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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미안해, 다 미안해
신아연 2009년 01월 13일 (화) 01:08:21
보화가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아이가 한국에 있다보니 제 마음도 온통 아이와 함께 한국에 가 있습니다.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둘째가 3주간을 예정으로 지난 2일부터 서울에 머물고 있습니다.

오늘 서울 날씨는 얼마나 추운지, 무엇보다 눈구경은 언제쯤 할 수 있을지 날마다 조바심을 치다못해 숫제 아침마다 한 주간의 일기예보를 몽땅 확인해 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따스하게 대해 줄까, 혹시 한국 사회에 대형사고가 터지면 어쩌나’ 하면서 마치 적어도 3주간은 내 아이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야 할 것처럼 같잖고도 유별한 생각을 연신 품게 됩니다.

무엇보다 아이를 돌보고 있는 친정 엄마에게 ‘뻔질나게’ 전화를 해대면서 ‘일과 보고’를 듣는 일이 요즘 저의 일상입니다. 아침, 점심, 저녁은 뭘 먹었고, 누구를 만났으며, 특별한 소감은 없는지, 그리고 그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시시콜콜 다 물어봐야 직성이 풀립니다.

호주의 한여름에서 겨울의 한가운데로 갑자기 곤두박질친 기온, 혼잡한 교통과 번화한 거리, 오랜만에 만나는 친지들, 완전하지 않은 한국말 따위로 제 딴엔 긴장이 되었는지 며칠 전에는 그만 몸살로 앓아 누웠다고 합니다.

예정에 없던 돌발 상황이 아닐 수 없지만, 아까운 시간을 축내게 되었다고 안달복달해봐야 소용없는 일, 어서 털고 일어나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그 날밤 아이가 전화를 해서는,

“ 엄마 미안해, 다 미안해...”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겁니다.

“뭐가… ? 몸이 아프니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아무래도 집이 아니니까 마음이 그런가 보다. 빨리 나아야 될 텐데. “

“아니, 아파서 그런게 아니고 한국 와서부터 계속 마음이 무겁고 엄마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정말.., 미안했어요, 엄마.”

이민 2세대로서 격심한 정체성 혼란에서 비롯된 사춘기의 성장통이 비로소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나 보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아이의 말꼬리가 흐려지는 듯 싶었지만 듣는 저는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습니다.

부모가 자식 속 썩이는 거라면 몰라도, 자식이 부모 속 썩이는 일이야 물이 낮은 데로 흐르는 이치만큼이나 예삿일이니까요. 자식이란 원래 부모 애 먹이고 미안한 일 하라고 태어난 존재이지 않습니까. 여북하면 세상 모든 자식들의 원죄라고까지 하며, ‘ 자식은 전생의 빚쟁이’라고 할까요. 부모노릇은 어차피 밑지는 장사하자고 좌판 벌이는 것이니 사과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는 일인데, 아이의 그 말을 들은 후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아릿아릿 아파왔습니다.

비대한 자아로 꽉 찼던 마음자리에 자기 아닌 타인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몸짓, 산다는 일은 결국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과, 평범함 속에서 삶의 내밀한 의미를 찾아나서려는 시도 등, 10대 끄트머리에서 아이가 철이 들어가는 징후를 ‘엄마 미안해’ 라는 그 한마디에 모두 담았대서가 아닙니다.

언젠가 대화 중에 ‘군인은 전쟁을 일으킨 책임은 없지만 열중해서 싸우는 것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는 존재’라며 ‘내가 만들지도 않았고 선택하지도 않은 이 세상에 그저 던져졌지만, 그래서 약이 오르지만 내 삶과 내 행동의 책임은 고스란히 내 몫이라는 걸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던 아이의 실존적 각오가 새삼 대견하게 여겨져서만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실은 내 자식을 낳아 기르는 동안 꼭 한 번은 내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깨달음이 아들의 고백을 통해 선명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 날 이후 귓바퀴에 걸려 떠나지 않고 있는 아이의 말을 입속으로 가져와 가만히 되뇌어 봅니다.

‘엄마 미안해…’

얼마 전에 읽은 엄마에 관한 소설 한 편에는 ‘엄마에게 기대며 동시에 밀어낸 우리 자신의 이야기, 아직 늦지 않은 이들에겐 큰 깨달음이 되고, 이미 늦어버린 이들에겐 슬픈 위로가 되는, 그 아픈 이야기’라는 평이 달려 있었습니다.

참 고맙게도 저는 ‘아직 늦지 않은 이들’ 에 속해 있습니다. 게다가 제 아이의 고백이 엄마에 관한 ‘슬픈 위로’보다는 ‘큰 깨달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어떤 것에 대한 절실함과 참모습을 느낄 때에는 이미 그것이 사라져 버린 후이거나 그리움과 기억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을 때이기가 쉽습니다. 다행히 제게는 아직 직접 말을 전할 수 있는 '살아계신 엄마'가 있습니다.

“엄마 미안해, 다 미안해.”

