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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져다 주는 선물
신아연 2008년 12월 30일 (화) 08:01:53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 작은 아이는 대학 시험 결과 발표를 기다리며 12월 한 달 동안 풀타임으로 용돈 벌이를 했습니다. 대학생이 되는 것을 자축하는 의미로 새해를 한국에서 맞고 싶다면서 그간 열심히 돈을 모아 이제 며칠 후면 한국가는 비행기를 탑니다.

학교 다닐 때는 앳되기만 하던 녀석이 일을 나가고부터는 제법 성인 티가 나면서 의젓해 보입니다. 격려하느라고 “우리 규원이가 어른이 다 됐구나.” 라고 했더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그 나이 특유의 서슬 푸른 자의식 탓도 있겠지만 또래들 다 겪는 고등학교 생활을 유독 못 견뎌하던 녀석이라 ‘어른스럽다’는 말이 무엇보다 듣기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가소롭기도 합니다.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영락없이 아직 어리다는 의미니까요. 나이든 여자가 예쁘다는 치레 소리를 곧이듣고 싶은 심리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기왕 어른 대접 받고 싶어하는 것, 어차피 배워야 할 세상 이치라면 지금부터 차츰차츰 알아가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기회와 상황이 만들어지면 집안 돌아가는 형편이며, 가족의 현실 난제며, 친척들 간의 역학 관계 따위에 눈치 못 채게 녀석을 슬쩍 끌어들입니다. 때로는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까마득히 먼 훗날을 염두하여 부모 처지에서 생각하는 도리도 슬쩍 흘려 제 소견을 들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애를 써도 시간이 흘러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 겨우 열일곱 밖에 안 된 아이를 붙잡고 무심코 신세타령을 하거나 애매모호한 소리를 하는 일은 없습니다. 행여나 세상이 두렵고 박정하다는 선입견을 갖게 될까봐서 입니다.

어른인 척 하는 것과, 실제로 어른인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시간이 퇴적물처럼 쌓이고 깊이 모를 강물로 유장하게 흘러가 주어야 비로소 다다를 수 있는 길목이니 세월에게 아이를 키워달라고 맡겨 두어야 할 일입니다.

삶의 신비는 시간과 세월을 통한 ‘성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만큼 나이가 들고 보니 세월 속에서 깎이고 무디어지고 깨어지고 하는 풍화가 실은 끊임없이 ‘성장’코자 하는 생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파트 평수 넓혀가듯 세월의 흐름 속에서 마음의 평수, 사유의 뜨락도 더욱 넓어져가는 깨달음 말입니다.

주위에 보면 나이를 떳떳이 밝히지 않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나이 먹는 것이 무서워서 언제부턴가 헤아리지 않았더니 잊고 살게 되더랍니다. 육신 늙어가는 것이 서럽고 싫어서 애써 외면한다는 의미일 테지만 잊고 싶다고 해서 시간이 그 사람만 비껴가는 법은 없을진대, 그런 분들은 자칫하면 세월이 가져다 주는 선물을 놓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나이가 되기 전에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일, 세월의 약에 맡겨야만 했던 지난 날의 쓰라린 상처들, 이제는 웃으면서 되돌아 볼 수 있는 마음의 흉터자국, 그 때는 도달할 수 없었던 사유의 깊이, 겸손과 너그러움, 이해심 같은, 세월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성장’이라는 선물 꾸러미 말입니다.

육신의 나이에 연연해 하다가 훈훈한 여유로움 속에 끌러 보아야 할 귀중한 선물을 그대로 방치해서야 되겠습니까.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지난 ‘세월’을 돌아봅니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생각만 하고 살다가 시간이 흘러가 줘야만 해결될 문제, 시간 속에서 무르익고 곰삭아 줘야 풀릴 과제가 아직도 적지 않다는 사실에 문득 어서 새해를 맞고픈 조바심이 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시간은 제가 가진 속도로 흘러갈 뿐, 빨리도 천천히도 가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이제는 압니다.

