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미식해_(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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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식해

방석순

2008년 10월 06일 (월) 02:04:51

오늘 저녁 반찬은 가자미식해입니다. 뜻하지 않은 행운입니다. 저녁 밥상에 앉아 이렇게 고향의 맛을 만끽하게 되었으니.

하늘이 처음 열린 날이라 해서 남들 다 쉬는 개천절이었습니다. 미처 손을 못 댄 일거리가 걱정되어 사무실에 나와 앉았는데 작은 형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종로통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실향민 잔치에 참석했더니 가자미식해를 팔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별일 없으면 함께 가자던 행사이던 것을 그만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모처럼 만나는 고향 사람들과 옛날 얘기 나누다가 고향의 맛을 대표하는 먹을거리니 너도나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던가 봅니다. 작은 형님은 귀가 길에 굳이 차를 돌려 큼직한 가자미식해 한 통을 안겨주고 가셨습니다.

잘 익힌 가자미식해는 씹으면 말캉하면서도 이빨 사이에서 되튕겨나올 듯 딴딴한 가자미의 육질로 독특한 맛을 냅니다. 거기에 알맞게 친 소금기와 고추, 마늘, 생강 따위 양념의 맵싸한 기운을 머금은 무채와 좁쌀이 혀끝을 알싸하게 자극합니다. 생선으로 만든 음식이건만 푸슬푸슬 물기를 빼서 비린내도 거의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집에선 가자미식해를 밥도둑으로 쳤습니다. 식해 몇 점에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도 슬금슬금 밥통에 다가가서 기웃거리기 때문입니다. 식해가 있는 날 다른 반찬은 상에 올리나 마나입니다. 어차피 수저 가는 길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가자미식해를 보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맛이 제대로 든 식해면 더욱 그렇습니다. 형제들은 가자미식해를 어머니의 특허품쯤으로 알았습니다. 재료서부터 각별히 신경쓰신 데다가 그 빼어난 솜씨로 담가낸 음식이니 그 맛이 어딜 가겠습니까.

멋모르는 어느 새댁이 어머니가 담가낸 식해 맛을 보고선 곧바로 쇠고기와 생선알, 무를 사들고 와 식해 담그는 법을 가르쳐 달라더라며 생전에 몇 번이고 자랑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사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음식이지만 식해(食醢)와 식혜(食醯)는 철자부터 다르다는 걸 알게 된 지도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예전엔 남쪽 식혜는 단술이고, 북쪽 식혜는 김치나 젓갈 같은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늘 단골 어물전을 찾아 배 부위가 노랗고 자그마한 참가자미를 구해 식해를 담그곤 하셨습니다. 갈수록 식해 가자미 구하기가 어렵다고 아쉬워하며 대신 명태 살로 식해를 담글 때도 있었습니다. 명태식해도 그 나름대로 먹을 만은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가자미로 만든 요리에 남다른 정성을 기울이셨던 것 같습니다. 남들 좋다 하는 쇠고기 국보다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큼직한 가자미의 배를 따서 통째로 미역과 함께 끓여 맑은 국물의 가자미국을 상에 올리곤 하셨습니다. 가자미를 노릇노릇 구워서 밥상에 올릴 때 어머니의 얼굴이 유난히 환해지던 모습도 생각납니다.

나이 마흔둘에 남편의 행방조차 모른 채 핏덩어리까지 다섯 자식을 안고 업고 고향을 떠나온 어머니. 중학교를 다니다 만 아들 하나를 기둥삼아 평생 어린 것들 먹이고 입히느라 고생하신 어머니. ‘홀어미 자식’이라는 욕을 먹어선 못쓴다며 호랑이처럼 무섭게 구시던 어머니.

어느 날 한밤중 졸린 눈으로 뒷간 가다 문득 홀로 울고 계신 어머니를 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도 당당하고 엄하기만 하던 어머니가. 어린 마음에 감당 못할 큰 비밀을 알게 된 것처럼 그날 밤엔 숨쉬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벼르기만 하다가 한 번 제대로 모시지도 못한 죄스러움이 가자미식해를 보면 되살아납니다.
그래서 가자미식해는 기쁨이요 그리움이요 슬픔이요 회한이기도 합니다.

생전에 어머니에겐 가자미 요리가 어떤 특별한 뜻을 가진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향에서 늘 즐기던 향토음식이었으니 향수병을 씻어내는 명약 구실을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한 시도 잊어본 적 없는 고향을 그렇게 음식을 통해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기승을 부리던 늦더위가 자취를 감추더니 벌써 가을바람이 소슬합니다. 얼마 안 있어 길거리엔 낙엽이 떨어져 쌓이겠지요. 도시 풍경은 금세 을씨년스러워질 겁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움츠러드는 게 도시의 가을입니다. 이곳저곳에서 마음을 다잡지 못해 세상을 버리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이웃의 온기가 절실해지는 계절입니다. 고단한 생활을 이겨내고 지친 마음과 육신을 추스르는 데 그렇게 많은 물질이 필요한 것만은 아닙니다. 따뜻한 인사 한 마디, 온정이 담긴 음식 한 그릇 나누는 성의가 필요할 뿐입니다. 형님, 가자미식해 잘 먹겠습니다.

빈수레 (123.XXX.XXX.125)

양양에 가면 막국수 잘하기로 소문난 단양식당이라고 있습니다. 어린시절 아버지가 사주시는 막국수와 딸려 나온 가자미 식해를 먹으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가자미 식해는 아버지의 무덤덤한 정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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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7 08: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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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24.XXX.XXX.49)

가자미 식해를 잘 담그시는 분이 많지 않을 걸로 압니다. 그런 훌륭한 솜씨를 누군가가 전수 받아야 하지 않았을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중의 하나이랍니다. 특히 이북식으로 담그는 김치 또한 맛이 일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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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6 15: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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