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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 읽는 나, 왜일까?
신아연 2008년 11월 04일 (화) 01:04:38
“명색이 글을 쓴다는 사람이 책 한 권 제대로 읽는 걸 못 본 것 같아요. 무슨 글쟁이가 그래요?”

어느 날 아들 녀석이 농반진반 제게 툭 하니 던진 말입니다. 녀석이 보긴 제대로 본 것이니 부끄럽게 여겨야 마땅하거늘 체면을 살리자고 반사적으로 말을 되받습니다.

“쓰기도 바쁜데 읽을 새가 어딨냐?”

그랬더니 아들애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좋은 글을 쓰려면 당연히 책을 많이 읽어야지요” 라며 퉁을 줍니다.

“누군 그걸 모르냐? 너 밥해 먹이느라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제가 생각해도 옹색한 변명을 하고는 멋쩍게 웃었습니다.

구둣방 아들이 맨발 벗고 다니고, 대장장이 집에 칼이 없다고 하지요. 음식점 주방장이 자기 집 부엌에 들어가는 것 봤습니까. 어떤 신문기자는 집에 가면 아홉시 뉴스도 안 본답니다. 오죽 질리면 그렇게 될까요.

책 안 읽는 변명도 이쯤 되면 가련하게 여겨 주셨으면 합니다. 제 아들 말마따나 실은 저는 거의 책을 읽지 않고 신문도 잘 안 읽습니다. 제 글이 실리는 신문이나 잡지도 제 글만 확인하면 그냥 던져 버리게 됩니다. 매일 이런저런 글을 꾸리느라 활자에 신물이 나고 덧정이 없어진 때문입니다. 항상 머릿속에 말과 글이 개구리처럼 와글와글 대고 꿈에서조차 원고를 쓸 때가 있습니다.

실상은 아들의 말이 아니라도 책을 안 읽는 게 ‘찔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데도 글을 쓰는 사람이니 응당 책을 많이 읽을 거라고 생각하는 주위분들에게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는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하긴 저는 뭐 문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신변잡기를 끄적이는 수준이니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것이 방구석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 글감을 얻기에는 유리합니다.

책도 책 나름이지만, 제 연배가 세상의 경이와 신비, 환상과 낭만을 더듬으며 몽환적 세계에 빠져들기 위해 책을 집어들 때가 아니듯이, 이 나이에 독서를 통해 삶의 고통과 질곡, 모순된 현실과 왜곡된 과거사에 순수한 혈기로 반응하고, 순진성을 회복하는 계기를 만나는 것도 더 이상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새삼 삶의 푯대와 스승을 발견하기에는 저의 정신세계가 너무 혼탁하고, 변명과 타성, 합리화로 더께진 삶의 각질이 무감각하리만치 두껍습니다. 내면의 투명성을 일깨우는 그런 류의 책을 접하면 공연한 자격지심에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 이유를 끌어다 댈 방어 태세부터 취하게 되니, 이런 태도로야 어디 제대로 ‘마음의 양식’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명상서적들은 말합니다. 세상에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은 단 한 권이라고. 그것은 바로 ‘마음’이라는 책이랍니다. 그런가 하면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스승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스승은 ‘삶’이며 그리고 우리들 각자는 그 삶의 표현이라고 하지요.

팩트나 정보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면 결국 각자의 마음에서, 자기 속에서 전 우주적 체험과 삶의 의미, 지혜 및 통찰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해석일 것입니다.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것은 이미 이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책, 앞으로 나올 또 다른 책들을 이미 전부 읽은 것과 같다는 깨달음일 테지요.

그러니까 저는 가치있는 단 한 권의 책, 오직 하나의 스승인 나의 마음과 나의 삶의 표현을 위한 한 방편인 ‘글쓰기’를 하느라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변명을 어떻게든 하고 싶은 겁니다. 변명을 지나 궤변으로 들리신다고요?

하지만 어쩝니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는 싯귀도 있듯이, 글을 쓰는 것이 글을 읽는 것보다 행복한 것을요.

