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최창신 걸어서 탐라일주
     
다시 찾은 제주도 서귀포
최창신 2008년 12월 04일 (목) 19:23:25

걸어서 탐라(耽羅) 일주- 후편(1)

다시 그때 그 자리에 섰다. 9개월만이다. 서귀포의 정방폭포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서복(徐福)기념관 앞.

“우리를 옭아맨 관념의 결박과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관성의 족쇄로부터 물처럼 바람처럼 해방되고 싶다”던 음악인 김민식의 희구(希求)처럼 나도 철저히 자유로워지고 싶어 물과 바람의 땅 탐라를 걸어서 일주하려고 내려왔던 게 지난 3월 초.

   
  ▲ 쇠소깍  
경험 부족, 계획성의 결여, 무모한 과욕 등이 뒤섞여 앞뒤 볼 것 없이 질풍처럼 강행군을 펼치다 그만 중도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제주공항에서부터 걷기 시작, 서쪽 해안을 휘돌아 서귀포에 도착했을 때에는 두 발에 모두 심각한 문제가 발생, 결국 의사의 지시에 따라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때 서귀포를 떠나면서 “반드시 다시 내려와 일주계획을 마무리짓겠다”고 했던 다짐을 이루기 위해 돌아온 셈이다. 떠날 때는 만물이 약동을 시작하려던 이른 봄이었고 다시 돌아온 지금은 가을의 끝자락. 중간에 실패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제주도의 봄과 가을을 다 접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제주공항. 오전에 비가 많이 내렸던지 땅이 흠뻑 젖어 있었고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 있었다. 오후 시간을 아껴 조금이라도 걷고 싶어서 서둘러 서귀포행 버스에 올랐다.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분위기는 그럴 듯했으나 내심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서귀포에 비가 많이 내리면 어떻게 하지?’ ‘지난번에도 우박이 실린 세찬 비바람을 맞으며 첫날 오후를 시달렸는데 이번에 또 그러려나?’

다시 찾은 서귀포. 옛 친구처럼 반가웠다. 출발선에 선 장거리 선수들이 그럴까. 야릇한 긴장감이 전류처럼 온몸에 퍼졌다. 다행히 날씨도 제주보다 더 맑아 걷기에 그만이었다. 첫날 머물기로 마음먹은 남원(南元)을 향해 해안선을 따라 동진(東進)을 시작했다.

제주도의 길을 걸으며 맛보는 즐거움이 여러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특이한 지명을 보고 음미하며 즐기는 것이다. 참으로 제주도에는 괴상하고 재미있게 생긴 마을이름이 너무도 많다.

   
  ▲ 돈내코  
서귀포 북쪽 멀지않은 곳에 ‘돈내코’라는 계곡이 있다. ‘돈 내고 들어와 보라는 곳인가?’ ‘지형이 돼지 코를 닮았나?’ ‘스페인이나 남미쪽 사람들이 항해 도중 사고를 당해 이곳에 정착했나?’

아무튼 우리식 지명 같지가 않고 어디 국제시장에 내놓아도 될 만한 이름이어서 자료를 찾아보니 ‘멧돼지(돈)들이 물을 마시던 하천(내)의 입구(코)’라는 뜻이라 한다. 멋지다. 잘 지었다. 입구(口)를 ‘코’라고 부르는 것은 중국식 발음이어서 진시황의 사신 서복 일행이 다시 떠오른다.

얼마 걷지 않아서 도로표지판에 ‘검은여’라는 지명이 나타났다. ‘검은 여자라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옛날에 인도네시아나 태국에서 피부가 검은 미인이 도래(渡來)하여 이 땅에 뿌리를 내린 모양이군.’

장난기 넘치는 내 상상이 맞다면 뒷얘기가 있을 듯싶어 농수산물 판매가게에 들러 물어보았다. ‘여’는 토박이말로 해안선이 안쪽으로 반달처럼 움푹 패인 요처(凹處)라는 것이다. 요(凹 )는 여(女)와 통하기도 하니 그럴 듯하다 싶었다.

설명을 듣는 순간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반도 남쪽에 있는 작은 항구 겡그레아의 모양이 떠올랐다. 2천년 전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귀로에 배를 탔던 항구. 그곳 역시 ‘여’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옳을 요처 중 하나인 셈이다.

15m 이상 일직선으로 뻗어 올라간 야자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있고, 작고 빨간 열매들이 포도송이보다 더 촘촘하게 달려 있는 피라칸다가 일렬로 늘어서 가로수가 되어 있는 길. 인도(人道)에는 나무판(데크)이 깔려 있어 걷기에 무척 좋은 곳.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탐라는 우리나라의 주얼리. 외롭긴 하나 쾌적하기 그지없다. 끝없이 걷고 싶다.

효돈(孝敦)이라는 곳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사이 또 표지판을 보니 ‘쇠소깍’이 오른쪽으로 9백m쯤에 있단다. 이 역시 희한한 지명이다. ‘강철을 자르고 깎아서 무슨 물건을 만드는 곳인가?’

그런 것이 아니고 하효동의 옛 이름이 ‘쇠둔’이라서 첫 자(字)를 따고 큰 물웅덩이를 이르는 ‘소(沼’)와 맨 끝을 의미하는 ‘깍’을 합쳐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닮은 협곡으로 관광지 가운데 하나.



최창신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다.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태권도신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