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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신아연 2008년 12월 02일 (화) 00:03:29
사랑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며칠 전 지방에 다니러 간 사이에 네가 일자리를 잃었다는 소식을 할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면서 전해 들었다. 하루 전만 해도 일이 재밌다고, 하지만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자리가 위태롭다고 자못 긴장하는 모습에서 엄마는 오히려 대견함을 느꼈는데 일이 어떻게 잘못되어 결국 밀려나게 되었는지 가슴이 아프구나.

네 말마따나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리 되었는지, 아니면 무슨 실수를 했는지…
새로 산 양복 바지를 유니폼 대용으로 입었길래 옷 버린다며 기겁을 했건만 이젠 그럴 일도 없게 되었구나.

오래 전 1964년에 한국의 김 승옥 이라는 작가가 쓴 <차나 한잔> 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엄마가 전에 실직을 했을 때 그 글을 통해 막연하나마 위안을 얻고 그 이야기를 기둥 줄거리 삼아 글 한편을 써서 상실의 감정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처량하고 막막하기 짝이 없던 그 때의 엄마로서는 비록 지어낸 이야기지만 주인공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네가 잡(Job)을 잃었다고 하니 그 소설을 다시 집어들게 되는구나.

호주에서 자란 너의 현실과는 사뭇 다르고 전혀 동떨어진 상황설정이지만 잠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으련? 일자리를 잃은 너에게 엄마의 마음을 대신하여 주는 위로라고 생각해도 괜찮겠고.

=================================================================================== 신문 만화 연재로 단칸방에서 아내와 겨우 먹고 사는 주인공이 연유도 모른 채 자신의 만화가 하루, 이틀 지면에서 빠지게 되자, 직장을 잃게 될까봐 스트레스성 설사병까지 걸려가며 불안한 마음으로 며칠을 전전긍긍 하게 된다.

실의에 빠져 폭음을 한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더 일찍 눈을 뜬 주인공은 그날도 조간신문에 자신의 만화가 실리지 않은 것을 확인하지만 별 뾰족한 도리없이 평소대로 당일치 만화를 그려 신문사로 가져간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불안했던 예감이 적중하여 문화부장으로부터 더 이상 만화를 그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문화부장은 주인공에게 '차나 한잔 하러 가자'고 말하는 것으로 '해직 통보'의 운을 에두르며 껄끄러운 상황을 무마하려 하지만 주인공에게 그 말은 곧 '올 것이 왔다'는 암시와 불운의 예고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는 해고 사실을 알리기 위해 '차를 권하는' 행위는 위선이며, 일종의 추파라고 분노한다.
실직으로 망연자실한 채 다시금 호구지책을 강구해야 하는 주인공은 진땀을 흘리며 취직 부탁을 하기 위해 그 길로 지인들을 찾아 나선다. 구차하고 절박한 속내를 감추고자 그 또한 어쩔 수 없이 '차나 한잔' 하자는 말로 일자리 부탁의 운을 어렵사리 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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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엿보자면 60년대 직장 문화의 코드는 ‘차 한잔’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해고를 하는 쪽이나 취직 부탁을 하는 쪽이나 선뜻 입이 열리지 않기는 매 한가지였을 테니 어쩌면 찻잔 크기 만큼의 온기가 머물 때까지만이라도 그 순간을 유예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이 대목을 접하면서 네가 맞이했을 실직의 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너의 매니저도 어색한 표정으로 ‘차나 한잔’ 하자고 했는지, 아니면 전에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면전에서 ‘잘려’버렸는지, 어쩌면 한국에서 흔히 한다는 방식대로 휴대폰 메시지로 남겼는지, 너한테 물어볼 수도 없어서 더 속이 상하다.

어떤 식이 되었건 사람의 다양한 감정 중에 ‘거절과 거부’를 처리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엄마는 네가 겪었을 상황을 마음 아프게 곱씹어본다. 방금 전까지 ‘우리들’의 회사가 이제는 ‘저희들’의 회사라고 하니 말이다.

그 동안 열심히 일한 것이 억울한 나머지 순간적인 분노가 솟구쳤을까, 속았다는 생각에 배신감이 들었을까, 아니면 동료들 보기에 수치스럽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주체하기 어려워 그 순간 ‘어딘가로 홀연히 사라져버렸으면’ 싶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자기 비하감에 괴로워할 정도는 아니었을 테니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솔직히 행여 남탓을 하거나 쓸데없는 변명거리를 찾아 합리화를 궁리하게 될까봐 염려스럽구나. 그렇게 되면 비록 실직이라는 안타까운 상황 중에도 체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귀한 가치마저 놓치게 될 테니, 그것이야말로 황량한 일이 아니겠니. 건질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고 더디게 수습될 상한 감정만 끌어안게 될 테니 말이다.