더 늦기 전에 우리 아들이 제게 한 말과 똑같은 말을 저도 엄마에게 하고 싶습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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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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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맞습니다.. 제 맘 편하자고, 나는 그래도 이런 말이라도 했다고 자위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자식이 저를 키웠습니다. 애들 키우면서 제가 너무 힘이 드니까, 비로소 부모님 생각이 나더군요. 참 우리 어머니 나 땜에 힘들었겟다는 회한이.. 자식도 안 낳는 사람은 부모와 세상에 진빚을 안 갚고 사는 사람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4남매를 혼자 키우셨는데, 저는 어린 마음에 (제가 막내거든요) 나 하나만 없어져도 엄마가 참 편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생각은 그리했으면서도 속은 많이 섞여 드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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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4 12: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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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부모와 손자대까지 3대가 '함께'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가정형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야 부모와 자식간에 맞부딪힐 수 있는 갈등에서도 조부모님이 완충 역할을 해 주실 수 있고, 자식을 키워본 경험과 연세에서 오는 너그러움, 경륜으로 인해 손주들을 조급하지 않은 사랑으로 감쌀 수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가정이 자꾸 삐거덕거리고 문제가 발생하는 거지요. 저 역시도 부모님을 모시고 살지 않으면서 이론만 알량하게 내세우고 있어서 많이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에게 죄가 많은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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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4 12: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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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어머님이 안 계시는군요.. 어머님이 안 계실 때의 마음은 지금의 마음과 또 다를 테지요.. 소문난 어떤 효자가 있는데 어떻게 그리 효자인가 봤더니, 부모가 발을 씻겨주더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부모가 자기 발을 씻기도록 가만히 두는 것, 부모가 하고 싶어하는 것 하시도록 하는 것이 바로 효도라는 말일텐데,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렇게도 저렇게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참, 제 아들녀석은 지금 좀 기가 죽어있습니다. 한국가서 쫄았나 봅니다.^^ 한국말도 잘 안되고, 그렇다고 영어를 쓰고 다닐 수도 없고,나름 문화충격을 겪고 있어서 제가 뭐라고 이런저런 것을 권하질 못하고 있습니다. 평소 저는 아들에게 뭐를 하라,말라 해 본적이 없어서, 엄마가 아는 사람을 저더러 만나보라고 하기가 솔직히 뭐하답니다.^^ 마음 써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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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4 12: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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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저는 평소에 문학평론 하는 사람들이 문학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사고의 깊이나 표현의 묘가 한수 위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 글이 문학은 아니지만, 이렇게 훌륭한 평을 받고 보니 역시나 의견 주신 곽 무섭님의 글솜씨가 한 수 위라는 걸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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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4 12: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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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123.XXX.XXX.28)
일찍 철 난 거 맞긴 맞습니다. 지 어미 보다는 훨씬 일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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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4 12: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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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옥 (211.XXX.XXX.129)
자식은 서너살 될때까지 부모에게 웃게, 행복하게 해주는 것만으로 평생 해야 할 효도 다 한거라지요. 그런 후엔 부모 애먹이고, 서운하게 해드리고, 돌아가실때 까지 걱정하시게 하는것이 당연한거라지요. 저는 병드신 노모 모시고 사는데 어머니때문에 맘 아플때가 많습니다. 왜 자식앞에서 당당하지 않으신지. 너무 양보만 하시고, 늘 아무것도 필요없다 하시는지, 뭘 좀 사오너라. 이것좀 해 다오. 하셨으면 내 속이 좀 덜 상하려나.....? 이제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지만 내가 알아서 못해드리는것을 자책만 하면서 시간이 가고있다.
자식이란 누구나 다 그렇다고 하듯이, 돌아가신 뒤에 가슴칠 일을 오늘도 만드는게 틀림 없다. 네 그렇게 하세요. 바로 잊고 말더라도 '어머니 미안해요' 라고 하세요. 그러나 그것도 결국은 내 맘 편하자고 하는 잣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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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4 11: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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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만 (211.XXX.XXX.129)
언젠가 어머니를 모시고산다는 표현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받은적이 있습니다.함께산다는 표현이 맞다는군요.모신다는 표현속에 베푼다는 의미기 들어있어서 인가봅니다. 어머니! 언제나 가슴시린 이름 또한 함께살면서 겪는 갈등과 연민.신아연님의 글을 통해 이미결혼한 아이들과 함께계시는 어머니사이에서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부족한 나의 사랑의 표현을 오늘 해야겠다는 생각하게해주는군요. 마음을 적시는 글 감사합니다.좋은글 계속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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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4 11: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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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임 (211.XXX.XXX.129)
아연님 정말 보는 것, 듣는 것 모두에서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못배우는 것같네요. 우리들은....전 미안해라고 말씀드릴 엄마가 안계시네요.
엄마 묻으면서 정말 미안하다는 말 엄청 했는데....그게 뭔 소용일까요. 살아계실적에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 실컷 하세요. 아드님은 언제까지 한국에 있나요? 지난번에 제 전화번호 알려주라고 했는데 안 알려주셨나 봐요. 아드님이라도 보면 아연님 보는 것같을 거같아 함 볼려고 했더니....
암튼 애틋한 모자의 정이 느껴집니다.우리도 이렇게 서서히 철들어왔겠지요.
엄마대신 홀로 남으신 아버지 한테라도 잘해드릴려고 하는데 아직도 심려만 끼치는 여식이네요.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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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3 16: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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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무섭 (123.XXX.XXX.28)
'엄마 미안해'

두분만 통하는 맥박 같기도 하고 한 번 호흡으로 두 사람이 나누는 산소 같기도 하고.

살면서 이끼 처럼 묻어나는 그런 윤기 같은 두 분의 관계를 짐작만 합니다.

한편으로 그런 관계란 언제 어디서나 누구들에게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아들에게 긴 호흡으로 그리움을 토하시다 조금은 지겹다 싶을 때

반전이 일어나는 글이었습니다.

드디어 어머니에게로 뜨거운 입깁이 가는 순간 그래 이거야 끝이 참 좋아!

제일 마지막 끝부분 어머니에게 드리는 '미안해요'가 이 글의 클라이막스!

글 끝이 살아있는 글을 저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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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3 16: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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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o (211.XXX.XXX.68)
그렇게 일찍 철난 아들을 두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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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3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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