저뿐 아니라 요즘에는 글쓰기에서 잔잔한 행복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내 책 내기’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글쓰는 법을 가르치는 곳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모두들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책 ‘마음’을 저마다 가슴에 품고, 지나온 ‘삶’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가을,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글을 한 번 써보는 것은 어떨까요. 책 읽는 거 안 좋아하시는 분들은 저처럼 쓰느라 바빠 정작 제대로 읽지는 못한다는 변명거리를 만들 요량으로라도 말입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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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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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임 (203.XXX.XXX.136)
아연님 안녕하시죠? 이제 서울은 겨울의 길목으로 들어서 제법 쌀쌀해졌답니다. 맞아요.우리 사진기자도 아이가 셋인데 세명다 돌사진 하나 자기가 찍어준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ㅋㅋ 제가 아는 요리연구가도 자기 아이들 소풍갈 때 김밥 한번 안싸줬다고 하고요.책안읽는 핑계 충분히 이해되어요.
그래도 우리같은 사람은 글쓰기가 안되니 남의 책이라도 열심히 읽으며
간접경험도 하고 내마음도 들여다보고 삶도 되돌아보며 내미래를 꿈꾸기도 하지요. 유난히 책욕심이 많아 집안 곳곳에 읽다만 책들이 눈에 띈답니다.
화장실도 침실도, 거실에도, 가방에도~~~ㅋㅋ 알고싶은게 많아서인지 이런저런 책들로 그 갈증들을 풀어가지요.
아연님 호주는 더운 여름이 다가오겠지만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서울서 아연님의 팬 드림빌더 김명임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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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1 11: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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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철 (211.XXX.XXX.129)
항상 신선한 충격을 주어 기쁘기 그지 없네요. 건강과 행복한 글 쓰기가 계속되시고 언젠가 꼭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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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0 07:2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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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완 (123.XXX.XXX.28)
신 선생님은 그 은사를 타고 났기 때문에 좋은 글을 쓰시는겁니다. 평범한사람이 모찰트나 베토벤의 음악을 작곡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글 쓰기에도 바쁜데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는 말씀은 변명이 아니고 진리입니다. 계속해 좋은 글많이 쓰세요. 특히 글 못 쓰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자서전 쓰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글 못 쓰는 사람들이지요.이종완 연변 과기대 영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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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8 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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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무섭 (123.XXX.XXX.28)
책에 대한 단상을 잘 읽었습니다.

다시 찬찬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이 글을 드립니다.

의미가 깊은 내용이라 섣불리 저 의견을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는 생각은 합니다.



선생님 말씀 처럼 선생님의마음을 저가 글로 읽고 싶을 때가 있지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읽는 사람이 있고 또 쓰는 사람이 있고 해서 세상은 균형을 이루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좌우지간 선생님이 하시고저 하는 말씀은

글쓰기도 글 읽기도 중요하지만 마음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이것을 강조하신 것이죠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이 아침 깨자마자 좋은 글을 읽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곽무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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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8 20: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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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 de guerre (210.XXX.XXX.253)
동네 여편네들도 아내로서 엄마로서 한 가닥 하는 소중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특히 남에게 글을 읽히는 사람은 그만큼 책임질 수 있는 글을 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전직 기자라는 분으로서 놀라운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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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7 16: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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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211.XXX.XXX.45)
글 쓰는 사람이 책 읽지 않음을 자랑할 수 있으려면
글의 수준이 매우 높아야하겠지요.
말 장난, 글 장난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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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6 09: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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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선 (211.XXX.XXX.129)
나의 마음을 한권의 가치있는 책으로 표현하심이 제게는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글을 쓰는 사람이 있기에 글을 읽는 사람이 있음은 이 또한 적절한 조화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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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5 09: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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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 (211.XXX.XXX.129)
저와 성향이 비슷하지요? 대학 졸업후 책을 읽은 기억이 없습니다. 신문은 광고까지 열심히 보다가 작년 11월 이후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쓰고 화초 돌보고 운동하느라 신문마져도 멀리하고 말았습니다.책을 가까이 해야지 하며 몇권의 책을 사기는 하였습니다만 언제 읽어 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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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4 16: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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