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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의 제주 포구-조천관포(1)
2008년 10월24일 (금) / 서재철
 
 
사면이 바다인 제주에는 해안가 마을마다 포구가 있습니다.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축조된 제주포구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으로 제주섬 사람들이 바다와 함께 살아온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제주도에는 두 종류의 밭이 있다고 합니다. 그 하나는 보리 갈고 고구마 심는 ‘땅밭’이고, 다른 하나는 미역 캐고 전복 따는 ‘바다밭’입니다.

‘땅밭’으로 나가려면 ‘올레’를 빠져 나가 마을길을 건너고 ‘밧도’라는, 밭 안으로 드나들게 쌓은 담을 허물어 그 목으로 해서 밭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바다밭’으로 나가는 경우는 ‘올레’를 지나 마을길을 건너 ‘바당도’라는 바다로 드나드는 목을 통해서 나아갑니다. 이 ‘바다로 드나드는 목’이 바로 ‘포구’로 제주에서는 ‘개’라고 부르죠. 곧 포구는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를 말합니다.

제주 섬사람들은 포구를 만들기 앞서 지형지물, 곧 커다란 바위를 이용하여 거친 파도로부터 배들을 보호하기 위한 지혜를 생각했고, 식수를 마련하기 위한 용천수를 찾기도 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갖춰지면 마을을 세웠고, 자연스럽게 신앙의 터전인 당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도내 대부분 포구에는 용천수가 솟아나는 ‘바닷속 우물’과 거친 파도로부터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는 ‘개당’이 마련되어 있답니다.

이렇듯 바다와 함께 살아온 섬사람들이 자연과 함께하며 살아온 삶의 지혜가 어려 있는, 그러나 지금은 사라져 버린 ‘기억속의 제주 포구’를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소개 하려 고 합니다.

조천포구

이 포구는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제주섬의 첫 관포(官浦)랍니다. 옛날 비행기 길이 없었을 때 관리들이 육지를 드나들 때마다 이 포구를 이용하여 조천마을을 일컬어 ‘조천진’(朝天鎭), ‘조천관(朝天館)이라 불렀습니다.

조선시대에 이 포구를 드나들었던 관리들이 북쪽에 있는 임금을 그린다는 뜻에서 세운 정자인 ’연북정‘을 가운데 두고 ’무근성창‘과 ’새성창’이 축조됐습니다. 이 조천포구는 주변의 크고 작은 여(바위)를 이용하여 포구가 축조되어 자연지형을 지혜롭게 이용한 포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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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
(211.XXX.XXX.86)
2008-10-25 15:54:10
정말 신기하군요
제주의 풍광이 육지와 많이 다르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사진, 설명 정말 너무 신기하고 흥미롭습니다. 좋은 글 사진 감사합니다. 많이 보고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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