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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뭐 아무나 쓰는 줄 아세요?
신아연 2008년 09월 23일 (화) 00:30:02
한국의 잘 알려진 어느 소설가는 매일 아침 정장을 차려입고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출근’을 한다고 합니다. 집에서 작업을 하다보니 자칫 절도있는 생활 감각을 잃을까 염려되어 마치 사무실에 나가듯이 아침마다 옷을 갖추어 입고 옆방으로 글을 쓰러 간다는 것입니다.

‘변변한 옷이 없어서’ 그렇게까지는 못하지만 저도 매일 아침 아홉 시면 컴퓨터 앞으로 ‘출근’을 해서 저녁 다섯 시 무렵까지 이런저런 원고를 꾸립니다.

어떤 글이 되었건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화면의 커서는 입력을 재촉하며 연신 깜빡대지만 막막하게 펼쳐진 백지를 메우기란 매번 여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여북하면 내로라 하는 소설가조차도 집안에서 정장까지 하고 날마다 결연한 자세를 다잡겠습니까.

“글쓰는 사람이 참 부러워요. 그래서 나도 해 보려고 하는데 시작을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안 나는 거 있죠.”

제가 소위 글쟁이라는 것을 알고 주위에서 이렇게 말을 붙여오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정말 제게 글쓰는 법에 대해 묻는다기보다 요전 번 글 잘 읽었다는 치렛말을 이런 식으로 해서 저를 기분좋게 해주려는 의도이지만, 개중에는 정말로 한 수 배우고 싶다며 진지하게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 노작가는 한 때 주위에서 그렇게 물어올 때마다 “쓰지 마세요, 아예 시작도 마세요” 라고 말렸다는데, 그런 말이 설마 “흥, 니까짓 게 무슨 글?, 글쓰는 일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글은 뭐 아무나 쓰는 줄 알아?” 하는 식의 고약한 맘보에서 나왔을 리는 없고, 한마디로 그 ‘형극의 길’에 애초 걸음을 떼놓지도 말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떤 사람은 피를 짜내듯 한다며 자못 엄살을 떨기도 하고, 혹자는 문학 하는 일이 너무 대단해서 목숨을 걸었다고까지 하니, 글쟁이들의 과장하는 습성을 감안하더라도 글쓰는 일이 쉽지 않은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피를 쏟는 고통으로 ‘문학 씩이나’ 하는 것도 아닌 제가 ‘쓰지 마시라’며 대가의 흉내를 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보다는 저를 그런 대가의 반열에 놓고 글쓰기에 대해 한마디 해보라고 했을 리는 만무할 테고 “나도 너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만만함으로 물어오는 것이니, 저 또한 “그냥 쓰세요, 저도 그냥 씁니다.”라고 대꾸할 밖에요.

‘내 이야기는 소설로 몇 권, 아니면 아예 시리즈 대하소설’ 이라는 식의 흔한 신세한탄도 실은 풀어내고 싶은 내면의 욕구가 통로를 찾지 못해 내지르는 아우성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지금껏 생의 마디마디를 시난고난, 굽이굽이 넘어 온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과, 앞만 보며 아등바등 달려오다 문득 고개를 든 순간, 형언할 수 없이 밀려드는 허전함과 허무함에 영화 속 주인공의 절규처럼 “나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며 속울음을 삼키는 이는 왜 없겠습니까.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일상이 순조롭고 일생이 그럭저럭 평탄한 사람은 내면의 아픈 소용돌이를 겪을 일이 적기 때문에 풀어낼 응어리나 한도 그만큼 덜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억울하고 답답하고 내 맘대로 되는 일이 도무지 없을 때, 글이라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숨쉴 통로를 마련하는 방편이 되는 것 같습니다.

현실의 내 삶은 남루하고 초라하고 감추고 싶은 것들 투성이지만, 글을 통해 가만가만 풀어내노라면 그런대로 견딜 만 해지면서 다시금 스스로를 다독여 각다분한 현실을 감내하게 하는 내적 힘을 얻습니다.

힘들게 사는 것이 자랑거리가 아님에도 글에서는 그게 힘일 때가 많습니다. 등단 수필가 한 분이 육십 평생을 아무런 고생없이 살아서 도무지 글로 쓸 것이 없다고 진지하게 고백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의 겸손은 차치하고라도 많은 부분 수긍이 가는 말입니다.

앞으로도 혹 글을 쓰고 싶다며 누군가가 제게 물어온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 글은 아무나 쓰는 줄 아세요?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답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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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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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우 (211.XXX.XXX.129)
호주이민생활상담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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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1 18: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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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 (211.XXX.XXX.57)
자유칼럼이 종교 모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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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30 16: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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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저를 집사라 부르셨으니 저도 한인회장님 대신 목사님이라 칭합니다.^^ 이곳에 댓글로 안부를 남겨주셔서 깜짝 놀라고 반가왔습니다. 곧 또 큰 행사가 진행되는군요. 제가 있었으면 행사 보도라도 할 수 있는데.. 아무 도움이 되질 못하네요. 큰 호응속에 진행되도록 기도하겠습니다.늘 건강부터 챙기시는 것 잊지 마시구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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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8 20: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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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권 (211.XXX.XXX.129)
안녕하셨죠? 보내주신 멜을 잘 받았습니다.지금은 오는 10월4일(토)에 있을 한인날 행사로 바쁘답니다.항상 건강하세요.아무 도움도 못되드려서 송구스럽기만 했습니다. 안녕히. 주님의 축복을.... 서정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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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8 18:5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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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황 경춘 선생님, 이 창우 선생님, 어떤 소설가는 그런답니다. 안좋은 일 당하면 '그래, 소설로 쓰면 되지, 그러면 괜찮아 질거야'라고요.어떤 형태의 글이건,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니 자가 치유의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상우 선생님, 저와는 정말 여러 모양의 인연인 것 같습니다. 따님이 아마 제 후배겠지요?^^ 뉴질랜드 배경의 소설 내용이 궁금합니다. 호주환경과 비슷할 것 같아서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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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4 20: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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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211.XXX.XXX.129)
신아연씨. 현실감 넘치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는 소설가겸 언론인으로 통하는 이상우라고 합니다. 최근에 뉴질랜드를 무대로 쓴 제 소설에 심심한 천국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어쩜 같은 생각을 했군요. 저의 딸년이 이화여대 철학과를 나와 글도 좀 썼구요, 저도 대구서 초중고 대학을 아나왔거든요. 여러가지로 인연도 있는것 같군요. ㅋㅋㅋ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보내주셔요. 이상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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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4 1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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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우 (211.XXX.XXX.129)
그러고 보니 내가 뭐라고 몇 줄이라도 글을 쓸 땐 뭔가 좋지 않았거나 지나차게 좋았거나 그럴 때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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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4 13: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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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춘 (61.XXX.XXX.13)
지난 봄 우연한 기회에 85년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남에게 읽힐 글을 이 자유칼럼에 쓴 것은 역시 나의 인생이 순탄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아리켜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I agre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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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3 11: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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