엄마의 잔소리가 또 길어지는구나. 편지를 시작하던 처음 마음은 너에게 분위기 좋은 곳에서 ‘차나 한잔’ 하자던 것이었는데.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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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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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철 (211.XXX.XXX.129)
아들의 실직에 안타까음과 위로를 함께 전하고자 합니다. 보내신 글은 아들에게 큰 힘이 되어 더 큰 사람으로 거듭나는 귀한 시간으로 변할 것이라는 믿음을 보냅니다. 아들의 건투를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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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7 10: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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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so young (121.XXX.XXX.94)
시간은 잘도 흘러 흘러 이제 발표날이자 제 생일인 17일은 얼마 남지 않았군요..둘째는 지금 스쿨리에 갔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에 공항에 내려다 주면서 걱정 되니 매일 메세지라도 보내라고 했더니 하루가 지난 토요일에 모발을 잃어 버렸으니 회사에 전화해서 블록시켜나 달라 하더군요...그러더니 이틀이 지나자 돈이 다 떨어져가니 돈을 부쳐달라고 하더군요...어쨋든 이제는 성인으로 대접해야하니 눈에 거슬려도 더 이상 훈계는 통하지도 않을 뿐더러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지난 5월인가 한참 공부할 시간에 난데없이 갑자기 파트타임으로 카페같은데서 일을 해야겠으니 자격증 트레이닝 받아야 겠다면서 90불을 달라고 하더군요..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열이 오르더군요 ㅎㅎ..작년에도 학교에서 커피만드는 바리스타 트레이닝 받겟다고 해서 할 수 없이 90불을 주었는데 돈도 돈이지만 자꾸 공부에 집중 안하고 딴 생각을 하는것이 화도 나고 걱정도 됬으니까요..

자식이기는 부모없다고 나도 예외는 아닌지라 돈을 줘서 교육은 받았지만 고맙게도 레스토랑 면접에 떨어졌는지 연락이 안왔었요.그런데..시험이 끝난 그날 연락이 왔다고 다음 날부터 일한다고 하더군요..고든 쇼핑센타에 있는 립스 앤 럼스 라는 비교적 유명한 곳이지요.

어쨋든 독립을 해야겠다고 그리도 몸부림을 치더니 ㅎㅎ 빨리 일자리를 구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면서 마음 한구석에선 왠지 모르게 ..이래도 되나...난 그런 일 안하면서 편히 컷는데...아직 고3이면 한국에선 애들인데...그야말로 별일도 아닐텐데 만감이 교차하더군요..한 3일이 지난 후 일을 끝내고 피곤하지만 그 애가 일하는 곳에 울워쓰도 있으니 장도 볼겸 그 애가 일하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 곳은 모두 전면 유리가 되서 밖에서도 훤히 보입니다..파란불을 기다리면서 바라보니 둘째가 왔다 갔다 하면서 바삐 일하고 있더군요..그 애를 바라보느라 파란 불도 놓치고 먼 발치서 솔직히 숨어서 그 애를 지켜 보았습니다.

전 그날 왠지 마음이 스산하고 말할 수 없는 허전함에 그냥 집으로 향했는데...괜히 눈물이 나더군요..이유는 모르겠어요..아마 이제는 정말 내 품을 떠난 것이 섭섭했는지,,,험한 일을 하는 그애 때문에 속상했는지...

