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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에 강제 착색이라니!
최창신 2008년 12월 19일 (금) 07:05:43
걸어서 탐라일주-후편(3)

동지(冬至)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11월 하순인지라 해는 빨리도 졌다. 가끔 발을 헛디딜 만큼 어두운 밤길을 뚫고 남원(南元) 읍내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제법 이슥한 것처럼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느낌이 그랬을 뿐 실제로 밤이 아주 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숙소부터 정하고 민생고를 해결하는 일에 마냥 여유를 부릴 입장이 아니었다. 큰 길 옆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문을 닫으려고 청소하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물었다.

“남원에 호텔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괜찮은 여관은 있습니까?”
“모텔이 딱 한 군데 있긴 합니다만....”
“아, 거기가 좋겠군요.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미안하지만 추천해 주실만한 식당은 가까운 데에 있는지요?”
“계속해서 15분쯤 더 가시다가 모텔을 물어 보시고요. 식당도 그 곳에서 찾아보세요.”

어렵지 않게 숙소도 정할 수 있었고 좋다는 식당도 소개를 받았다. 그러나 식당은 찾아가 보니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정기휴일’. 주변 분위기를 보니 식당들이 거의 파장 분위기여서 그야말로 아무데나 들어가 대충 한 끼를 해결했다.

   
  ▲ 나무에서 노랗게 익은 감귤. 감귤은 아직까지도 제주의 가장 중요한 농산품 가운데 하나다.  
슬며시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제주공항의 북새통 한식당에서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회덮밥 한 그릇이 전부였는데 중노동 후에 저녁 식사마저 마치 훔친 물건 장물아비에게 팔아넘기듯 했으니 그런 아쉬움이 남지 않았겠는가.

숙소는 상당히 낮춰 잡은 기대보다도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으나 하룻밤 잠만 자고 새벽에 떠날 것이니까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잠이나 자려고 누웠다. 그러나 세상 일이 그렇게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어서 엉뚱한 복병을 만나게 되었다.

설핏 잠이 든 상태였는데 갑자기 요란한 노래소리가 터져 나오는 바람에 번쩍 눈을 뜨고 말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한 밤중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 정신을 가다듬고 상황분석을 해보았다.

‘아까 들어올 때 입구에서 보니 건물 지하에 단란주점 같은 느낌을 풍기는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의 간판이 있었지. 틀림없이 거기서 나는 노래소리일 거야.’

시설을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시끄럽단 말인가. 주점은 지하에 있고 나는 2층 객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노래방 안에 침대를 놓고 누워있는 듯 했다. 남녀가 번갈아 가며 마이크에 대고 목청껏 노래를 불러대는데 가사까지 정확하게 들렸다. 노는 사람들에게는 파라다이스일 수도 있겠으나 객실 손님들에게는 지옥. 새벽 2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남원에서의 하룻밤은 이렇듯 어설프게 지나갔다. 아침 7시 반에 다시 걷기 시작했다 좀 이른 감이 없지 않았으나 특별히 할 일도 없고 그냥 누워 있기도 싫어서 길을 나선 것이었다.

남원읍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도로 표지판에 ‘큰엉’이라는 지명을 대하게 됐다. ‘큰엉?’ 별스런 이름도 다 있네. 순간 충북 J군에서 군수를 지낸 K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풍채도 좋고 용모가 근엄하게 생겼음에도 장난기가 있는 후배이다. 기분이 좋을 때는 나를 ‘엉아’라고 불렀다. ‘형님’보다는 훨씬 친근감이 넘치는 호칭.

따라서 ‘큰엉’이라는 명칭은 ‘큰형?’ 또 갑자기 궁금해졌다. 등교 길의 여학생들에 물어보았으나 모른다고 했다. 중학생이냐니까 초등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조금 더 걷다가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덩치 큰 여고생에게 또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역시 모른다는 대답. 이 친구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보면서 궁금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할 수 없이 서울 태권도신문 사무실에 앉아 있는 김창완 국장(서귀포 출신)에게 물어보았다. 그의 설명인즉 ‘바위동굴’이나 큰 동굴이 아닌 비를 피할 정도의 작은 굴을 뜻한다는 것이었다. 제주 출신의 전 언론인 서명숙씨는 그냥 ‘바위’라는 뜻이라고 한다. 하기사 바위 밑에는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테니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남원읍을 거의 빠져 나와 태흥리로 접어들 무렵 큰 길 옆에 농협이 있었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점 중의 하나여서 무심결에 지나치려다가 특이한 플래카드가 붙어 있기에 읽게 되었다. 아, 이런!

“감귤 제값 받기는 ‘강제 착색 금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 남원농협창고애 나붙은 ‘감귤 강제착색 자제’ 계몽 현수막  
그냥 가볍게 지나가도 될 일을 가지고 왜 신경 쓰느냐 할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플래카드를 내거는 일은 좀 신중히 처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열심히 일하는 농협 관계자들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역효과가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품으로서 감귤의 때깔을 더 곱게 하기 위해 강제로 착색을 한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다. 이 계몽성 플래카드 덕(?)에 그런 터무니없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내가 거꾸로 계몽이 된 셈이다.

강제 착색을 어떻게 하는지, 그것이 얼마나 인체에 해로운지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절대로 좋을 까닭이 없다. 이런 사실이 좀 더 과장되어 전국에 알려진다면 제주도의 감귤농장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어찌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또 하나, 이것은 기우(杞憂)일 수도 있으나 착색을 안 하던 농가들도 이 플래카드를 보고 오히려 착색을 하게 되는 경우는 없겠는가.

“아, 남들은 착색을 해서 상품가치를 높이는구나. 이러다가 나만 낙오되는 것 아닐까? 당국이 하지 말라고 해도 그게 근절 되겠는가. 에라, 나도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들을 한번쯤 가져 보지 않겠는지. 어쨌든 이 일은 조용히 내부적으로 처리했어야 옳았다.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최창신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다.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태권도신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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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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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5)
'큰엉'의 정체를 알아내셨드시 감귤 착색의 내막도 속시원히 밝혀내셔야 합니다.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편법에 대한 확실한 언급이 빠져서 궁금증만 증폭되어서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감귤을 마음 놓고 먹기는 다 틀렸(?) 습니다. 책임 지시고 후속 기사를 올려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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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0 01: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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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69.XXX.XXX.111)
계속 써주시는 제주도에 관한 글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아름다웠던 제주도의 인심이 변하는 것이 서글프며, 이제 감귤까지 착색을 해야한다니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감귤하니 떠오르는 기억이 일본의 감귤, 아타미에서 한참 아래인 해안가 농촌에서 생산하고 있던 감귤인데, 청결하고 맛이 꿀 맛 같았던 그 감귤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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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0 00: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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