우리 앞에 2009년 이라는 새로운 단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지난 해 못 다 이룬 ‘성장’은 무엇이며, 더 살아봐야 알 것 같은 불가해한 문제는 무엇인지, 주어진 1년을 통해 그 답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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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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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저도 이렇게 늦게 답글 답니다. 새해 밝은지도 어느 새 일주일.. 또 이렇게 그렇고 그런, 타성대로, 관성대로 올 한해를 살게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기본만 하면 된다는 고질적인 습관이 단 한 계단이라도 상승하려는 의지를 늘 꺽어놓지요. 어차피 완성은 없고, 어느 나이라한들 삶은 진행형일 뿐이니 오히려 희망적입니다. 언제든 새로 시작할 수 있고, 어느 나이든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제 아들은 지금 서울에 있지만, 아마 부끄러워서 님께 연락은 못 할 것 같네요.^^ 말씀만으로도 너무 고맙고, 언제든 제가 한국에 가게되면 우리 한번 만나지요. 자식을 키우는 일은 '이만하면 됐다'는 어떤 기준점이 없으니 도무지 오리무중, 답답한 노릇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죽을 끓였건, 밥을 끓였건 간에 이제는 물러나야 할 나이라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저렇게 훌쩍 벗어나 버릴 건데 왜 그리 아웅다웅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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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7 06: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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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임 (211.XXX.XXX.129)
아연님 !! 2009년 첫인사드립니다. 2008년 끝자락에 올린 글이 이제사 봅니다.
괜히 연말이라고 몸만 바빠 메일체크도 제대로 못하고 휑하니 연말을 보내버렸습니다.
아연님 글보니 세월의 더께가 입혀지는만큼 얻는 것도 많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저도 과거로 돌아가기 보다는 얼른얼른 제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고 가고 싶은 맘이거든요.
아드님 한국으로 나왔겠네요? 우리 부모들이 아무리 조바심쳐도 그나이에 겪어야 할 성장통을 다 겪어야 아이들도 그만큼 크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울 꼬맹이들 너무 웃자라는 것도 싫고 그 또래에 겪어야할 것 슬기롭게 다 겪어나가도록 지켜보기만 한답니다.
때론 울 남편이 너무 방임하는 제태도에 불만을 토로하긴 하지만 저도 제 삶 하나 제대로 살아가는데 벅차하기에 아이들보고 재촉하긴 싫어서요 ㅋㅋ 핑계치곤 우습죠?
맨날 빵점엄마, 빵점주부, 빵점아내,빵점며느리 하면서요. 새해엔 10점이라도 올려야 할텐데....ㅎㅎ
아연님 새해에도 심신 모두 더욱 건강하시고, 댁내 두루 평안하며 웃음 가득한 행복한 나날들이길 기원합니다.
저도 세월의 더께를 아름답게 채색할 수 있도록 매일매일 노력할려고 애쓰고 있죠. 언젠가 아연님 만나면 그저 아무말없이 바라만 봐도 살아온 속내가 어떨지 서로 읽을 수 있음 하는 소망 하나 가져봅니다.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고 올해도 아연님의 열혈팬 될게요.
힘차게 기축년 첫 월요일 시작하시기바랍니다.

~아연님의 둘째 아드님 한국에 온다니 서울에 머무른다면 함 보고도 싶네요.
혹 전화통화라도 하게 제 번호 알려주세요. 안녕히~~~

-----서울에서 김명임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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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5 16: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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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위험스런 일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특히 지식이나 정보성 글이 아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공유하고자 하는 글은 어지간히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는 자칫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걸 잘 압니다.