실패도 아니겠지만...아드님의 경험은 좋은 교훈과 경험으로 미래의 성공에 큰 보탬이 되리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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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4 22: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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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무슨 일을 당하면 '엄마야, 어머나' 하고 외마디 소리부터 나오잖아요. 엄마란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런 존재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제가 죽어라 노력하는 것도 바로 그런 엄마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 어디서 쉴 곳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아들은 이제 스무 살에 불과하지만 그 나이에 걸맞지 않게 풍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폭풍치는 방황을 통해 내면적 성숙을 이룰 것이라고 '믿어주는'것이 엄마로서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인내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볼때 이 종완 교수님 말씀처럼 몇 고비의 큰 파도를 넘어야 할테니 그 연습 내지는 시행착오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생의 마지막 종착은 결국 한 곳이니까요. 더구나 이 상우 님처럼 '모진 역할'을 맡아야 하는 그런 고충을 격지 말란 법도 없으니 역시나 '차나 한잔'하면서 쉬어가는 여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덧글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차 한잔을 '말로만' 대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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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3 22: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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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 (218.XXX.XXX.220)
위로를 드립니다. 추운 겨울을 난 보리 싹이 더욱 튼튼한 뿌리를 내리듯 아드님도 지금의
시련이 장차 크게 성장하는데 경험이 될 겁니다. 우리 사이야 그럴 사연이 없으니 시드니의
전망 좋은 카페에서 차 한잔을 하고 싶군요. DeColo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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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3 18: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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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211.XXX.XXX.129)
차나 한잔을 읽으며 나의 옛날 일이 생각나서 소감 몇자 적습니다.
내가 일간신문 편집부장을 하고 있을때 권력자들로 부터 부원중에 한사람을 목자르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소위 해직 기자를 만들라는 뜻이었지요. 난감한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출근하자마자 그 기자를 보고 말했습니다.
"차나 한잔 하러 가자"
다방에서도 참아 입이 떨어지지 않아 앉아 있는 나르 보고 그 기자가 구원해 주었습니다.
"부장님. 나를 해직시키라는 명령을 받았지요. 너무 심려 마세요. 들어가서 사표 쓸게요"
어처구니 없이 내가 위로 받던 생각이 나는군요. 계속 좋은 글 부탁합니다. 이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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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3 11: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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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완 (211.XXX.XXX.129)
"차나 한잔"을 잘 읽었습니다. 저도 35세에 실직을 한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소리가 미국 정부에 속해 있는데 미국 시민권이 없으면 7년 이상 근무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제가 몹시 좋아하고 잘 하던 직업을 잃었습니다. 혼자 벌어 6 시구가 살던 형편이라 그 타격은 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분노와 더부러 독한 마음이 들어 이를 앙물고 새 분야에 들어거 낮에는 공부하고 밥에는 알바이트를 해 1년 후에 병원에 푸로그래머로 취직이 되었고 2년 후에 항공 회사로 이전해 3년 만에 완전 회복을 했습니다. 나의 일생 동안 빨간 불이 네번 켜졌는데 첫번째는 8살 때 아버지를 잃은 것이고 두번째는 18살 때 오른팔에 중상을 입은 것이고 세번째는 실직한 것이고 네번째는 출혈형 위궤양으로 죽을번했다가 일주일 만에 살아난 것입니다. 매번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은 했으나 지금 다시 하라면 못 할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좀 더 강한 사람이 되었지요. 빨간 불이 없는 생애를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지막 빨간 불은 죽음이겠지요. 저는 죽을 준비를 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종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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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3 10: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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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무섭 (211.XXX.XXX.129)
"차나 한잔" 정감이가는 사람에게 건네는 다정한 언어입니다.
"숨 한번 크게 들여 쉬고" 조금 쉬었다 다시 해보자는 뜻으로 받아드립니다.
원체 믿음성이 안가는 세상인지라 평생 직장이라 한들 믿을 사람도 적고 그렇습니다.
차 한잔 마시고 쉬었다 다시 해보죠 뭐, 어차피 비가 왔다 말았다 하는 세상인 걸요.
차거운 일상에 차 한 잔의 따사로움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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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2 17: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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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임 (203.XXX.XXX.136)
아연님 아드님 얘기인가요?이곳에 와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군요!!
정말 아타까운 일들이 요즘 비일비재하고 있어요. 현재 한국땅에서....
지금의 경제상황이 끝모를 암흑속에 있는터라 많은 회사들이 존폐의 위기에
놓여있는 곳이 많답니다. 제고객중에도 벌써 회사를 문닫으신 분들도 있고,아님 인수합병을 기다리거나, 겨우 숨쉬기운동만 하고있는 기업등 ...힘든
시기이긴 합니다.
많은 회사들이 50~30%까지 감원하고 있는터라 아드님같은 처지가 되는 분들이 더욱 많아지리라 봅니다. 결코 실력이 안돼서라든지 다른 이유가 아닐거예요. 시절이 시절인지라.....<차한잔> 이 이러한 의미일줄은.....
저도 IMF 때 정리해고 될때의 느낌이 이글을 읽으며 되살아나네요.
분명 아드님은 이 기회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행복한 12월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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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2 15: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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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89)
속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엄마가 있는 아드님은 비록 잠깐의 실직 기간을 가졌더라도 하나도 두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기 성찰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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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2 00:3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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