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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날 -『번역은 반역인가?』
김이경 2008년 10월 14일 (화) 06:48:41
초등학교 6학년 때 딱 한 번 웅변대회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는 1반부터 6반까지는 남학생 반, 7반부터 12반은 여학생 반이었는데, 웅변대회 예선전은 1반에서 열렸습니다. 일주일 동안 원고를 달달 외며 연습을 했건만, 막상 교단에 서서 일흔 명이 넘는 시커먼 사내애들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더군요. 얼굴은 새빨개지고 목소리는 떨리고, 결국 한 문장도 못 끝낸 채 내려오는데 “와~” 하는 웃음소리가 꿈속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때의 충격 때문인지 지금도 좀 공식적인 자리에서 얘기를 할라치면 얼굴부터 빨개집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안면홍조증은 불가항력이라, 신경 쓰는 순간부터 더 심해집니다. 그러니 대처법이라면 ‘내가 순수해서 그래’ 하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게 최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스운 짓 같지만, 『번역은 반역인가』라는 책을 읽으니 부끄러워해야 할 때 부끄러워하는 것도 능력이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우리 번역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라는 부제처럼 이 책에는 저자 박상익의 개인적 체험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체험들 중에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지식인들이 얼굴 붉힐 이야기가 많습니다.

동화 『파랑새』의 주인공 이름 Tyltyl을 ‘틸틸’이 아닌 왜색 짙은 ‘찌루찌루’(최근엔 치르치르)로 옮긴 것, 미국 박사 출신의 교수 두 명이 함께 번역한 책에서 헤겔의 『법철학』을 『권리의 철학』으로,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을 『저미날』로 옮긴 것은 애교에 속합니다. 정말 심각한 것은 『표준국어대사전』의 오류가 3천여 개에 이르며, “영어공용화 없이 한국의 IT․서비스산업은 국제시장에 들어갈 수 없을 것”(225쪽)이란 주장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다른 나라의 경험을 보면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저자는 사전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영국의 『옥스퍼드영어사전』을 예로 듭니다. 1858년 사전 편찬을 계획해서 1928년 완성할 때까지 무려 70년 동안 8백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만든 사전. 그것은 단순한 사전이 아니라 19세기 영국 문화의 총집합이며, 조국과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의 상징입니다.

그러고 보면, 명문대 의대 학장이 아들의 한국적을 버린 뒤 “국가가 발전할 거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다면 국적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82쪽)이라고 공언하는 나라에는, 3천여 개의 오류가 있는 사전이 딱 어울리는 조합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의 첫 머리엔 일본 번역의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가 실려 있습니다. 한 목회자가 이스라엘로 유학을 갔는데, 같이 공부하는 일본 친구가 전부 일본어로 된 책들을 보더랍니다.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1%도 안 되는 나라에서 히브리어 성서고고학 책까지 몽땅 번역을 해놓았더라는 거지요.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전후하여 정부에 번역국을 설치하고 수천 종의 서양 고전들을 정책적으로 지원 번역했습니다. 일본어가 한국어보다 더 뛰어나서 그들이 영어공용화 대신 번역의 길을 택한 걸까요? 일본의 대표 지성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는 일본이 근대화를 이루는 데 번역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단언합니다.

번역은 다른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해석하는 과정이며, 타자를 수용하고 자기화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번역은 단순한 옮김질이 아니라 ‘만남과 수용’ ‘갈등과 창조’가 교차하는 현장입니다. 다른 언어를 내 언어로 사용하자는 사고에는 이런 만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오로지 편의성만을 추구하는 기계주의가 있을 뿐입니다.

저자는, 그런 기계주의가 낳은 또 하나의 부끄러운 현실로 교수가 학생들에게 번역 하청을 맡기는 한국 학계의 이상한 관행을 지적합니다. 번역만이 아니지요. 저술도 이런 식의 하청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니 역서든 저서든 질을 장담하기 어려움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따져서 성공한 역사는 없습니다. 부끄러운 건 명명백백한 이 진실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의 말과 글을, 우리의 문화를 오역하고 모욕하는 그들에게 안면홍조증을 선물하고 싶은 시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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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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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성 (121.XXX.XXX.153)
"번역의 무게"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정보화라는 미명하에 넘쳐나는 잘못된 번역들을 보며, 그 잣대를 말할수있는 자신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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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1 10:14:03
0 0
신 아연 (123.XXX.XXX.28)
"번역은 다른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해석하는 과정이며, 타자를 수용하고 자기화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번역은 단순한 옮김질이 아니라 ‘만남과 수용’ ‘갈등과 창조’가 교차하는 현장입니다. 다른 언어를 내 언어로 사용하자는 사고에는 이런 만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오로지 편의성만을 추구하는 기계주의가 있을 뿐입니다."- 정말 잘 표현하셨습니다.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나이들면서 얼굴이 '제대로' 빨개져 본지가 언제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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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15:20:39
0 0
김이경 (210.XXX.XXX.253)
멀리서 늘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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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12:37:4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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