제가 사회적으로 영향력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만용처럼 이렇게 끄적이지만, 선생님처럼 너무도 진지하게 의견을 올려주실 때면 그만 부끄러워서 그만 두어야 겠다는 생각조차 듭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제가 경험한 것을 통해 인생을 배우려는 자세는 있습니다. 저는 앞서가신 분들, 연배 높으신 분들의 시각에서 통찰을 얻을 만큼 지혜롭지 못합니다. 속된 말로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봐야 안다고 할까요. 제 나이에서 얻을 수 있는 것만큼만, 그대신 깨지고 터져가며 확실히 배우기는 하는 것 같습니다 .제 아이도 저를 닮아 좀 미련합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면서 생의 벽돌을 한장씩 마련하는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저를 말상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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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2 15: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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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팬 이라 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 글이 독자들의 공감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송구함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제 경험은 높은 연배에서 보실 때, 너무나 가소롭고, 피상적이며, 관념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년배가 읽을 때는 괜스레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님의 격려 말씀 통해 진실한 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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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2 15: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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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님의 심정이 곧 제 심정, 님의 말씀이 곧 제가 하고픈 말이라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싶진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부모 세대만 힘들었을까요.. 아이들이 받았을 고통은 우리 몫과는 다르고, 경험해본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우리 것에만 급급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제 아이가 왜 이민을 왔냐고 울며 대들때, 엄마는 아이덴티티 문제는 없잖아, 어차피 한국 사람이니까 하면서 절망조로 읊조릴 때, 그 고통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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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2 15: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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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짐승이나 미물이 독립을 한다는 의미는 스스로 먹이를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단순화할 수 있다면, 인간의 경우는 정말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호주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10대 아이의 독립심과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의 독립심을 대하는 부모의 심정을 나누어 헤아려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호주 10대들의 독립심이란 참 거칠고, 그래서 스스로와 주위에 가시로 인한 상처를 많이 입히지요. 하긴 어차피 하나가 둘로 쪼개지려면 피흘림이 왜 없겠습니까만.. 제가 익숙하게 입고 자라온 문화와는 정말 생경한 토대에서 아이들과 좌충우돌한 것이 독립심을 키워준 것이라고는 정말이지 말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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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2 15: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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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제가 좋아하는 복음성가 구절 중에, 기쁨과 슬픔도 감사, 장미꽃과 장미 가시도 감사,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심도 감사... 상처와 회복 등 서로 상반된 것들을 함께 수용하는 의미를 담은 것이 있습니다. 그같은 수용은 세월이 가져다주는 성숙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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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2 15: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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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오 (211.XXX.XXX.129)
12월 30일 화요일, 오전 09시 11분 56초
안녕하십니까 !! 신아연 선생!
인터넷을 통해 귀하의 좋은 글을 접하고보니 새삼스럽게 인생이 돌아보아 지내요.
34년생인 저는 누구에게나 인생 교육 현장에는 "百聞이 不如 一見이라" 했으나 귀하의 글에 자식 문제에 대한 여러가지 느낀점을 설하셨는데 역시 인생은" 百見이 不如 一行"이란것이 더욱 확실해진듯합니다.

인생을 살아보지 않고 인생을 논 하는 것도 완전치못할것 같읍니다. 선생님처럼 생을 통해 하나씩 깨닫고 알아가는 것이 참다운 앎이겠지요. "만사는 百見이 不如 一行 이라" 즉 實行 을 통해서 아는 것이 확실하게 알수 있다는 것이지요. 즉 듣는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이 좋으나 보는것보다 실재로 실행 하는것이 확실한 교육이란 뜻이지요.
이것이 산 교육이 아니겠읍니까. 아드님께서는 이제 생활 전선에서 실행을 통해 인생공부를 하고 있으니 장래가 촉망되고 우리나라 젊은이 들이 본받을 일입니다.
인생은 生命力에 의한 生存力, 自生力. 自存력 에 따라 生存之心, 自生之心, 自存之心이 있으며 이에따라 生存競爭心과 自尊心과 自立心이 있으나 사람마다 그 意志와 熱情이 달라 각자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것 같읍니다.
신아연 선생께서 철학을 전공하셨다하니 글을 쓰고 싶어 몇자 써 봤으니 해량해주시기 바랍니다.
2008. 12. 30. 부산 문 상 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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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1 11:2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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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철 (211.XXX.XXX.129)
2008-12-30 15:39:26
귀중한 이야기를 설레임으로 잘 읽었습니다. 어느덧 저도 신아연님의 펜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돕니다. 저 같은 경우 2년 전부터 고정된 나이 28세 라고 이야기하는 버릇이 생겼답니다. 젊게 살려고 하는 생각도 있겟지만 젊은이와 더욱 공유하는 마음을 갖고자 하는 바램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어째든 저의 나이 들어감에 다시한번 곰곰히 생각해 볼 시간을 주어 감사드립니다. 최병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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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08: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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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무섭 (123.XXX.XXX.28)
부딪치며 멍 들며 상처 받아가며... 자신의 여물어가는 내면의 세계를 대견스레 들여다 보며.

모든 철 다 들었을 때 우리는 아주 좁은 오솔길 그것도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그 길을 가게됩니다.

그때 까지는 상처의 기쁨을 스스로 메만지며 걸어가는 것이 우리들 삶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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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0 10: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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