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최창신 걸어서 탐라일주
     
‘섭지코지’와 관광자원
최창신 2009년 01월 24일 (토) 00:15:30

걸어서 탐라일주 -후편(7) 

‘섭지코지’. 이 단어를 처음 듣거나 보는 사람들은 이게 무엇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할까? 개인적인 경험을 솔직하게 말한다면 영어 단어인줄 알았다. 'subjee cozy'라는 스펠링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억지인 줄 알면서도 ‘아늑한 후보지’ 정도의 뜻도 상상의 나래에 피어올랐다. 아름다운 의미로군!

   
  ▲ 섭지코지를 설명한 현지 안내판  
그러나 실은 순 우리말이고 제주도에 있는 지역 이름인 것을 아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 6,7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지명.

이병헌과 송혜교가 주연했던 TV 드라마 ‘올인’ 때문에 갑작스럽게 유명해진 곳이다. 그래서 그럴까? 이 지명처럼 한문표기가 여러 가지로 제멋대로인 고유명사를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일주도로의 도로 표지판에는 ‘涉地岬地’라고 되어 있고 현장의 관광안내판에는 ‘俠地코지’ 또는 ‘脇地코지’, 책자나 자료에는 ‘狹地곶(串)’등으로 다양하다. 그러니 그 뜻을 종잡을 수가 없다.

‘涉地’가 맞다면 건너는 땅, 거치는 땅, 거니는 땅 정도의 뜻이 될 테고 ‘俠地’가 맞다면 땅 자체에 협기가 있을 수는 없으니 협기있는 자들의 땅이 될 테고 ‘脇地’가 옳다면 겨드랑이나 뺨의 땅이라는 억지가 되어 적절치 않고 ‘狹地’가 옳다면 좁은 땅이라는 뜻이 되어 지형을 생각할 때 가장 그럴 듯하다.
어쨌든 ‘협지’를 제주도 말로 ‘섭지’라 부르고 곶(串)을 ‘코지’라 하여 ‘섭지코지’라는 지명이 된 셈이다. 제주도 토박이말은 정말 아름답다. 그렇긴 해도 하나로 통일되는 게 좋겠다. 행정 당국의 역할이 필요한 대목이다.

‘제주올레’ 제1코스에 이어 섭지코지를 찾았다. 전체적인 지형을 보면 바다쪽을 향해 호리병모양으로 툭 불거진 형상이다. 목 부분은 폭이 1백M 정도, 마치 끈으로 묶은 듯이 좁다.
입구에 늘어 서 있는 수십 대의 관광버스들, 그보다 더 많은 개인 승합차들. 넓지 않은 진출입로는 늦은 오후였음에도 관광객들로 제법 붐비고 있었다.

   
  ▲ 드라마 '올인'으로 유명관광지가 된 섭지코지의 수녀원 세트  
드라마 ‘올인’의 세트장인 수녀원 건물은 바닷가 언덕 위에 덩그렇게 서 있었다. ‘이곳이 정말 송혜교와 이병헌이 만나 사랑을 확인하던 바로 그 수녀원인가!’ 수많은 관광객들의 호기심어린 시선과 카메라 셔터의 세례를 받으며 수줍은 수녀처럼 외롭게 서 있었다.

언덕을 감싸 안듯 둘러싸고 있는 쪽빛 바다 때문이었을까, 수녀원의 독특한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송혜교의 청순한 모습 탓이었을까. 시인 변영로(卞榮魯)의 ‘논개(論介)’가 떠올라 머릿속을 맴돌았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본래의 세트장 건물은 여러해 전에 태풍 피해를 입어 철거됐고 지금의 건물은 새로 지어진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무튼 신흥 관광지로 크게 떠오르고 있다.

몇 해 전 객주(客主)의 작가 김주영(金周榮)은 어느 일간지에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퍼지고 있는 이런 형태의 인위적인 관광지 개발에 대해 따끔한 경고성 충고를 실었다. 정동진, 문경, 남이섬 등 10여 군데의 실례를 들면서 마구잡이식 유치와 아울러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각종 축제의 남발과 오락성 행사들을 엄청난 예산을 들여 무분별하게 펼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 지역의 특성과 이미지에 걸맞은 문화행사를 슬기롭게 기획하여 상승작용을 일으켜야 한다는 요지였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섭지코지도 겸허하게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녀원 건물의 바로 발밑까지 밀고 올라간 어설픈 기념품 가게들처럼 고유의 분위기와 이미지를 파괴하는 일들이 공공연하게 계속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성공적인 관광지로 살아남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다각적인 연구를 계속해 나아가야 될 것이다.

수녀원 세트장 뒤쪽으로 돌아가니 옛날에 요긴하게 쓰였을 봉화대가 있었다. 여기서는 이를 연대(煙臺)라고 부르는 게 특이했다.
돌아 나오는 길에 여러 사람이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바위섬을 열심히 바라보는 모습이 특이해 무심결에 그들의 시선을 따라 살펴보니 검은 바위가 마치 눈(雪)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처럼 보이는 것은 갈매기들이 실례해 놓은 배설물이라 한다.

여기저기 바위섬들이 있건만 왜 하필 저곳에만 갈매기들이 모여들까? 갈매기들은 성정(性情)이 깔끔한가? 그래서 한 곳을 공동화장실 구역으로 지정해 놓고 집중적으로 사용하나?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르며 성경에 단 한 번 등장하는 합분태(鴿糞太)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비둘기 똥’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마리아 성이 적군에 포위되어 식량이 완전히 고갈되자 합분태 반 리터에 20일치 품삯을 주고 사먹었다는 기록이 열왕기 하서 6장에 나온다.

실은 비둘기 똥이 아니고 식물 이름이다. 비둘기 똥처럼 하얗게 생긴 일종의 콩. 멀리서 보면 그 꽃도 벼랑을 하얗게 덮고 있어 마치 비둘기 배설물이 잔뜩 쌓인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랍인들은 ‘칼리’라는 말이 ‘참새의 똥’이라는 뜻이긴 하나 실은 식물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는 것과 같다.
하기사 우리도 ‘며느리 밑씻개’를 비롯, ‘며느리 배꼽’ ‘며느리 주머니’ 며느리 밥풀‘ 등 괴상한 명사들이 며느리와 직접 관계된 것이 아니고 식물 이름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최창신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다.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태권도신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2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만돌이 (124.XXX.XXX.117)
항상 낮선 곳으로 떠나시는 순수청년같은 장로님의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의 지적 갈구함을 주시는 장로님 사랑합니다. 화이팅!!!
답변달기
2009-02-14 23:54:49
0 0
구병두 (211.XXX.XXX.194)
자유로움을 찾아 여행하시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도 하시고 공부도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뭐했을까요?
항상 건강하신 선생님이 되셨으면 합니다.
답변달기
2009-01-30 13:49:20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