하는 등, 그와 함께 1년간 미국 전역을 순회공연하였고, 록에 익숙한 미국사람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미국 공연은 그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으며, 이로써 그녀는 ‘뮤즈(Muse)'의 반열(班列)에 오르게 됩니다. 벨라폰테와는 같은 무대에 섰음은 물론 여러 곡을 듀엣으로 함께 취입하기도 했습니다. 각각의 노래로도 유명한 ’Try To Remember'를 들어 보면 두 사람의 우정이 오버랩되어 훈훈한 감정이 입니다. 참고로 미국에서의 그녀의 첫 앨범은 1962년 저명한 음반 프러듀서인 퀸시 존스(Quincy Jones, 1933년 생)의 도움을 얻어 발매된 바 있습니다.

나나 무스꾸리는 긴 생머리와 검은 뿔테 안경, 흰 드레스, 수수한 외모, 스타연하지 않는 진정성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960년대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엔 소공녀에 나오는‘민친 여사’인 줄 알았습니다. 그때는 그녀가 이토록 오랫동안 내 마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줄 진정 몰랐었습니다.

김창식님은 독어독문학을 전공, 대학시절 교내 단편문학상을 수상했고 독일어로 쓴 소설, 논문집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항공회사 프랑크푸르트 지점장을 역임했으며 지금도 문학도의 꿈을 놓지 않고 수필, 칼럼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음악, 영화, 문학 등 다방면에 걸친 관심과 일상생활에서 얻는 철학적 주제에 대한 남다른 관점을 감성적인 문체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상협 (121.XXX.XXX.15)

입니다. 제가 아는 김창식님은 언어에 천부적인 것으로 알고 지내왔는데
이렇게 칼럼을 쓰시는 줄은 처음 알았읍니다.
평소에 몰랐던 음학이나 문학에 대해 칼럼을 써주셔서 감사하구요
앞으로도 많은 독자들이 즐길수 있도록 많은 칼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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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2 12: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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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 (210.XXX.XXX.1)

아름다운 글, 따뜻한 마음, 품위있는 해설, 해박한 식견....
이런 분들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오늘 아름다운 보석을 하나 주었습니다.
그리고, 안주머니 깊숙히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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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6 10: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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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do47 (59.XXX.XXX.163)

자유칼럼에 새로운 장르[음악,문화]가 탄생할것같은 예감이 드네요.
이 명문장이 나를 자극하여 당장 Nana 를찾게 하네요. 음악에 대한 소양도 풍부하고,글솜씨도 정말 훌륭합니다.
앞으로 자주 뵐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과 음악을 함께 올릴수 있으면 훨씬 감동이 더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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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3 00: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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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203.XXX.XXX.200)

나나 무스꾸리의 음악을 가끔 들었는데, 이렇게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Folk 가수 연재를 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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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0 13: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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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222.XXX.XXX.86)

여러 댓글 고맙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무스꾸리는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우리를 높은 곳으로 인도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원래 천사의 직분인데, 그렇다면 그녀는 천사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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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5 11:3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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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121.XXX.XXX.3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녀의 최근 공연을 동영상으로 보고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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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4 20: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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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카 (211.XXX.XXX.86)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달콤한 향이 묻어나는 듯합니다. 특히 '사랑의 기쁨'은 그녀 외의 다른 가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더 이상 호감을 주는 노래가 없었던 것일까요.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 위해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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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4 15: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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