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학가에는 졸업을 피해 다니는 ‘졸피생’들이 수두룩합니다. 정규 과정을 마치면 복수전공이라는 이름으로 한 두 해 시간을 벌고, 그것도 다 마치면 이번에는 휴학으로 시간을 끌고, 그런 상태에서 어학연수나 산업체 실습, 혹은 아르바이트 등을 방패삼아 졸업장을 피해 다니는 품새가 마치 군에 가기 싫은 기피자들이 영장 피하듯 합니다. 그 결과 4년제 대학생 185만여명 가운데 32%가 휴학생이며 그 비율은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졸피생이 느는 이유는 두 가지로 보이는데 하나는 심리적 이유로 학교라는 울타리에 안주하려는 경향입니다. 대학생이면 이미 어른인데도 불구하고 학생신분을 유지함으로써, 어른이라면 마땅히 감내해야할 의무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도피심리인 셈입니다. 그러나 피터팬 신드롬이라 불리는 이 현상 때문에 졸피생이 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졸피생의 대부분은 취업 때문입니다. 대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졸업예정자만 선발합니다. 기업들은 졸업예정자가 아니면 원서도 전산 입력이 안 되게 막아놓았습니다. 그러니 일단 졸업을 미루어 놓고 시간을 벌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학생들의 처지입니다. 졸피생들은 부모, 교수, 후배들의 눈총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상처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졸피생들이 양산되면서 그들에게 투입되는 코스트는 일단 부모들 몫이 됩니다. 자신들의 노후준비만 해도 한 짐인데 중년의 부모들은 대학생 자녀의 취업 때문에 여간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부모로서는 자녀들이 번듯한 직장에 가기를 원하는 마음인지라 아무 곳에나 취직하라고 윽박지를 수도 없습니다. 부모들은 졸업하면 원서도 안 받아주는 대기업의 인사정책이 못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이제 졸피생을 양산하는 현행의 채용 방식을 재고할 때가 되었습니다.

대기업들이 솔선해서 채용방식을 바꾼다면 젊은이들에게는 비전을, 부모들에게는 희망을 선물하게 될 것입니다. 가령 대기업들이 사원을 뽑을 때 소수의 특수한 인력만 졸업예정자로 채우고 나머지는 중소기업에서 2-3년간 근무한 현장경험자를 뽑는 방식을 도입한다면 일석사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먼저 대학생들이 서둘러 중소기업으로 갈 것이므로 만성적인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해결됩니다. 두 번째 효과로는 중소기업의 취업경쟁률이 높지 않으므로 젊은이들의 심각한 구직난이 해소됩니다. 대기업도 이익을 봅니다.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에서 일을 배우면서 어느 정도 철도 들고 비즈니스의 생리도 익히게 될 것이므로, 철부지 사원들의 30%가 입사 2년 이내에 회사를 떠나는 현행제도의 낭비를 피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가 생산성이 올라가 결과적으로 국가 경쟁력이 강화될 것입니다.

이런 이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료화된 대기업들이 채용제도를 쉽게 바꿀지는 의문입니다. 그럴 경우 정부가 앞장서면 됩니다. 공기업 사원 채용 때 중소기업 경험자를 우대하도록 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중소기업과 관련된 기관은 우선적용 대상입니다. 정부는 이런 채용방식으로 바꾸는 기업에 세제상의 혜택도 제공해봄직 합니다. 기업의 사회공헌이 반드시 돈을 써야할 필요는 없고 정부의 개혁 역시 요란한 몸짓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작은 개량만으로도 우리는 나라의 모습을 보기 좋게 바꿀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